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백석 「흰밤」

by 답설재 2022. 9. 9.

백석 / 흰밤

 

 

녯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정본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그야말로 가을밤, 추석입니다.

온갖 것 괜찮고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는 듯 오늘도 낮 하늘은 청명했습니다.

 

블로그 운용 체제가 티스토리로 바뀌자 16년째 쌓이던 댓글 답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그 바람에 그렇게 되었는지 오가며 댓글 답글 다는 일에 시들해졌는데, 그러자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나는 내가 없는 날에도 그 댓글 답글이 내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로는 한 편의 글을 쓰기보다 정성을 들여서 댓글을 달고 답글을 썼습니다.

또 힘을 내야 할 것 같긴 한데 마음을 먹기가 어렵고 싫습니다.

 

그런데도 이걸 사람이라고, 블로그라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추석이면 무슨 추석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는 게 도리일 것 같았는데 생각나는 일들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뿐입니다.

그럼 좋은 시를 한 편 실어보자 싶어 백석의 어느 시에 추석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아 앞으로 뒤로 뒤적였지만 그 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흰밤'을 선택했습니다.

수십 년 나의 남루함을 다 감추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습니다.

저 수절과부처럼 목을 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괜히 내게 와서 좋은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에게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다 하더라도 주어진 시간대로 지켜나 보다가 가는 것이 도리일 것이어서 그날까지 조금이라도 의젓해지다가 가야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만일 것입니다.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