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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남과 달라서 행복해지는 교육 (2015.7.6)

by 답설재 2015. 7. 5.

 

 

 

 

 

 

 

 

남과 달라서 행복해지는 교육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품위를 따지지 않고 간추린다면, 아이들은 좀 놀아야 하고, 그건 아이들의 엄연한 권리라는 의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휴식과 여가를 즐기기! 살기 좋은 나라에서 겉치레쯤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아동권리협약(UNCRC)의 내용(제31조 일부)이다. 이 협약은 1989년 11월 20일에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고, 1991년에는 우리나라도 비준하였다. 비준당사국이 된 것은 '대단한 일'은 아니다. 돈만 많으면 되는 일도 아니다. 다만 엄중한 의무이다. 지난해 초까지 194개국에서 비준한 인류 공동의 책무이다.

 

  이 문제로 '대단한 나라'가 되려면 이 권리를 순순히 인정하고 잘 실천해야 할 텐데 "저 좀 놀고 싶습니다!" 하면 선뜻 "그래라" 할 어른이 몇 명이나 될지 의심스럽고, 오히려 "얘가 지금 제정신인가?" 할 사람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의하면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놀이와 여가가 자신의 권리인줄도 모르고 있다. 교육대학·사범대학의 예비교사 대부분이 아동인권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고, 어른들은 교칙을 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마치 쓸데없는 일로 여기는 경향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경쟁이 주요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50.5%)이 조사대상 30개국 중 가장 많다. 그만큼 학교생활에 만족하는 학생은 아주 적고(18.5%), 삶의 만족도도 최하위 수준이다.

 

  학생이 성적경쟁에 내몰려 행복하지 않다면 그 경쟁을 지켜보고, 부추기고, 동참해야 하는 부모는 행복할까. 그럴 리 없다. 자녀가 부모의 조건 없는 기쁨이 되기도 어렵다. 자녀의 성취로 자신의 지위가 상승한다고 믿게 되고, 부담스럽지만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고 못가는 건 엄마의 정보력, 기동력, 자금력에 달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사고와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 리 없다.

 

  요즘엔 상위권 엄마 모임에 끼려고 영어, 제2외국어, 역사, 한자 등 이른바 '스터디'에 골몰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3~4세에 영어, 중국어, 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다언어 조기교육 '수퍼맘'들의 인터넷 카페도 있다. "○○이 엄마! 기말고사 준비시켰죠?" 방학을 앞둔 시기에 동네 '아줌마'들이 나누는 대화의 핵심주제이다. '아이 성적은 엄마 성적'이기 때문이다. 낳기만 하라고 달래지만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성적경쟁이 학생과 그 부모에게 불행의 씨앗이 된다면 거의 모든 국민에게 그렇다는 얘기가 된다. 성적경쟁의 종점에는 극소수의 행복한 학생, 극소수의 행복한 엄마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바꿔야 한다. '교육이 뭔지' 그것부터 새로 따져봐야 한다. 학생들 하나하나의 특성을 발견하고 발현하게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기초를 잘 익히고 나서 개성, 창의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겐 "이렇게 더운 계절이 여름"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 같지만, "그래서 지금이 여름이구나!"하고 아이들 스스로 발견하게 해주어야 한다. 또 한국 대학생들은 질문을 할 줄 모른다고 거짓 한탄을 할 것이 아니라 질문할 분위기부터 마련해 주어야 한다. 엘리트의 설명을 듣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생각하고 말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학교는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 아니, 학교만이라도, 학교만은, 행복해야 한다. 그러자면 모든 아이가 성공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모든 아이를 똑같게 만드는 길을 가지 말고 모든 아이가 다 다르고 그것이 정상적이라는 데서 교육의 새 길을 찾아야 한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쓴 프랑수아 를로르는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이 안타까웠는지 "행복의 적(敵)은 경쟁심"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우선 좀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 2015.6.18.A20(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