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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알랭 드 보통21

한탄 혹은 탄식 웃고 말면 그만이고 '저러는구나' 하면 섭섭할 일 없긴 하지만 아내로부터 듣는 원망은 끝이 없다. 그중 한 가지는 뭘 그리 중얼거리느냐는 지적이다. 이젠 그게 못이 박혀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도 몰래 중얼거려 놓고는 바로 후회를 하곤 하니까 반성조차 하지 않던 때에 비하면 그나마 발전한 건 분명하다. '발전'이라고 표현했으니 말이지만 사실은 '그래, 중얼거리는 것도 버릇이지. 좀 점잖게 살자' 다짐한 것이 여러 번이어서 그럴 때마다 '오늘 이후에는 결코 이런 일이 없으리라!' 결심하면서 '그러니까 오늘이 이 결심의 출발선이다!' 하고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나도 몰래 그렇게 한탄(혹은 탄식)하고는 또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그 순간을 '출발선'으로 삼은 것도 수십 차례였으니 나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 2023. 4. 2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기쁨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작품이다. 그런 문호도 인간이니까 그를 싫어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 그중 프리드리히 니콜라이(계몽주의자)는 괴테의 작품을 패러디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1775)을 썼고,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그 작가를 '엉덩이 시령사(視靈師)'로 등장시켜 풍자했다. 엉덩이 시령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렇다. 노학자 파우스트가 마녀의 부엌에서 영약을 마시고 20대의 청년이 되어 순진무구한 처녀 그레트헨을 쾌락의 대상으로 삼은 데다가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까지 죽게 한 죄책감에 빠지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발푸르기스의 밤의 환락경으로 이끌어 파우스트는 또다시 도덕적 마비에 빠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 엉덩이 시령사가 등장한.. 2023. 4. 24.
알랭 드 보통(철학)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정명진 옮김, 생각의나무, 2010(2002) "인기 없는 사람을 위하여"(소크라테스)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에피쿠로스) "좌절한 사람을 위하여"(세네카) "부적절한 존재를 위하여"(몽테뉴) "상심한 사람을 위하여"(쇼펜하우어) "곤경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니체) 알랭 드 보통이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철학자 여섯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잘 알려진 철학자(작가) 알랭 드 보통이 초등학생들도 알 만한 철학자들을 소개했으니 뭐라고 하는 게 주제넘고 해서 몇몇 문장을 발췌해 두기로 했다. #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의 의견을 다 존중할 필요는 없고.. 2023. 4. 20.
니체가 설명한 '천재성' 주제넘은 글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40518)에 니체가 한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한 것은 천재들은 자신을 감추고서 천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곤 한 것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인데 정작 그 천재들은 걸핏하면 에디슨처럼 말하고 아인슈타인처럼 말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에디슨이 정말 그랬는지 그로부터 직접 들어볼 순 없었지만 천재는 99%가 노력이라고 했다는 건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는 걸 강조한 아인슈타인의 언급도 나는 수없이 인용했다. "모든 이가 다 천재다. 그렇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그 물고기는 끝까지 자신이 멍청하다고.. 2023. 4. 18.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예전에 교과서를 집필하고 만드는 일을 주관할 때는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원고를 그렇게 쓸 수 있을까요?" "제가 잘 쓰는 것 같아요?" "그럼요, 우리 중에서 늘 최고잖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고스톱도 할 줄 모르고 바둑이나 붓글씨, 그림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시작하다가 말았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정도라도 쓸 줄 알게 된 건, 글쎄요, 책을 한 3천 권은 봤겠지요? 그 정도면 저 같은 바보라도 문장 구성에 대한 초보적인 안목은 갖게 될 것 같아요." 그럴 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냥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럼 나도 3천 권을 읽고 .. 2023. 4. 17.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1, 『뉴스의 시대 The News-A User's Manual』 문학동네, 2014 ♣ 모든 뉴스를 (30쪽짜리 신문과 30분짜리 방송을 통해) 한꺼번에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를 공급할 책임을 진 매체들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277) "정말 그래!" 싶긴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30쪽짜리 신문, 30분짜리 방송을 통해 뉴스를 봤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알랭 드 보통은 마치 옛일처럼 저렇게 썼습니다. 그게 참 통쾌하고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써놓고는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내면 탐구에 반대.. 2015. 10. 19.
우리는 행복해지고 있는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남녀 간의 심리를 어떻게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연애를 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심리적 변화를 기록해 두는 데 심혈을 기울였는가?' '그렇게 해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가?' 심지어 그런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의 기술』을 읽고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싶었습니다. 번역이 이상해서였을까요? 그 얘기를 이 블로그의 어디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방한 기사를 봤습니다. 「우린 모두 미친 존재…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섰으면」(조선일보, 2011.9.28.A23,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도입 글과 인터뷰 한 대목을 옮깁니다... 2011. 10. 3.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정영목 옮김, 이레 2004 나온 지가 꽤 된 책입니다. 내가 교육부에서 교장으로 나온 그 해에 산 책이니까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 스위스)이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쓴 책입니다. 작가는 아직 나이는 많지 않지만 무엇이든 분석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작품도 썼습니다. 그 책은 '그래, 정말 그래!' 싶을 데가 한두 곳이 아니었고 '요런 걸 어떻게 기억했다고 표현했을까' 싶어서 귀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 '보통'이란 이름이 얼른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디에 그의 이름이 보이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어 약간의 혼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여행의 기술", 우선 제목을 멋지게 붙.. 2010. 9. 3.
세 월(Ⅱ) 지나는 길의 개나리가 이야기합니다. "봐, 노랑이란 바로 이런 색이야." 누군가 모를 무덤가에는 진달래가 곱습니다. 멀리에서 복사꽃도 담홍색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복사꽃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1960년대나 70년대의 그 정서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가 나만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봄꽃들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곧 아지랑이 피어오를 봄을 ‘희망’만으로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에게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그 희망이 잔인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린애들이나 소년소녀들은 저 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란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얼굴이 무너지고 마음이나 정서도 그만큼 누추해져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2008.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