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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든 책

김만곤 『슬픈 교육』

by 답설재 2010. 2. 17.

                                                                 

 

 

 

한정본(비매품)으로 낸 책의 표지입니다. 앞뒤 표지와 날개의 모습을 다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블로그는 내 것이지만 이걸 책이라고 '책 보기' 코너에 소개하게 된 것이 참 쑥스럽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나는 퇴임식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 이번에 퇴임을 하는 다섯 명에 대해 알아봤더니 두 명은 퇴임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하는 것이 좋은지, 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하지 않기로 했으며, "어이, 김 교장. 퇴임식이 언젠가?" 하거나 겉치레 인사로 "에이, 이 사람아. 왜 퇴임식을 하지 않는가?"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보내줄 작정입니다.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살려 최근에 출간한 책이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2022 비상교육)입니다.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40329

                                                                  ☞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40306

 

 

 

 

 

 

본문에서 뒷 표지에 인용한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업방법을 바꿔야 노벨상을 받을 날이 가까워질 수 있다. 과학시간이래야 설명으로만 일관하는 수업, 실험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매뉴얼'을 확인하는 식의 구경하는 학습에 지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수업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사교육비나 대입제도에 대한 천착 이상으로 수학․과학 학습의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현대교육의 맹점은 '시간엄수․복종․기계적인 반복'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옛 주장(1980)을 잘 암기하면서도 그대로 두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를 해마다 초청해서 "풀빵 찍듯 하는 학교, 국가경제 망친다"(2007),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다"(2008)는 단순하고 당연한 경고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그가 이제 한국을 방문할 필요가 없게 해야 한다. 학교교육을 교육과정 기준대로 실천하고, 교육과정 기준대로 평가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혁신과 행정기관에서의 혁신은 그 성격부터 다르다. 학교에서의 혁신과제는 보다 명확하다. 그것은, 각 학교에서 그 학교만의 교육과정을 잘 구성하여 제대로 실천하고 평가하고 환류하는 일이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의 내용을 잘 암기하라고 하지 말고, 교육과정에 따라 그 교과서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수업계획을 수립하고 교육과정상의 교육목표를 충실하게 달성하는 일의 혁신이어야 한다. 혹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걸 모르는가, 그렇다면 학교교육의 본질 지도는 하지 않고 무엇에 그처럼 노력해왔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행정력이나 교사들의 열정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우리는 다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멀리 떠나 있다는 점뿐이다. 우리의 경우 교육부나 어느 교육청에서 "아이들이 분수 계산을 잘 못한다"고 언급하거나 "숙제를 잘 내주겠다는 것이 우리의 교육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들 중 누가 "참 훌륭한 분석이고 훌륭한 교육정책"이라고 이야기해주겠는가. 그런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고, 오늘도 새로운 미사여구로 된 수많은 교육정책을 안고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교육행정가들이다.

 

 

머리말과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머리말은 아주 멋드러지게 쓰려고 했지만 결국은 밋밋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목차를 보면 알아채는 분이 계시겠지만 그간 '시론'이랍시고 쓴 것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러니 재미는 없는 책입니다.

그 목차를 한번 대충 보시고 혹 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궁금하시면 이메일(mahngon@hanmail.net)로 주소와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한정본이지만 우리 학교 교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보관분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

 

 

 

『슬픈 교육』 <머리말>

      

