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중1 녀석의 싱그럽고 가련한 자부심(2017.3.13)

by 답설재 2017. 3. 13.

아파트 수영장 주변을 휘젓고 다니던 '초딩' 개구쟁이 녀석이 돌연 입대를 앞둔 장정처럼 머리를 단정히 하고 까만 제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운동가방만 그대로였다. 그 행색은 기묘하면서도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와, 너 중학생이 됐구나!"

녀석은 입학식 날부터 최근까지 일어난 일들을 줄줄이 소개했다. "이젠 초등학생을 상대로 하던 그런 대화는 자제해 달라"는 듯한 의젓함이 느껴졌다. 날마다 만나는 노인에게 좀 으스대고 싶었고 이젠 자신이 아파트 앞 초등학교나 다니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선포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가 그 녀석을 실망시킬 수 있을까! 누가 중·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할수록 점점 더 깊은 고난의 길이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고, 우리 교육의 실상을 그대로 소개하고 싶을까.

자유학기는 짧고 꼬박꼬박 다가오는 중간·기말고사를 통해서 '죽어라' 암기한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망각해가는 체험의 반복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스스로 문제를 찾고 가설을 설정하고 자유롭게 탐구해가고 싶은 열망(혹은 유혹) 같은 것엔 아예 미련도 갖지 말고 다섯 개 답지 중 '적절한'(혹은 '적절하지 않은') 하나를 고르는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숨 쉴 겨를 없이 실수하지 않고 남보다 빨리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인재가 되는 길"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하는 건 또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밤새워 책을 읽을 수나 있나? 독서가 청소년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일 수 있나? 수능에 목을 매지 않아도 좋은 조건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이른바 '학종(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각오가 있을 경우에 제한적으로 누려도 좋은 특별한 활동으로 여기는 학생은 없을까? 창의성이라는 것은 왜 교과 공부에서는 불필요하고 더러 비교과 활동을 통해서나 나타낼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학생은 없을까?

천신만고 끝에 입학한 '초일류대학'에서조차 A+을 받는 학생이 교수의 농담까지 받아쓴다는 고백은 우리를 얼마나 씁쓸하게 하는가. 독창적인 의견을 썼다가 망가진 학점을 보고 다시 고등학교 때처럼 암기에 치중해서 우수한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는 무용담을 듣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우리 교육의 민낯인가. 우리는 저 푸르른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걸 설명해주기보다는, 어제까지는 그랬더라도 오늘부터, 오늘은 안 되겠다면 그럼 내일부터라도 이 교육방법을 바꾸어 저 아이들이 "듣기보다는 좋은데요?" 하고 미소 짓게 해주는 것이 차라리 더 쉽지 않을까? 우리 교육의 실상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문제가 극심하다는 걸 인정해왔으므로 그 식상하고 충분한 공감대로써 새로운 길을 마련하고 저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감쪽같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대학 입학전형과 수능시험, 객관식 시험 중심 교육이 못마땅하면 대안을 제시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방식을 날로 정교화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우리 교육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교육부장관까지 지낸 어느 학자는 "나라가 망해가고 젊은이들이 죽어간다"고까지 했다.

대안이 있다! 평가자가 평가도구를 일방적으로 마련하는 시스템부터 버려야 한다. 국어든 과학이든 체육이든 또 어떤 과목이든 평가자(과목별 교사 혹은 국가 등)는 교육과정의 범위 내에서 학생들이 각자 마련하고 준비한 주제에 따라 평가해줄 수 있어야 한다. '개별학습'이란 바로 이런 교육에 붙여야 적절한 이름이다. 이런 평가가 실현된다면 저 아이들 앞에서 교과서로써 논란을 벌인 오늘의 우리 교육이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인지, 교육적인 반성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어렵겠지? 아직도 학생이 주인이 아니고 평가자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안이 비현실적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교육혁신'의 용어만 바꾼 채 세상의 변화에 점점 뒤떨어지는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2017.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