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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명(耳鳴)만은 이순(耳順)

by 답설재 2016. 1. 27.

 

 

 

이명(耳鳴)과 함께 지냅니다.

한여름 말매미 우는 소리 혹은 공장에서 강철 자르는 기계음 같은 게 사시사철 들리는 귀지만, 다른 소리도 그런대로 잘 들리는 편이어서 별 무리는 없습니다.

 

이명(耳鳴)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귀가 내게 전해줄 뿐인데 나는 그걸 귀 탓으로 돌려서 "이명" "이명"하는 것이겠지요.

기력이 달리거나 조용할 때는 그 소리가 온통 진동을 해서 머릿속을 휘젓습니다. 가령 열두 시가 가까워 자리에 누우면 벽시계 소리와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소리를 벗삼아 그날 있었던 일이나 지나온 거리 같은 걸 생각해내고 그리움을 느끼며 잠이 듭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요란을 떨어도 다행히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스라한 그리움을 느끼며 잠이 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제대로 서고, 마흔에 불혹(不惑)하고, 쉰에 천명(天命)을 알고, 예순에 이순(耳順)하고, 일흔에 하고 싶은 바를 좇되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느니라" 하였습니다(原文──爲政 四 子曰 『吾十有五에 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1.表文台 역해 『論語』(현암사, 1972), 98~99쪽)

 

그러니까 예순이 되니까 세상의 어떤 일도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부끄럽지만 온갖 일들이 귀에 거슬려서 걸핏하면 화가 나고 그렇습니다.

왜 공자의 말씀을 꺼냈느냐 하면, 어처구니없다고 하겠지만, 단 한 가지 이 이명(耳鳴)만은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게는 아흔아홉 가지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이명(耳鳴)만은 이순(耳順)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명'이 '이순'으로 정착된 것은 10여 년 전 시흥의 어느 한의사 덕분입니다.

감기가 하도 낫지를 않아서 소사동 고개 너머 그 한의사를 찾아가 자리에 앉으며 꺼낸 말이 이명이었습니다.

"이럴 땐 감기도 감기려니와 이명이 더욱 크게 들려 그것도 괴롭습니다."

 

"…… 그럼 친구처럼 지내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하! 그것이 좋겠구나 싶었고 그 깨달음으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은 피가 내 몸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굳이 피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처럼 '완전무결하지 못한 사람'은 잠이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이렇게 피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시사철 한여름 매미 우는 소리 혹은 동네 철공소에서 쇠를 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 소리도 어느 날, 병원에서 세 번이나 고쳐준 내 이 심장이 영영 멈추게 되면 그때는 저도 어쩔 수 없이 잠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생각은 며칠 전 아주 추운 날, 아내와 함께 이마트에 가서 저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이었습니다.

'저 나무도 이명을 듣고 있지 않을까?'

'저 하나하나의 가지 끝까지 나무의 피가 돌지 않으면 무슨 수로 봄에 잎을 피울 수 있으랴.'

'그러므로 아무리 추운 날에도 "윙―윙―" 이명을 듣고 있으리.'

 

 

* 이명에 관한 다른 글

이명은 내 친구 (2012.10.3.) ☞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102

다행! 내 이명(耳鳴) (2013.8.26.) ☞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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