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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1996년 어느 가을날

by 답설재 2010. 2. 6.

 

 

 

1996년, 교육부에서 근무하던 때의 어느 가을밤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가 교과서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옆방에 근무하는 이안세 연구사님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진이란 제가 언제 책을 내게 되면 저자 프로필에 쓸 만한 사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분은 저보다 훨씬 먼저 교육부에 들어간 선배였지만, 오랫동안 파견교사였고 아마 저보다 나중에 연구사가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분이 파견근무를 하게 된 것은 사진 촬영에 취미가 있기 때문이었고, 당시 교육부 기관지 『교육월보』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교육월보』의 제호가 『교육마당』으로 바뀌기 전이었을 것이고, 그 제호가 지금은 다시 『꿈나래 21』이 되어 있습니다.

『교육월보』 이전의 『문교월보』가 생각나십니까? 그 월간지는 하얀 백지에 한자로 『文敎月報』라고 찍어 발행했었으니 더러 『꿈나래 21』을 읽고 있는 분들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겠지만, 우리 교육이 그 변화만큼 발전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가령, 문교부장관이 임명한 교육감이 다시 각 시군구별 교육장을 임명했고, 그 때도 당연한 듯 부정 비리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런 교육장들을 존경하기는 했습니다. 서울의 교육장들이 온갖 부정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다 쑈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안세 선배는 "오늘 저녁에는 내가 조용한 편이니 꼭 김 선생이 내게 될 단행본 날개의 사진을 찍어두자"고 대어들어 여러 컷을 찍어댔습니다.

저는 얼른 윗옷을 걸치고 표즈를 취하긴 했지만 끝내 그 선배의 요구대로 미소를 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대체로 우리가 환하게 웃기를 기대하지만, 저는 "억지로라도 웃으면 우스워서 웃는 것만큼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왜 해야 하는지, 다시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더라고 건강하면 그만이라는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여태껏 '억지웃음'에 관한 강좌가 있으면 기필코 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버리는 실례를 해왔습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사회학과 앨리 러셀 혹실드는 '친절하게 대하기'라는 사회적 전제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사회적 전제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사생활이나 직업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데 따르는 손실과 이익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개인의 기분을 다스려 얼굴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배우가 연기하듯 원래의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고 판매되기 떄문에 교환가치를 가지며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깁준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한다고 했답니다.*

혹실드 교수는 또 델타 항공의 임원과 승무원, 각 분야 노동조합 관계자 들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뒤 "사적 차원의 감정관리가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임금을 얻기 위한 감정노동으로 변형될 때 인간성의 쇠진(衰盡)이 일어난다"고 분석하고 그 결과 쇠진, 스트레스, 신체적 쇠약 등은 감정노동 사회에서 살아가는 감정노동자의 특성이 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델타 항공에서는 스튜어디스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미는 상황에 처하면 숨을 깊게 들이쉬고 혼잣말로 '집에 가면 안 볼 인간이다'라고 되뇌면 상당히 효과가 있다.'

 

인용이 길어졌습니다. 저 사진의 제 표정에 대한 변명입니다.

그 날 그 사진들이 제 단행본의 날개에 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 사진을 실을 만한 단행본을 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사진에서 제가 손에 들고 있는 교과서는 6차 교육과정 사회과 교과서입니다. 그때는 제 일에 정말로 열심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젊으셔서 처음엔 놀랐어요. / 그때도 멋지셔요. / 그런데 저는 지금 교장선생님이 더 좋아요."

교장실 옆 교실의 선생님께 이 사진 스캔을 부탁했더니 메일에 그렇게 써보냈습니다. 머리칼이 하얗고 더 주름진 얼굴의 제 모습이 익숙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저 정지된 한때를 확인하는 순간 저도 놀랐었습니다. 한참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붙잡힌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불러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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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10.2.6, A14. 신용관 기자의 책 소개「상품으로 놀아나는 '감정'은 빨리 잊어라」(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가람 옮김, 감정노동,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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