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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더는 미루지 말고 '아이들'을 생각하자(2017.5.15)

by 답설재 2017. 5. 15.

K 시인은 산골짜기 고향마을과 A시를 오가며 지낸다. 고향마을에선 선대의 전통가옥을 정비해서 민박을 하고 A시에는 아들네가 거주한다. 지난 초봄에는 아들네가 산골짜기로 들어가고 K 시인이 시내로 나왔다고 했다. 손자가 그 산촌 소재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었다. 의아해서 되물었다. 바뀐 게 아닌지,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아들네가 시내로 나와서 손자가 시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K 시인이 산골로 들어가 정착한 건 아닌지….

아니라고 했다. 제대로 얘기하고 들은 것이라고 했다. 시내 학교는 아직도 한 학급에 25명이 복작거리는데 산골 학교는 1학년이 딱 네 명이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정말로!' 따듯하고 정겹게 보살펴주는 데다가 시설설비는 이 세상 어느 선진국 학교와 비교해 봐도 월등해서 "세계 최고가 분명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게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우선 6년간 그 손자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어디냐고 했고, 중·고등학교 진학 문제는 그때 가서 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행복하게 지내면 분명히 또 행복한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리는 그 산촌이 학원 하나 없는 곳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굳이 우리 교육의 실상 같은 건 언급하지도 않았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0년대 초반부터 선행학습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인용한 논문 11편 중 9편이 선행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전하다. 특별한 학교에 보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준비에 열을 올린다. 과외는 전반적으로 그렇다. 득보다 실이 많다. 수능의 경우에도 점수 차는 거의 없고 공부 시간만 늘리는데 청소년정신과를 찾는 우울증 환자의 대부분이 사교육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흔히 직장 부적응, 자존감 파괴, 우울증 등 고질병으로 이어진다.

세계 최고 성적을 자랑하는 핀란드는 평균 사교육 시간(15세의 경우)이 6분, OECD도 36분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3시간 36분이다. 우리 아이들이 우둔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 반대다. 다른 나라에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교육을 받는 게 상식인데 우리는 성적 상위권이 더 열성이다. '좋은 대학→좋은 직장'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식 때문이다.

"암기 인재는 낮은 단계 지식인이다. 창의적인 딥 러너를 키워야 한다" "EBS 교재는 고3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든다" "자녀교육을 과외와 학원에 맡기면 미래가 어두워진다" "운동시간도 주지 않는 한국교육은 뇌 성장을 방해한다" "중국 학생들이 수학자처럼 사고하는 동안 한국 학생들은 그 수학을 암기한다"… 우리 교육의 병폐에 대한 지적은 끝이 없다. 지적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학입학처장 80%, 수능 절대평가는 이르다." 이런 견해의 주인공들이 전문가로 취급되고 초·중등 교육을 좌우한다.

K 시인의 눈으로 교육을 하면 좋겠다. 아이들의 행복을 정책결정의 우선순위에서 맨 앞에 두자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평가한다. 공부든 뭐든 최고가 되고 싶어 하지만 삶의 만족도와 성취동기, 신체활동, 부모와의 관계는 조사대상 48개국 중 47위였다. 물질적 여건은 최상위권인데 비해 행복감은 에티오피아와 함께 최하위권이다.

K 시인의 눈을 가지려면 바꿀 것이 많다. 학생 수를 불문하고 똑같은 수업방법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 수가 줄어드는 걸 학교 통폐합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문제다. 사교육을 보는 눈만 해도 그렇다. 교육행정의 목적과 목표가 마치 사교육비 감축에 있는 것처럼 "사교육비!" 하면 다른 관점은 파묻히고 마는 경우가 없지 않다. 획일적으로 사교육비 규모나 알아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학생에게 어떤 사교육이 필요하고 효율적인지, 어떤 학생에게 불필요한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비현실적 주장" "시기상조" "급진적"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미루고 또 미루면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행복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