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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든 책

『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

by 답설재 2014. 11. 7.

힐데가르트 하브리크 편, 정승일·김만곤 역

『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3 재판)

 

 

 

 

 

 

 

 

'내가 만든 책' 얘기를 하게 되니까 어쭙잖은 근본이 설설 드러납니다.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1992년 7월 10일에 초판을 내고, 1993년 3월에 재판을 냈으니까, 이 책으로 말하면 1993년은 아주 신이 났을 것입니다. 재판을 찍는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평범한 사람에겐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책이 한 달이나 늦게 오는 바람에, 병자는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결국 죽은 후에 그것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가엾은 친구! 그의 마지막 책, 이 책은 그가 그토록 고대하며 기다렸던 책입니다. 흥분되어 떨리는 손으로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교정을 보았던가! 이 책 한 권을 갖기 위해 얼마나 서둘렀던가! 이미 말을 할 수 없게 된 마지막 그 며칠 동안에도 그는 문만을 응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인쇄공, 교정자, 제본공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불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에 찬 그의 눈을 보았다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주었을 텐데……

 

    -  알퐁스 도데, 최복현 옮김,「마지막 책」(『별』, 인디북, 2011, 237~239) 중에서

 

알퐁스 도데가 이렇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으로 말하면 아주 신이 났을 것"이라고 한 건, 그때 나는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한창이었고,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일하다가 교사생활을 마감하고 정식으로 교육부 편수관이 되었고, 편수관으로서의 일들이 이 책을 낸 일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세는 얼마를 받았는지, 몇 푼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 돈은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이라고 넣어봤더니 흔적도 없습니다.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지만 모든 것이 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건데…… 하기야 그래서 뭘 좀 더 해보려고 애를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찍어두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고, 도자기에다가 임명장이나 훈장 같은 걸 새겨서 잘 보이는 곳에 두는 사람, 돌에다가 이름을 새겨서 여간해서는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사람, 이렇게 책을 내는 사람, 돈도 엄청 혹은 끝도 없이 모으는 사람도 있고……

 

공역자 정승일은, 4년제 대학 야간부 3학년에 편입했을 때 가르쳐 준 지도교수입니다. 그분은 전화만 하면 연구실에서 받았으므로 그 방에서 자고 식사도 하고 그러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의 보답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책을 냈더니 오랫동안 고마워했습니다. 원서(原書)를 제공했고 일어판은 이렇더라며 직역을 해서 보여주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표 역자였는데도 흡사 나 혼자 일한 것처럼 해서 '가르치는 사람이란 이런 것이구나' 했습니다. 더 존경스러운 것은, 그분은 박사학위를 늦게 받았는데 그 긴 논문을 나보고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아파트 건립 집중도에 관한 논문이었습니다.

 

서로 편지도 주고받고 했는데 그 편지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그걸 찾아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번역은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쓴 글이니까 가소롭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서 일단 여러 나라 아이들의 사정을 짐작해야 하고, 어떤 단어들은 무얼 말하는 건지 도무지 짐작조차 어려운 경우가 있어서 사방으로, 심지어 그 나라 대사관에까지 연락해서 알아보기도 했고,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고 단어 하나 가지고 씨름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렇게 번역한 22개국 원고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편입니다. 읽어보시라는 건 아니고 편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읽어볼 만한 글은 아래에 별도로 제시했습니다.

그 나라 소개와 <생각해 봅시다>는 원서에는 없는 걸 만들어 넣었습니다. 말하자면 교육자료화하려고 한 것입니다.

 

 

 

 

 

번역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구나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애를 썼고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보면 '그야말로' 엉망입니다. 이런 건 전문 번역가들이 보면 웃을 일이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얼마 전까지 그들처럼 살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래 원고를 읽어보면 식수를 구하고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삶의 그런 모습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나는 아프리카의 '시커먼'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리처럼 이렇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고민도 하고, 사랑을 앓기도 하고, 눈물겨워하고, 하여간 이런 고급스러운 일들은 우리만 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는 곳에 매달 딱 만원씩이지만 퇴임을 한 지금까지도 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도 도와주어야 할 곳,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하는 교육계 지도자들 중에는 단돈 10원도 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다음은 그걸 깨닫게 된 한 원고입니다. 우리는 단답식으로 배워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 배우려니까 별 희한한 자료에서도 배우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