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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이 아이가 이공계로 나갈 수 있나 (2015.8.3)

by 답설재 2015. 8. 3.

 

 

 

 

 

 

 

 

이 아이가 이공계로 나갈 수 있나

 

 

  철칙(鐵則)으로 여겨야 할 수학 교과서의 공식 적용을 싫어하고 그 강요를 혐오하는 중학생이 있다. 다른 방법 찾기를 즐긴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공식만 염두에 두었던 수학교사가 틀렸다고 채점한 걸 보고 그렇지 않다는 걸 기어이 증명해 보여주기도 했다. 실험·관찰도 즐긴다. 교육청 영재반에도 들었다.

 

  고민은 엉뚱한 데서 드러났다. 아이를 면담해본 이른바 특목고 대비 학원 강사가 말했다. "두뇌는 비범하다. 공부하는 방법도 좋다. 다만 이렇게 푸는 것이 좋은지 저렇게 푸는 것이 좋은지 따질 것 없이, 문제를 보는 순간 숨 쉴 겨를 없이 기계적으로 풀기 시작해야 하고, 단 한 문제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대입수능고사에서는 불리하다. 당연하다."

 

  그 강사가 이야기하는 그런 공부를 우리는 '입시위주 학습'이라고 한다. 그런 학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말이 '학습'이지 '자기 주도적 학습'이니 '사고력 신장'이니 하며 '학습다운 학습'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게 과연 학습이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입시위주 교육은 장기간에 걸쳐 그 권위가 점점 더 강화되어 와서 드디어 '무소불위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연구소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은 아예 연구대상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을 지경이다. 학생들은 무조건 설명부터 들어야 하고, 핵심개념이나 사실들을 많이 암기하고 문제란 문제는 다 풀어봐서 어떤 문제가 출제되든 줄줄 답을 하는 '문제풀이 기계'가 되면 그만인데, 그런 교육을 연구대상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교과서보다 EBS 수능방송이 위력을 발휘하게 됐고, 학교든 학원이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학습능률 같은 건 따지지 말고 밤을 새워 단 한 문제라도 남보다 더 맞히면 이기는 게임이 바로 '입시위주 교육'이다. 오죽하면 내로라하는 학교 교장이 "공부를 많이 시켜 좋은 대학(그는 직설적으로 "서울대학교"라고 했다) 많이 보내는 것도 죄냐?"고 물었고, 그 무한 경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언론에서는 무지막지한 그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그 기사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 유사한 기사는 늘 보인다. "물 수능 탓에 대입 수시 70% 육박"(꼭 수능을 치러서 대학을 가야 속이 시원한가!), "교육비 투자 1위 명덕외고, SKY 진학은 6위"… 기가 찰 일 아닌가! 공부 시간 총량으로 겨룬다는 논리에 이어 투입한 돈의 양에 따라 결정되어야 정당하다는 투다. 교육의 목표를 SKY 대학 진학에 두고, 그것이 주문 생산처럼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학생들 보기에 민망하다. "이런 공부가 싫다!"고 외면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런 것만도 아니다. 너무나 짜증스러워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심지어 부모, 교사에게 대어드는 학생이 나날이 늘어난다. 학업을 중단하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학생이 한 해에만도 6만8천 명이나 된다. 자퇴생들 중에는 실제로 "경쟁만 남고 배움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 "시험 준비만 시키는 학교에서 어떻게 배움을 얻을 수 있는가!" "경쟁도 있어야 하지만 경쟁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학생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공공·노동·금융과 함께 입시위주 교육을 들어 "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고 특히 미래세대에 빚을 남기게 돼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힘들고 고통의 반복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런 실천방안을 듣지 못하고 있다. '4대 개혁' 과제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어려워 어떤 절차를 거쳐 이루겠다든지, 그럴 것 없이 곧 거대한 변화가 있게 된다든지, 기대할 만한 발표나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다. 교과서의 공식대로 문제를 풀지 않는 저 아이는 장차 이공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 학원 강사가 이야기하는 ‘문제풀이 기계’가 되지 않아도 괜찮겠는지, 지금처럼 공부해 나가도 충분한지, 기라성 같은 교육행정가들 중 누구에겐가 간곡하게 묻고 싶은 것이다.

 

 

 

 

 

 

201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