알베르 카뮈는, 정신의 첫째 단계는 진실인 것과 거짓인 것을 가려내는 것이지만, 사고(思考)가 사고 자체에 대해 성찰하게 되자마자 그것이 처음으로 발견하는 것은 어떤 모순이며, 이 경우 애써 설득한다는 게 무용(無用)하고, 여러 세기에 걸쳐, 이러한 문제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분명하고 간결한 논증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습니다(『시지프스의 신화』).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인 그러한 지론의 결과는, 그 지론에 의해 그 지론 자체가 파괴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참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그 정반대의 주장도 참임을, 따라서 우리 자신의 명제가 거짓임을 주장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그 정반대되는 주장은 우리의 명제가 참일 수 있음을 인정치 않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게 거짓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 자체도 거짓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우리의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만이 거짓이라고, 혹은 우리의 주장만이 거짓이 아니라고 단언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수한 올바른 판단과 그릇된 판단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진실한 주장을 표명하는 것은 그와 동시에 <그것은 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무한히> 그렇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들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남의 주장을 듣고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많지만 수용하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더니, 주장하는 사람뿐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각자 자기주장을 하기에 바빠서 남의 주장을 들을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계로 말하면, 국회 이야기는 우리가 뿌린 씨가 싹터 자란 곳이고, 그게 건방진 표현이라면 우선 우리들 자신부터 성찰하고 바라봐야 할 ‘남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이 조직은 조용할 때는 ‘힘’이 그 주장을 대신하는 경우로서 조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온 국민이 다 일어서서 떠드는 꼴도 연출됩니다.  논증을 잘 하면(사실은, 잘못 하면) 어떠한 주장도 다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어떠한 주장에도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 운전을 꼭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칩시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의 우리 교육은 영 엉터리처럼 여겨집니다. 더구나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운전을 가르치는 세계적 사례들을 들지만, 운전을 가르치지 않는 사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주장에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런 사례는 많습니다. 가령 우리 학교 도서관에 둘 책을 구입한다고 칩시다. 어떤 사람이, 이번에는 역사에 관한 책만 사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려서 모두들 특별한 반대를 하지 않게 되고 결국 그렇게 결정되고 마는 것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다른 종류의 사례도 있습니다. 중․고교 학생들 교복 문제 같은 것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몰라도 “교복을 입히자!” “자유롭게 입게 하자!”는 의견이 양극단에 설 수 있을 뿐이므로 어느 한쪽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양보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약 3년간 저도 결국 쉰 가지가 넘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남의 주장을 듣는 데 신물이 난 분에게는 이런 실례가 없을 것입니다. 대단히 미안한 일입니다.  해명을 좀 하면 「경기신문」이라는 지방지에(그런 일간지가 있습니다) 꼬박꼬박 실었는데, 읽어봤다는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묶어서 저를 찾는 분께라도 선물하는, 말하자면 ‘기념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저의 그 주장이라는 걸 요약하면 한 가지일 뿐이고, 그건 교육의 ‘진정성’을 찾자는 것입니다. 단순한 그 주장을 하며 교직생활을 마치는 저에게는 교육이 슬픔입니다.

 

2010년 2월

   

 

 

 

<목차>

 

어떤 생각으로 가르치는가

 

요코 이야기/15

 

학교가 할 일, 교육부가 할 일/18

 

절실한 교육과정 혁신/21

 

교육과정 재량권 확대의 필요성/24

 

학교교육 혁신의 지름길/27

 

애만 태우는 독서교육/31

 

교육혁신의 방향/35

 

우리 역사를 멋지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39

 

당연한 전국학력평가/42

 

‘만신창이’가 되는 재량활동/46

 

멋진 행정을 포기한 사례/50

 

교육행정의 주안점/54

 

특목고 문제의 초점/58

 

“쉽게 말해요” 캠페인/62

 

PISA에서 드러난 우리의 허점/66

    

무엇을 위한 행정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교훈/73

 

놀랍고 한심한 ‘不孝國 1위’/77

 

대입제도를 고정시키는 일/81

 

‘과외공화국’에서 교육이 할 일/85

 

교육의 큰 그림/88

 

하인스 워드를 위한 감사패/91

 

학교폭력, 누가 해결해야 하나/94

 

학교자율화, 본질과 방안/97

 

국가학업성취도평가의 조건/100

 

왜 재미없는 공부를 시키나/103

 

어이없는 독도문제/106

 

무방비 상태인 교문/109

 

‘새싹’ 조차 짓밟히는 사회/112

 

교육의 기준, 누가 정하나/115

 

기본원리에 충실한 평가/118

 

유폐된 듯 지내는 비만아들/121

 

교육적인 돈, 도덕적인 돈/124

 

숨 막히는 교과서 중심 교육/127

 

청소년 부패인식? 「너나 잘 하세요!」/130

 

외롭지만 신선한 KAIST의 선발/133

 

교육개혁, ‘흐지부지’하다는 이유/136

 

적성․진로지도가 무색한 대학입시/139

    

무엇이 가르쳐야 할 지식인가

 

지루하고 따분한 대한민국 교실/145

 

한자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148

 

‘교과교실수업’을 하자는 이유/151

 

수요자형 교원연수/154

 

국가학업성취도평가의 전제/157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160

 

공부시간 총량보다 중요한 것/163

 

교사 수 확대와 자질향상/166

 

사교육과의 전쟁, 그 승부처/169

 

학교자율화방안, 낙관적인가/172

 

사교육대책이 비판받는 이유/175

 

‘미래형 교육과정’과 우리의 미래/178

 

교육과정에 담아야 할 ‘미래’/181

 

교과서 대여제의 가능성/184

 

빛이 보이는 입학사정관제/187

 

비(非)자율학교를 위한 변명/190

 

교원평가의 남은 과제/193

 

에듀파인, 서둘러야 하나/196

 

외고문제와 공교육의 차별화/199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의 과학교육/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