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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김보나 「러시아 거리」

by 답설재 2022. 7. 4.

출처 《샤갈 Chagall》(2010.12.3~2011.3.27. 서울시립미술관)

 

 

 

러시아 거리

 

 

김보나

 

 

눈이 내리는 오후, 나는 한 남자와 샤갈의 전시회에 갔다. 젊은 샤갈은 그림 안에서 아내를 안고 마을 위를 비스듬하게 날았다. 평생 사랑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는 샤갈의 해설을 보며, 나는 곁에 선 남자에게 말했다. "로맨틱해요." 남자는 단조로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예전에 본 그림이라고 했다. 나는 스무 살이고 그는 교수였다. 우리는 '바니타스의 이해'라는 교양 강의에서 만났다.

죽음을 그린 명화를 탐구하는 시간, 프랑스에서 유학한 그는 파리의 카타콤을 거닌 이야기를 꺼냈다. 도심 아래에 숨겨진 지하 묘지가 있고 그곳의 벽은 해골 600여 구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괴테의 말을 불어로 읊기도 했다. "밭도 나무도 정원도 내게는 그저 하나의 공간이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당신이 그곳을 장소로 바꾸기까지는." 묘지도, 사랑도 낯선 나는 그의 프랑스어 발음에 빠져들었다.

미술관의 창밖에서 눈발이 빗발쳤다. 눈송이가 지우개 가루처럼 어슷하게 쏟아졌다. 혹시 신이 도시 위에서, 잘못 쓴 글자라도 지우는 걸까. 나는 프랑스에 대해 잘 몰랐다. 나는 그의 나이, 사는 곳, 아내의 유무를 몰랐다. 신이 기울여 쓴 문장을 지우는 동안 남자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몸을 떨었다. 떠오르려고 시동을 거는 것이었을까. 눈앞에선 언덕에 선 샤갈과 아내가 손을 잡고 있었다. 아내가 홀로 떠오르는 그때, 샤갈은 발끝에 힘을 주고 굳게 서 있었다.

맞잡은 양손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는 출구 앞에 섰다. 그와 나는 되찾은 두 손을 들어 각자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눈송이가 온 무게를 걸고 떨어지는 밤이었다. 나는 혼자 시청역으로 향했다. 쌓이는 눈송이가 어떤 연인의 모습도 아로새기지 않는 그 밤, 나는 샤갈의 말을 빌려 그날을 기록했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그의 눈주름이 부끄러웠다고는 적지 않았다. 눈이 잠시 내린 도시를 걸었을 뿐인데, 설원을 거닐었다고 믿었다.

그날, 화가의 모델이 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입술에 붓을 물고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 화가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다른 방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낯설어, 나의 자녀가 아니란 걸 알았다. 샤갈은 평생 둗 번 결혼했다. 첫사랑 벨라, 벨라가 죽은 후 만난 바바. 두 아내를 둔 화가를, 비평가들은 사랑의 화가로 기록했다.

신이 하늘에서 문장을 적는 여러 계절 동안, 책장이 넘어갔다. 나는 그가 출간한 책을 찾아 읽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그와 교정을 걷는 동안 그가 말했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앓다가 위독해지면, 침대를 기울여 몸을 꼿꼿이 세우고 죽었어요. 바른 자세로 죽어야 예수가 자신을 알아보고 천국으로 부른다고 믿었거든요. 나는 그 말을 옮겨 적지 않았다. 그의 부름에 더 이상 응하지 않았다. 눈발이 날리지 않는 계절이었다. 신이 기록을 중단해서일지 혹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서둘러 적느라 바빠서일지는 알 수 없었다.

졸업을 앞둔 무렵, 나는 맹장을 떼는 수술을 받았다. 맹장에 염증이 생겼는데 제때 병원을 찾지 않아 복막염으로 번졌다고 했다.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그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회복을 비는 메시지를 읽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비척거리며 병원 복도를 지나 체중계에 올라섰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묻는다. 맹장을 꺼내도 왜 몸무게는 줄지 않는가?

시간이 지나 나는 낮의 거리를 걷는다. 단독주택 난간에서 한 여자가, 몸을 내밀고 겨울 이불을 턴다. 발끝에 온 무게를 다 걸었을 것이다. 한 생애를 다 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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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나  1991년 서울 출생. 2022년 『문화일보』 등단.

 

 

『현대문학』 2022년 4월호.

 

 

저 남자 같은 수많은 남자들

저 스무 살 같은 수많은 스무 살들

그들을 생각합니다.

 

샤갈의 저 그림을 본지 십 년이 지났습니다.

샤갈의 순수에 눈이 부셨는데......

 

 

 

댓글2

  • 숲 지기 2022.08.28 21:48 신고

    교장선생님,
    다시 뵐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이 글에도 댓글을 달았지 싶은데,
    이사오시면서 정리가 되었나 봅니다.

    건강하시고요,
    쭈욱 뵙고 싶습니다.

    답글

    • 답설재 2022.08.29 08:49 신고

      숲지기님!
      고맙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쉬었고 지금도 쉬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끝날 때까지 그대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