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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정년퇴임11

지금 내가 있는 곳 (1) 위로 삼아 나의 경우 정년퇴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하자 동석한 부인은 자기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쳐주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유종호「어느 이산의 뒷얘기-한 시골 소읍의 사회사에서」(에세이),『현대문학』2017 3. 196. 저 자리에 동석했다면 저 '당사자'라는 사람을 보고 "그런다고 무슨 수가 날 것도 아니니까 포기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해주거나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저 '당사자'와 나는―지금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와 있습니다. 어떤 곳인지 설명하자니까 참 난처하고 애매합니다. 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가 있는 이곳을 '이쪽'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떠나온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뭐.. 2018. 1. 18.
한가한 날들의 일기 - 퇴임 이후 예전에 숙직을 할 때처럼 교실들을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유령처럼……. 나는 사실은 유령인데 자신이 유령인 줄도 모르고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교실의 정원 쪽으로 난 출입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발견했는데, 손을 대니까 문이 열렸고 그러자마자 밖에 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키가 2미터도 넘을 것 같았고 흰색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들고 있던 책을 그 남자의 가슴팍에 들이밀며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가 나가자마자 얼른 걸고리를 걸긴 했지만 빗장으로 쓸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서 조바심을 내다가 잠이 깼습니다.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었으니까 '자정을 갓 지났겠지?' 짐작하며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산기슭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학부모들과 삼삼.. 2014. 7. 3.
'세한도(歲寒圖)' 같은 그림 또 퇴임의 계절입니다. 아는 체하고 싶겠지만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斷言)합니다. 퇴임한 사람의 심경과 처지 말입니다. 낼모레 퇴임을 앞둔 사람도 아직은 모르고, 아직 그런 걱정을 심각하게(본격적으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 즉 지금 현직에 있어 하는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잘 하고 있든, 그렇지 않고 대충대충 놀기 삼아 하고 있든― 더구나 그렇습니다. 퇴임 이후에 더 멋진 일을 해서 그렇지 않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래봤자 별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이고 주장이라면 주장입니다.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 말라!"고 한마디 거들고 싶다면 퇴임한 사람이 아니면 좀 참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디선가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적어준 전화번호가 몇몇 해를 두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분명.. 2013. 12. 11.
새내기 퇴직자들을 위하여 (Ⅳ) ♬ '새내기……'라고 하니까 대학이나 회사에 갓 들어가서 간편복을 입고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은 근사한 연수 시설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떠오릅니다. 한가롭게 해묵은 월간지 『공무원 연금』을 뒤적이다가 '새내기 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후배님들 이것만은 꼭…'이란 기사를 보고 옮긴 단어입니다. '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구나!' 사실은 '퇴직자'라고 하면 아무래도 서글픈 느낌을 줍니다. 어쩔 수 없지요. ♬ 월간지 『공무원 연금』을 아십니까? 아마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월 1000원, 연 12,000원인데 정기구독하시겠느냐고. '새내기 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후배님들 이것만은 꼭…'이라는 그 기사는, 퇴직자 9명의 제안을 실은 글입니다. 개요만 소개합니다.1 ▷ 신나게.. 2013. 2. 3.
후순위라도 괜찮겠습니까?-퇴임을 앞둔 선생님께 Ⅲ 12월입니다. 연일 기온이 떨어지니까 이젠 겨울입니다. 퇴임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준비, 그 준비가 미흡하니까 퇴임하면 곧 순식간에 늙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몇 년 더 살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 아침에 더러 경춘선 ITX 열차를 탑니다. 물론 일반 전철을 더 자주 탑니다. ITX(Intercity Train eXpress)는 '청춘(靑春) 열차'라고도 부르는 고급 열차여서 일반 전철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KTX에 버금간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청춘! 그렇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열차는 젊은이들이 많이 탑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곧잘 값이 싼 일반 전철을 타고, 그리 바쁘지도 않을 것 같은 ──이게 바로 착각이겠지요── 젊은이들은 '청춘' 열차를 탑니다. 선생님께서는.. 2012. 12. 3.
