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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조영수(동시)「잘 도착했니?」

by 답설재 2022. 9. 29.

 

 

 

잘 도착했니?

 

 

                                                                조영수

 

 

카메라로 꽃을 찍어온 아빠

컴퓨터 화면에서

꽃의 얼굴을 고르고 있다

 

벌의 엉덩이에 가린 꽃

벌레를 곁눈질하는 꽃

햇살에 눈이 부셔 찡그린 꽃은

휴지통으로 옮겨진다

 

고르기를 끝낸 아빠가

휴지통 비우기를 클릭하는 순간

못난이꽃 얼굴들 다 돌아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향기를 두고 온

들로

산으로.

 

잘 도착했니?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한 시인의 눈길이 곱고 고맙습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눈길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잘 도착했니?"

- 어디에?

- 있던 그곳에? 들에? 산에?

그러다가 문득 저승 생각이 났습니다.

나에게 "잘 도착했니?" 하고 물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서러워지기 시작했고 곧 눈물을 글썽거리게 되었습니다.

"잘 도착했니?"

그런 시간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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