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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왜 학생들을 바보 취급하나(2016.4.25)

by 답설재 2016. 4. 25.




                                                                     이 사진은 이 글의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전혀 없음.








왜 학생들을 바보 취급하나



  우리 집 아이와 이웃집 아이의 성적이 1, 2위를 다툰다고 하자. 다만 이웃집에서는 학교 공부만으로 만족하는데 비해 우리는 매일 다섯 시간씩 별도로 더 시켜야 한다면 우리 아이 성적이 결코 자랑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꼭 그 모양이다.


  세계 여러 나라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는 늘 성적이 좋긴 하다. 최근에도 수위를 차지했고 일본이 2위, 핀란드가 3위였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핀란드나 일본은 그 성적이 사교육과 무관하거나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오히려 점수가 떨어졌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에 5시간씩 공부를 더 했을 뿐만 아니라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점수가 높았다. 일본이나 핀란드는 특수한 경우 외에는 사교육을 하지도 않지만 학교 수업이 성적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반해 우리는 민망하게도 학교 수업은 그 성적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러한 경향이 앞으로 관련 분야에 반영된다면 그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직접적인 영향 분석은 이미 나와 있다. PISA가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3년마다 수학·언어·과학 분야 실력을 알아보는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라면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는 15~65세를 대상으로 언어능력·수리력·컴퓨터기반 문제해결력을 재는 평가인데, 우리는 대학 입학 직후인 20세부터 그 역량이 계속 떨어져 35세에는 OECD 평균보다 낮아지고 55세부터는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지, 직장 내 학습지표 모두 21개국 중 20위로 전락하는 결과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학교가 아예 공부에 지치게 만든다. 경쟁적·무제한적으로 늘여가는 학습시간, 시험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주입식 교육 때문에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상실함에 따라 결국 문제해결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왜 이런 교육을 해야 하는가? 학교 공부가 성적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 누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런 교육을 고집하는가? 그렇게 묻는 학생이 있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더구나 이런 현상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여기는 자포자기 의식이 지배적이다.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의욕 자체가 없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가운데에 대입제도가 가로놓여 있다. 그 병폐는 이른바 '명문고' 교장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왜 방학 때도 학생들을 등교시키느냐고 묻자 어느 특목고 교장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가르쳐 좋은 대학에 많이 넣는 것이 잘못인가!" 언론도 그렇다. 그런 사고방식, 그런 대답을 중시하고,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교육과 나라가 망할 것처럼 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인성을 황폐화하는 행위라는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 '교육과정 시간(단위)기준'은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원칙이 되고 있지만 하루 5시간씩의 사교육에 매달리는 우리에게는 그건 무의미한 문서일 뿐이다. 그 '이상적인 기준'이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경쟁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는 형식에 그치게 되고 우리 학생들은 그 기준만큼만 가르쳐서는 아예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우지도 못하는 바보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대입제도를 자꾸 바꾸는 것이 한국교육의 최대 병폐라고들 한다.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꾼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런 면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자꾸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바꾼 제도도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제도는 학교생활이 즐겁도록 해주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학교공부가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게 하고, 그 미래를 위해 유익한 것들을 배우는 과정으로 작용하게 해주어야 한다. 학교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시험을 치기 위해 가야 하는 곳, 경쟁으로 인한 압박감으로 시간을 보내는 곳,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면 낙오하고 실패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곳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