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양지 육상부·양지 스키부

by 답설재 2010. 2. 13.

지난 10일, 졸업식을 하루 앞둔 날까지는 교장실에 앉아 있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때까지만 해도 오늘 이렇게 집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의 무료함이나 허전함 같은 건 짐작도 못했습니다. 나에게는 앞으로 '설 연휴' 같은 이런 시간이 무한정일 것입니다. 이 시간에 나는 이제 교장을 다했고, 교직생활을 마쳤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무료하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육상부 고경민 코치가 바로 어제 무슨 육상대회가 열렸던 것처럼 12일자로 사진 두 장을 실어놓은 걸 봤습니다. 강인석 선생님과 몇몇 아이들 -내가 이 학교에 왔을 땐 아기 같던 것들이 이렇게 6학년이 됐고, 11일에는 졸업을 해서 떠나간 저 아이들- 대부분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정겹기만 합니다.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입니다.

 

 

 

 

 

 

 

고경민 코치는 이 사진에 다음과 같은 해설도 붙여놓았습니다.

"2009년 마지막 시합 소년체전 평가전에서 우리 학교가 우승을 했습니다. 남양주양지초등학교 육상부 창단 이후 계속 우승하여 4연패를 달성한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고 코치도 졸업생들을 보내고 나니까 섭섭했을까요?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지난해 11월의 소년체전 평가전 때 찍은 이 사진을 탑재하지 않은 걸 발견했겠지요. 이제는 헤어진 6학년 아이들의 얼굴들…….

 

그러고보니 고경민 코치는 강인석 체육부장선생님이나 나하고도 이별이네요?

내가 잔소리 많이 했지요?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 재미있게 가르치자, 옛날식으로 "죽어라!" 달리기나 하지 말고 영화도 보고 찜질방도 가고 광릉숲에 소풍도 가고 밤에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경기도 보러 가고 제주도나 강원도에도 가고 그러면서 "육상부 하면 참 재미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육상부 하면 추억거리가 너무나 많은 그런 클럽을 운영하자고 한 것뿐이잖아요?

나는 태어나서 죽자고 달리기만 하고 공만 차는 그런 인생이 싫고, 아니 혐오스럽다는 거였지요.

 

양해해주기 바랄게요.

 

근데 2008년 여름에 제주도 간 사진은 홈피에 없네요? 그 사진 몇 장 가져오려고 했는데……. 사라진 것 같아요. 연맹에서 제주도 가게 된 것도 다 우리 학교가 가는 걸 보고 배운 것 아닌가요?

 

그나저나, 고경민 코치님!

오는 27일에 결혼하셔도 우리 아이들 계속 가르쳐주실 거죠?

 

자랑 같지만 고 코치가 나 좋아한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한 그 아이들 잘 가르쳐주세요. 올 소년체전에선 금메달 분명히 나올 거잖아요.

 

결혼 축하해요. 잘 사세요, 화이팅! 고경민!

 

 

  

 

 

권민식 코치님, 미안합니다. 초빙해 놓고 제대로 지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스키부가 경기도에선 최고니까 긍지를 가지고 지도해주세요. 두고두고 미안해하고 기회 있으면 쳐다보고 그럴게요.

 

 

 

 

 

'그림과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 양지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의 한때  (0) 2010.03.04
가평산장호텔  (0) 2010.02.27
1996년 어느 가을날  (0) 2010.02.06
「모네에서 피카소까지」(인상주의)  (0) 2010.01.16
우리 학교 합창단  (0) 2009.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