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이명(耳鳴)과 함께 지냅니다.
한여름 말매미 우는 소리 혹은 공장에서 강철 자르는 기계음 같은 게 사시사철 들리는 귀지만, 다른 소리도 그런대로 잘 들리는 편이어서 별 무리는 없습니다.
이명(耳鳴)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귀가 내게 전해줄 뿐인데 나는 그걸 귀 탓으로 돌려서 "이명" "이명"하는 것이겠지요.
기력이 달리거나 조용할 때는 그 소리가 온통 진동을 해서 머릿속을 휘젓습니다. 가령 열두 시가 가까워 자리에 누우면 벽시계 소리와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소리를 벗삼아 그날 있었던 일이나 지나온 거리 같은 걸 생각해내고 그리움을 느끼며 잠이 듭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요란을 떨어도 다행히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스라한 그리움을 느끼며 잠이 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Ⅱ
공자께서는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제대로 서고, 마흔에 불혹(不惑)하고, 쉰에 천명(天命)을 알고, 예순에 이순(耳順)하고, 일흔에 하고 싶은 바를 좇되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느니라" 하였습니다(原文──爲政 四 子曰 『吾十有五에 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1.表文台 역해 『論語』(현암사, 1972), 98~99쪽)
그러니까 예순이 되니까 세상의 어떤 일도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부끄럽지만 온갖 일들이 귀에 거슬려서 걸핏하면 화가 나고 그렇습니다.
왜 공자의 말씀을 꺼냈느냐 하면, 어처구니없다고 하겠지만, 단 한 가지 이 이명(耳鳴)만은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게는 아흔아홉 가지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이명(耳鳴)만은 이순(耳順)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Ⅲ
'이명'이 '이순'으로 정착된 것은 10여 년 전 시흥의 어느 한의사 덕분입니다.
감기가 하도 낫지를 않아서 소사동 고개 너머 그 한의사를 찾아가 자리에 앉으며 꺼낸 말이 이명이었습니다.
"이럴 땐 감기도 감기려니와 이명이 더욱 크게 들려 그것도 괴롭습니다."
"…… 그럼 친구처럼 지내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하! 그것이 좋겠구나 싶었고 그 깨달음으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Ⅳ
'이명'은 피가 내 몸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굳이 피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처럼 '완전무결하지 못한 사람'은 잠이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이렇게 피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시사철 한여름 매미 우는 소리 혹은 동네 철공소에서 쇠를 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 소리도 어느 날, 병원에서 세 번이나 고쳐준 내 이 심장이 영영 멈추게 되면 그때는 저도 어쩔 수 없이 잠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생각은 며칠 전 아주 추운 날, 아내와 함께 이마트에 가서 저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이었습니다.
'저 나무도 이명을 듣고 있지 않을까?'
'저 하나하나의 가지 끝까지 나무의 피가 돌지 않으면 무슨 수로 봄에 잎을 피울 수 있으랴.'
'그러므로 아무리 추운 날에도 "윙―윙―" 이명을 듣고 있으리.'
* 이명에 관한 다른 글
이명은 내 친구 (2012.10.3.) ☞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38102
다행! 내 이명(耳鳴) (2013.8.26.) ☞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3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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