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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인생9

인생이 노래 같은 이도 있겠지요 꿈처럼 아름답던 날 그날에 날 담아보네 언제나 내 맘속에 그림처럼 숨 쉬는 꽃잎의 향기 같아 언젠가 잊혀지겠지 그런 게 인생인 거야 아련한 기억 속에 묻어둔 시처럼 자꾸만 흐려지네 Ye Lai Xiang 바람에 실려 Ye Lai Xiang 꽃잎에 담아 아아아 닿을 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때로 가만히 뒤돌아보니 우리가 걷던 그 길엔 꽃잎은 피고 지고 계절은 또 바뀌고 내 모습도 바뀌었네 되돌아갈 순 없겠지 그런 게 인생인 거야 지금 난 행복하네 꿈꿔오던 향기가 내 앞에 춤을 추네 Ye Lai Xiang 바람에 실려 Ye Lai Xiang 꽃잎에 담아 아아아 닿을 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때로 Ye Lai Xiang Ye Lai Xiang Ye Lai Xiang 노래 '야래향(夜來香)'은 1942년에 처음 나.. 2023. 10. 9.
지나가버린 꿈의 나날들 나는 지금 자그마한 아파트에 삽니다. 처음엔 돌아눕기도 어렵겠다, 숨 쉴 곳도 없다 싶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더니 지금은 이만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 아파트에서 이렇게 작은 집들은 3개 동입니다. 어쩌다가 젊은 부부나 어린아이와 사는 집도 있지만 다 늙어서 부부가 등산이나 다니거나 뭘 하는지 둘이서 들어앉아 있는 집이 많습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잠깐이라도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늙어버린 부부가 타면 그들끼리나 서로 간에나 아무 말이 없고 무표정합니다. 주차장에 내려가보면 평일인데도 차가 별로 빠지지 않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 오는 집을 봐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들어갈 공간이 없어 버려져야 마땅한 서장, 저렇게 어처구니없이 큰 액자 같은 물건이.. 2023. 9. 3.
백석 「흰밤」 백석 / 흰밤 녯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정본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그야말로 가을밤, 추석입니다. 온갖 것 괜찮고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는 듯 오늘도 낮 하늘은 청명했습니다. 블로그 운용 체제가 티스토리로 바뀌자 16년째 쌓이던 댓글 답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그 바람에 그렇게 되었는지 오가며 댓글 답글 다는 일에 시들해졌는데, 그러자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나는 내가 없는 날에도 그 댓글 답글이 내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로는 한 편의 글을 쓰기보다 정성을 들여서 댓글을 달고 답글을 썼습니다. 또 힘을 내야 할 것 같긴 한데 마.. 2022. 9. 9.
앨리스 먼로 ... 기억 보트가 움직이자마자 옆자리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트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항해 내내 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나 갑판으로 나가 사람이 거의 없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구명 용품이 든 통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앉은 그녀는 익숙한 장소들, 또 알지 못할 장소들에 대해 아련한 아픔을 느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기억'함으로써 그 모든 일을 다시 한 번 경험한 후 봉인해 영원히 보관해 둘 생각이었다. 단 하나도 놓치거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날의 일을 순서대로 재구성해 마치 보물인 양 마음 한구석에 갈무리해 넣어두려는 것이었다. 메리얼은 두 가지 일을 예상할 수 있.. 2022. 2. 23.
나는 왜 아플까? 심장병이 걸려 응급실에 실려가고 두 차례 핏줄도 뚫고 했다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되고, 무슨 자랑거리나 생긴 것처럼 "이렇게 지낸다"며 이 블로그에 쓰고, 그렇게 지내다가 내 건강을 기도한다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기도? 나를 위해? 놀라웠습니다. 우선 나는 정말 기도를 필요로 하는가, 공연한 일 아닌가 싶었습니다. 절실하면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도 흔히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고 쑥스럽지만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오십 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단 하루이틀만이라도 말미를 달라는 기도를 하며 직접 확인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구태여 효과를 바라지 않거나 효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도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2021. 2. 21.
반환(返還) 반환(返還) 소중한 사람들은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상실(喪失)'이었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제 내게는 더 이상 소중한 것들이 찾아오지 않겠구나 싶을 때쯤 이번에는, 하나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조차 사라지면서 '아! 이런 것들마저……' 싶은 상실감을 느꼈는데, .. 2017. 6. 1.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名盤』과 그만두게 된 숙제 그만두게 된 숙제 ---------------------------------------------------------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名盤』(현암사, 1997) 1997년, 정부중앙청사에서 죽자사자 일만 하며 지낼 때, 그러니까 살아간다는 것이 일하는 것뿐일 때 사놓은 책입니다. 몇 군데 붙여 놓은 포스트잇이 그대로 있는 걸 봤습니다. 그대로 붙어서 옛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런 음반은 언젠가 좀 조용해지면 제대로 들어봐야지.' '우선 아내에게 그럴 듯한 오디오가 필요하다고 해야겠지? 정색을 하고서 이제 책 대신 오디오라고 말하면 되겠지?' 쑥스럽지만 이곳저곳 그런 생각이 포스트잇의 모습으로 붙어 있습니다. 둘째가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구형 오디오를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선뜻 그렇게.. 2014. 7. 16.
위화 『인생』 위화 『인생 活着』 백원담 옮김, 푸른숲 2009 푸구이 노인의 기막힌 인생 역정입니다. '뭐 이런 인생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는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야기 속의 '도련님'이 흔히 그렇듯 그는 마치 그 풍요로운 생활을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는 듯 계집질, 도박을 일삼았고, 그 못된 버릇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해서 아이를 가진 아내까지도 눈앞에 보이는 대로 구박했습니다. 그러다가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단숨에 전 재산을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헐벗고 굶주리는 농부로 전락합니다. 상심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군대에 잡혀가 갖은 고초를 겪었으며, 겨우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딸 펑.. 2014. 2. 21.
김성규 「우는 심장」 우는 심장 김성규 나를 죽이고 김이 나는 심장을 꺼내 가 라고 말하면 네 심장이 우는 소리 너를 저주할 거야 어떻게 살아가든 그날 나는 죽어서 사라졌어야 했는데 이제는 지쳐 죽지 못하고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하네 우는 심장을 들고 노래하는 심장을 사세요!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탁자 밑에 손을 숨기고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너는 나에게 묻지 미안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나는 할 수 없이 살아졌던 것이라고 심장 속에서 몸을 말고 잠을 자다 누군가에게 심장을 팔러 걸어갔지 냄비에 넣어 오래 요리하면 핏물을 뱉어내며 웃는 심장 심장은 나에게 묻지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나는 할 수 없이 사라졌던 것이라고 술잔을 비울 때마다 심장이 우는 소리로 나에게 노래했지 나를 저주할 거야 어떻게 살아가든 형편없는 가격.. 2013.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