적막한 세상 -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Ⅱ 지난번 편지 보시고 많이 불편하셨지요? 섭섭해 하셔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 퇴임하신 후에 덜 섭섭해 하시고, 덜 실망하시고, 마음 덜 아프시도록 하기 위해 이런 편지를 쓴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퇴임하시면 그 순간 세상이 적막해집니다. 얼마 만큼이냐 하면 예상하신 것보다 훨씬 더 조용해집니다. 오죽하면 저 자신은 현직에 있을 때의 그 세월을 '이승'이라 여기고, 지금의 이 세상을 '이승'도 '저승'도 아닌 세상으로 여기고 있겠습니까? 원래 세상은 이처럼 조용하고 적막한 곳인데 우리가 현직에 있을 때는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나기만 하면 교장선생님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그 여러 사람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기억 속의 인물들로 변하기 때문에 그런 .. 2012. 2. 4.
교장실 비우기 -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Ⅰ 교장실은 비우셨습니까? 아직 1월이니까 한 달이나 남았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얼른 비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며칠 남겨 놓고 허둥지둥 하지 마시고 마지막 날 빈손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별것도 아닌데 담아보면 여러 박스가 되고, 펴보면 별것도 아닌데 교직원들이나 학부모들이 보면 '뭘 저렇게 가지고 갈까?'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댁에서도 '이런 걸 뭐하려고 가지고 오나……' 할 수 있으니까 기념패, 감사패 같은 건 웬만하면 쓰레기장에 버리고 돌아가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까짓 거 진열해 놓아 봐도 퇴임하면 봐 줄 사람도 없고, 마음이 허전한 사람이나 그런 것 너절하게 늘어놓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직생활 몇 년째입니까? 40년? 41년? 42년? 생각하면 '내.. 2012. 1. 28.
다시 여름방학 다시 여름방학 장마가 끝나자마자 햇볕이 강렬하고, 방학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대끼고, '지원'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행정에 시달리며 올해도 다시 반을 지낸 선생님들은 '벌써 여름방학이구나' 하기보다는 '아, 드디어 여름방학이구나!' 하기가 쉽습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합.. 2011. 7. 18.
김만곤 『슬픈 교육』 한정본(비매품)으로 낸 책의 표지입니다. 앞뒤 표지와 날개의 모습을 다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블로그는 내 것이지만 이걸 책이라고 '책 보기' 코너에 소개하게 된 것이 참 쑥스럽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나는 퇴임식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 이번에 퇴임을 하는 다섯 명에 대해 알아봤더니 두 명은 퇴임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하는 것이 좋은지, 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하지 않기로 했으며, "어이, 김 교장. 퇴임식이 언젠가?" 하거나 겉치레 인사로 "에이, 이 사람아. 왜 퇴임식을 하지 않는가?"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보내줄 작정입니다.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살려 최근에 출간한 책이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2022 비상교육)입니다. ☞ https://blu.. 2010. 2. 17.
정민표 『내 인생 1막 1장』 1 정년이 되면 무언가 남기고 싶어들 합니다. 그렇지 않을 리 없습니다.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직원들과 식사라도 할까? 다른 사람도 좀 부를까? 더러 꽃다발이나 선물 같은 걸 가지고 오겠지? 장소를 구해서 아예 퇴임식을 할까?……. 문제는, 폐를 끼치고 부담을 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 부담을 줄이려고 하겠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됩니까? 그래서 조용히 마지막 퇴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에게 넌지시 물어보면 "그러면 됩니까! 교장 선생님이야말로 꼭 퇴임식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교장 선생님이야말로?' 남들도 다 그런 말을 들을 게 분명합니다. '이 사람은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말을 하고 있나?' 흘낏 쳐다보고 또 생각합니다. '당사자에겐 심각하지만.. 2009. 2. 19.
가을葉書(Ⅴ) : 안병영 전 부총리를 그리워하며 운동장 건너편의 활엽수들이 가을을 보여줍니다.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아침 다르고 오후가 다릅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제 온 나무가 다 붉어졌구나.’ 했는데, 점심을 먹고는 그 붉음이 더 맑아진 걸 확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의 저 윗부분이, 붉게 물드는 나무는 좀 칙칙한 붉은색, 노랗게 물드는 나무는 노란색 가루를 뿌린 듯했는데, 그 붉음과 노랑이 차츰 아래로 내려왔고, 드디어 오늘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칙칙하던 그 색이 차츰 깨끗해지는 걸 보면 결국에는 선홍색, 선황색이 될 것입니다. 설악산 같은 곳은 어떻겠습니까. 속초의 안병영 전 부총리가 생각납니다. 그분이 알면 좀 곤란하지만, 지난여름에 볼일이 있어 택시를 맞추어 속초에 갔었습니다. 설악산 기슭을 넘어 오가며 가을에는 저 울창한 숲이 .. 2008.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