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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든 책

『역사 인물 이야기』

by 답설재 2015. 1. 2.

 

『역사 인물 이야기(교학사, 1993)

 

 

 

 

 

 

     Ⅰ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며 파견근무를 하던 몇 년간은 어려웠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일도 그랬습니다. 교육부 일과 파견근무하는 기관의 일, 두 가지 일을 하면서도 이런 자료의 원고도 썼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노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그 시절이 그립다니…… 인생이란 이래저래 알다가도 모를 일이 분명합니다.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에 관한 책을 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그런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제안에 대해 그때만 해도 머리가 좀 돌아가고 있었던지 몇 가지 특징부터 설정했습니다.

· 미화(美化)를 일삼는 위인전류가 되지 않게 하여 '나도 위인이 될 수 있겠구나' 싶도록 한다.

· 아이들이 가까이하고 싶도록 일화 중심으로 쓴다.

· 사회과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과 학습자료가 되게 한다. …………

 

 

 

 

 

    Ⅱ

 

 

그런 자료가 되도록 하고 싶었던 생각이 저 위 '일러두기'에도 나타나 있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별도의 머리말을 써서 분명히 알렸습니다.

지금 새로 읽어보니까 '뭐 이런가?' 싶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심각하였을 것이므로 그대로 옮겨 놓겠습니다.

 

 

영웅이 되고 싶은 모든 어린이에게

 

 

우리는 지금까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을 우리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인물들이 영웅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삶의 애환이 있었고, 걱정과 눈물과 웃음과 따뜻한 인정이 있었으며, 요컨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는 데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올라가지 못할, 산과 같은 위치의 인물로 그려져 왔습니다.

오늘날, 영웅은 어느 한 가지 일에 열중하여 그 일에 남다른 면모를 보이고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신문이나 방송에는 그런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를 움직여 온 우리 조상들 중에도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어린이들 중에도 이미 영웅이 될 만한 바탕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이처럼 영웅이 되어 가고 있거나 영웅이 되고 싶은 어린이들을 위한 자료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4·5·6학년 사회과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더 많은 인물들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 인물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로써 어린이 여러분의 학습은 물론, 앞으로 영웅이 되어 가는 길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Ⅲ

 

 

밝혀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은 1992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후 10여 년간 새 학기만 되면 교보문고의 아동문고 코너에서는 늘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의 교육부에서 근무하며 바로 건너편 동네에 있는 그 서점에 갈 때마다 그걸 확인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그 코너의 앞자리!

그 어떠한 책이라도 짐작에 사나흘만 팔리지 않으면 창고로 들어가는지 아니, 출판사로 반품되는지 사라지고 마는 그 서점에서 며칠만 그런 대접을 받아도 일단 성공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대접이 10여 년간 계속되었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분명했습니다.

"그럼, 돈도 많이 벌었겠네?" 그것도 밝히겠습니다.

 

보기에 특히 좋았던 것은, 자녀를 데리고 온 예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그 책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주 보았습니다. 한없이 아름다워서 그 아이가 부러워지는 이 세상이, 덩달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그 책을 썼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아니, 자랑스러웠던가? 그보다는 차라리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웠다"는 건, 무언가 하면, 그 책에 대해 인세(印稅)를 받는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매절(賣切)'을 해버린 것입니다. 책이 팔리는 양에 따라 집필료를 받는 인세에 비해 "전과"나 "문제집" 원고를 썼을 때처럼 그 값을 원고를 넘기면서 한꺼번에 받는 방법을 매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원고료로라도 많이 받았을 것 아니냐?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ㅎ

"누가 그렇게 대히트를 칠 줄 알았습니까? 그런 걸 다 알고 살아갑니까?"

"제 경우에는 잘 팔릴 만한 책은 매절로, 안 팔릴 만한 책은 인세로 계약을 하곤 했습니다. ㅠㅠ

 

이 책의 경우, 책이 많이 팔릴수록 나는 배가 아팠으니 운명은 참 가혹했습니다.

 

 

    Ⅳ

 

 

밝혀둘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내가 만든 책', 이런 글을 실으니까 "나에게 한 권 보내라. 내 아들에게 읽혀 보겠다"는 고마운 말씀을 하시고, "미안하게도 저에게도 남은 게 한두 권뿐입니다. 그러니 다른 걸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했더니 영영 돌아서버리는 썰렁하고 섭섭한 경우가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 점을 좀 양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나에게도 초판은 없고, 저렇게 나온 중판 한두 권밖에 없습니다.

'어디 중고서점에 가면 구할 수 있으려나……' 몇 번이나 그 생각을 했지만, 그러다가 이내 '그걸 이제와서 구태여 뭐하려고……' 하고 말았습니다.

 

 

    Ⅴ

 

 

세월은 가혹합니다.

서점에 가면 정말로 잘 만든, 저런 책은 얼마든지 있어서 너무나 다양하고 찬란해서, 고르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나는 지금 한때의 추억을 더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