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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유선혜 「아빠가 빠진 자리」

by 답설재 2022. 7. 12.

 

 

 

 

아빠가 빠진 자리

 

 

유선혜

 

 

흔들리는 이는 밤사이 빠졌고 아침이 되면 그 이를 뱉어냈다. 세 번 나는 이는 없다는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젖니를 모아두던 상자가 있었다. 밤마다 상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새 이가 영원하라고 빌었다. 어린것들은 하얄수록 쉽게 변하는 법이다.

 

이가 모두 자라자 더는 아빠와 함께 잘 수 없었다.

 

사전에 의하면 충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내 입으로 처음 세균을 옮긴 사람을 찾아낸 뒤, 온통 책임지라고 하고 싶었다.

이를 닦으면 거품이 흘러나왔고 입을 헹구면 끝도 없이 구역질이 났다.

 

치과에 가는 날들이 늘었다. 아빠는 돈을 냈으며, 썩어버린 이를 고쳐주었고,

나는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빠를

상자 안의 젖니처럼

 

그렇게 두 번째 아빠가 생기고 세 번째 아빠가 생기고 네 번째 아빠 계속 계속 아빠가 늘어나고

처음의 아빠는 다정하고 그다음 아빠는 엄격하고 그다음 다음 아빠는 유머러스하고

아빠들은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나를 이룩해주고

 

아빠를 줄지어 늘어놓고 아빠의 개수를 세어보면서 어떤 아빠가 제일 하얀가 따져보며 괜한 투정도 부려볼 때, 상자 속에 아빠가 가득 차 아빠가 넘쳐서 더 이상 상자의 뚜껑을 닫을 수 없을 때,

그러면 내 키도 영영 멈춰버릴 것 같았다.

 

아빠를 수집하고 싶었다.

아빠를 모으면

그러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회상이 재미있고 아름답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됐을까, 수집되지 못할 사람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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