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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추억21

눈 내리는 날 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그렇게 많이 내려 쌓이진 않았지만, 흡사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내리는 것처럼, 추억이 떠올랐다가 스러지는 것처럼, 예전처럼,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고 이리저리 흩날리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 옛 생각에 젖어들게 됩니다. 그대도 그렇습니까? 옛 생각을 하게 됩니까? 그 옛 생각이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의 눈발을 내다볼 때마다 어느 한 시기의 일들에 고정되는 생각들입니다. 대부분 어려웠던 시절에 생각이 머무는 걸 보면, 좋았던 일들보다 어려웠던 일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한 것은, 지금 눈 내리는 모습을 내다보며 생각하는 그 일들이, 다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줄을 전혀 몰랐던 일들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나, 지.. 2014. 2. 8.
「The End of the World」이 그리움... '강변'은 저 남녘의 화가입니다. 그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사진을 보여줍니다. 나는 날마다 그 '강변'에 가고 있습니다. 그가 덧붙이는 음악이나 詩보다는 사진들이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 사진에 어우러진 그 음악, 시가 사무쳐서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오기도 합니다. 저 사진에 붙여진 「The End of the World」는 꼭 46년 만에 듣는 노래입니다. 그간 더러 들었겠지만 '그 옛날 그는 그때 내게 왜 이 노래를 들려 주었을까?' 새삼스럽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때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한 해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학비가 별로 들지 않고 딱 2년만 공부하면 취직할 수 있다는 친구의 종용으로 그 대학 생활을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그 2년의 시간에 이루어질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2년만 흘러간 .. 2013. 3. 31.
바다 추억 한겨울 아침나절의 해운대는 조용하고, 창 너머로는 따스하고 아늑했습니다. 가울가물하게 내려다보이는 백사장에서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를 얼르고 있었습니다. ♬ 독도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그 푸르른 흐름에서는 '힘'을 느꼈습니다. 무슨 낭만적인 것보다는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그때, 편수관을 지내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 의용수비대' 이야기를 실은 일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고, '저승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을 만난다 해도 고개를 들고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좀 건방진 생각도 했습니다. 그 독도의 풀 한 포기, 돌 한 조각도 소중하다는 느낌을 가지며 오르내린 것은 좋았지만, 이 나라 사람.. 2013. 2. 19.
일본에서 1997년 11월 어느 날입니다. 각 시·도 대표 교사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무얼 썩 잘해서 선발된 교사들이었는데 그게 무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가노(長野)였던가, 그 어디에서 선생님들의 홈스테이까지 끝냈습니다. 나가노는 작은 도시지만, 동계올림픽이 열렸으므로 주민들이 외국인 홈스테이에 익숙하여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나는 단장(團長)이라고 혼자 멋진 호텔에 머물게 했는데, 그 며칠간 조용하게 지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하고, 선생님들이 일본 민간인들 집에서 말썽 없이 잘 지내는지 걱정도 좀 했었습니다. 그 행사까지 끝내고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 있는 모습인데, 그러나 저 곳이 어느 곳의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무라.. 2012. 12. 13.
「기차는 간다」 기차는 간다 허 수 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그리운 것들만 가는 걸까? 나를 남겨 놓고 저.. 2011. 8. 11.
봄! 기적(奇跡) 봄! 기적(奇跡) ♣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었습니다. 재해는 갈수록 험난하고, 정치, 종교, 교육, …… 우리가 더 잘 살아가려고 하는 일들로 인한 갈등이 까칠하게 느껴져서 때로는 그런 것들이 '왜 있어야 하는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이 봄날, 그런데도 햇살은 야.. 2011. 4. 13.
박광수 『광수생각』 한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와 울긋불긋 조금조금씩 달라지는 나뭇잎들이 가을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려줍니다. 선생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힘겹게 투병중이신 걸 알면서도 걱정을 덜어내려는 저의 이기심으로 늘 평안하시기를 기도한답니다. 유난히 비가 많아 한여름의 시끌벅적보다는 조금 우울했던 여름이 가고 맞이한 가을이라 그런지 시간의 지남이 무척 아쉽고 서운하기까지 합니다. 서점에 갔었어요. 이것저것 보다가 책 제목이 맘에 들어 샀습니다.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박광수 씨의 글과 그림과 애틋한 사랑 詩가 담겨 있더군요. 읽다가 빙그레 웃고 조금 애틋하기도 하고… 이 가을 편하게 (이런 걸로 걱정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후략)… '광수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벼룩.. 2010. 11. 4.
1996년 어느 가을날 1996년, 교육부에서 근무하던 때의 어느 가을밤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가 교과서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옆방에 근무하는 이안세 연구사님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진이란 제가 언제 책을 내게 되면 저자 프로필에 쓸 만한 사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분은 저보다 훨씬 먼저 교육부에 들어간 선배였지만, 오랫동안 파견교사였고 아마 저보다 나중에 연구사가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분이 파견근무를 하게 된 것은 사진 촬영에 취미가 있기 때문이었고, 당시 교육부 기관지 『교육월보』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교육월보』의 제호가 『교육마당』으로 바뀌기 전이었을 것이고, 그 제호가 지금은 다시 『꿈나래 21』이 되어 있습니다. 『교육월보』 이전의 『문교월보』가 생각나십니.. 2010. 2. 6.
쇼스타코비치,「왈츠」Chostakovitch, Valse No.2 Ⅰ 돌아가야 할 시간, 무료하겠지만 이제 그만 만나야 하는데…… “춤 한번만…….” 하던 그(그녀)가 생각날 것 같지 않습니까? 혹은 이미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그녀)가 돌연 별로 충분하지 않은 인격의 어떤 남성(여성)과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시간의 주체할 수 없었던 당혹감, 질투심 같은 것이 떠오를 것 같지 않습니까? 혼자 자동차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담배도 피우고 한숨도 쉬고 어려운 일 귀찮은 일 잠시 즐거웠거나 기뻤던 일 두고두고 쑥스럽거나 부끄러웠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들리는 대로 뉴스나 토크쇼 음악도 듣습니다. 신문에서 제목이라도 봤던 일들을 언제나 자세히 별일 아닌 것들까지 합쳐서 꼭 “큰일 났다!”는 투로 전해주는 뉴스를 들으면.. 2008.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