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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한 중학생이, 교육부 차관님께(2015.8.31)

by 답설재 2015. 8. 31.

 

 

 

 

 

 

 

 

 

한 중학생이, 교육부 차관님께

 

 

  의아해하셨죠? "중학생이 왜?" 자유학기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려고요.

 

  "그걸 왜 나에게?" 하실까요? 장관님도 그러셨겠죠. "차관님! 자유학기제가 계획대로 실천되도록 지켜보세요!" 제가 장관이라도 그랬을 걸요? ‘강도 높은 교육개혁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정책 브리핑 자료에서 차관님 말씀도 읽었어요. "우리 교육이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발전에 큰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나 입시 중심 교육, 사회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학교육,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인식이 교육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자유학기제는 우리가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하면서 자신의 꿈과 끼를 찾고 창의성, 인성, 자기주도 학습능력 같은 중요한 역량을 기르도록 해주려는 것이잖아요. 반대할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 아니에요?

 

  우리는 오히려 한 학기만 그렇게 한다는 게 안타까워요. 오전에는 협동학습, 토론수업, 교과융합수업, 프로젝트 수업 같은 참여·활동 중심으로 교실에서 공부하고(정말 그렇게 해줄지 좀 의문스럽긴 해요), 오후에는 진로탐색 활동, 주제선택 활동, 예술·체육 활동, 동아리 활동을 하도록 했잖아요. 그런데도 못마땅한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불만일까요?

 

  선생님들이 들으면 섭섭하시겠죠. 우리는 정말 따분해요. 걸핏하면 설명하고 암기하라고 하시기 때문이죠. 학자들은 벌써부터 "우리의 모든 질문들, 심지어 우리가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질문들에까지 대답해 주는 '전자 하인'이 바로 옆에 있는데, 과연 우리가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할 것으로 무엇이 남아 있는가?" 묻고 있잖아요. 게다가 그 하인들은 나날이 더 똑똑해지고 있잖아요.

 

  어른들은 우리가 그런 건 모를 줄 아는 걸까요? 우린요, 화장실에서도 인터넷 서핑을 해요. ㅋㅋㅋ. 그런데도 그렇게 많이 설명해주고 암기시키는 일에 안달이 나고 닦달을 해야 속이 시원할까요? 중학교에 오면 초등학교 때와 달라서 처음엔 긴장할 수밖에 없지만 곧 실망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어떻게 지내나 암담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찾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보고하는 등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암기해야 할 것을 암기하라면 얼마든지 좋아요. 그렇지만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암기하라면 그건 억지가 아니겠어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중학생이라잖아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더 무서워질 수도 있을 거예요. "왜 이렇게 가르칩니까? 우리가 그렇게도 바보 같은가요? 제발 그만두세요!" 마침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자유학기제가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 교육을 혁신하는 출발점이라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정말 잘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신문 보셨죠? 몇몇 학원에서 당장 그런다잖아요. "자유학기제? 이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딴 아이들 놀 때, 학교 시험 걱정 없을 때, 마음껏, 집중적으로 진도를 뽑아야죠!" 엄마 아빠는 불안하시겠죠. 당연히 우리를 몰아붙이겠죠.

 

  그럼 뻔하죠. 학교에서 진도 다 나가는데 그게 미덥지 못해 학원에 보내고, 자유학기제는 또 그것대로 해야 한다면 우리에겐 그게 ‘괴물’이 아니고 뭐겠어요.

 

  속내 좀 털어놓을게요. 우리도 좀 놀게 해주세요. 전요, 조금만 놀아도 마음이 따뜻해져요. 안 되겠다면 학교생활 좀 재미있게 해주세요. 싫어도 무조건 배워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는 어른들도 있지만 '즐거운 공부'보다 좋은 건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안 된다면 그럼 책 좀 읽게 해주세요. 공부란 결국 '읽는 일'이잖아요. 교과서읽기, 소설읽기, 신문읽기, 선생님 표정읽기, 뜀틀읽기… 독서를 자유학기제 계획에 슬쩍 넣어주세요. '슬쩍'이 좋지 않으면 그럼 "넣자!"고 해주세요.

 

  자유학기제 때문에라도 차관님의 행운을 빌어 드릴게요. "꿈꾸는 중학생, 응원하는 대한민국!"이 슬로건이라면서요? 응원은 우리가 전담할게요! 우리가 참 좋다고 할게요! 무조건 잘 되도록만 해주세요! 우리 좀 지켜주세요!

 

 

 

 

 

 

 

아침(2015.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