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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아이들이 배우게 그냥 놔두자(2016.3.28)

by 답설재 2016. 3. 27.

난데없는 일이었다. '우리'(그러니까 '사람') 쪽 이세돌 9단이 '알파고'라는 괴물과 겨룬다고 했고 '어? 어?' 하는 새 내리 세 판을 졌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맞은편의 '저건 사람이지 싶은 사람'은 1202개의 CPU(중앙 처리 장치), 176개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 1000대의 서버로 구성된 인공지능(AI)의 지시대로 바둑돌을 운반만 한다고 했고 그 괴물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손수레뿐인 곳에 돌연 으르렁거리며 나타난 중장비와의 시합 같아서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넷째 판만 이겨서 그렇지 다섯째 판도 이겼다면 괴물이 장난감으로 전락하거나 '우리' 대표가 신선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전적 1:4는 딱 적당한 결과였다.

 

처음엔 '속수무책'이라고 해야 할 분위기였다. "두 살 인공지능, 5000년 인간 바둑을 넘다" "알파고의 아버지,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 "이세돌, 알파고 팀에 경의" "구글,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 "의사·화가·펀드매니저까지, 코앞으로 다가온 인공지능"… 신문은 미리 다 알고 저쪽 편으로 넘어가버린 듯 호들갑 혹은 암담함을 느끼게 하는 낯선 태도를 보였다.

 

앞으로의 문제들에 대한 온갖 걱정과 처방이 쏟아졌다. "과연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삼스럽게 본질적인 질문도 나왔다. 2100년쯤 신인류는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은 신(神)적 존재"로 불멸에 이르는데 우리는 사회성과 지각 능력 등 인간성의 특징을 많이 상실했으므로 지금부터라도 부디 정신을 차려서 ‘마음에 대한 연구’에 노력해야 한다는, 으스스한 주장(유발 하라리)도 소개되었다.

 

인공지능은 '생각하는 갈대'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과 서로 보완하면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도 했고, 이 패배가 바로 우리의 미래상이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새로 생각해야 한다거나 빅브라더 구글이 좌지우지할 미래의 삶이 두렵다는 이도 있었다. 이런 걱정을 무마하고 싶었는지 알파고를 만든 이는 그게 사람처럼 되려면 수십 년은 더 있어야 하고, 기후·질병·경제 등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쉬운 것은 교육에 대해서는 뚜렷한 제안 하나 없이 잠잠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어이없게도 어른들이 한국의 알파고를 만들어내면 애들은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알파고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으로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결과값을 도출하고, 스스로 상황을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행동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이미 에듀테크(edu­tech)가 도입되었으니 곧 '알파고 선생님'도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모두들 교사의 설명을 잘 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집으로 주입식․설명식 교육을 이어가겠다면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학생들이 교사의 설명은 재미가 없다고 하면, 아예 필요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알파고는 1:1로 묻는 것만 재미있게 알려주고 친절히 안내해주고 끝까지 도와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공부 좀 하게 그냥 좀 놔두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식의 전달에서 노인들의 할 일이 사라진 것처럼 교사가 굳이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여러분!" 하고 설명하여 알아들으면 다행인 교육을 그만두고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동일한 길을 동시에 가도록 강제하지 말고 각자가 각자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알파고는 그것을 알려주고 학교의 새로운 역할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하필이면 이 나라를 찾은 것은 아닐까. 그 괴물은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온 손님이 아니었을까.

 

2050년경에는 초등학교건 대학교건 브랜드 가치가 높은 5%의 학교만 살아남는다고 했다(데이비드 겔런터, 2000). 그렇다고 해서 아예 지금부터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명심할 것은 우리가 기계보다 더 센 건 지식과 정보의 암기력은 아니다.

 

 

 

 

조선일보, 2016.3.12. 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