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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by 답설재 2023. 4. 17.

오래 전 어느 일간지(어느 신문이었지?)를 보며 부러워했던 사진

 

 

 

예전에 교과서를 집필하고 만드는 일을 주관할 때는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원고를 그렇게 쓸 수 있을까요?"

"제가 잘 쓰는 것 같아요?"

"그럼요, 우리 중에서 늘 최고잖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고스톱도 할 줄 모르고 바둑이나 붓글씨, 그림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시작하다가 말았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정도라도 쓸 줄 알게 된 건, 글쎄요, 책을 한 3천 권은 봤겠지요? 그 정도면 저 같은 바보라도 문장 구성에 대한 초보적인 안목은 갖게 될 것 같아요."

그럴 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냥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럼 나도 3천 권을 읽고 나서 새로 이 일을 시작할까?' 할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교과서 원고 쓰기는 언제나 급한 일이니까 대개 '그럼 나는 안 되겠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용기를 주어야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복수' 같은 걸 하고 싶었다.

무슨 복수?

자신들은 온갖 일을 향유하고 난 뒤 교과서를 집필하는 소중한 일까지 맡았는데 나는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책을 읽는 일에만 매달려서 마침내 그 일을 맡게 되었는데도 그들은 "넌 겉으로도 볼품이 없어 보이고 직접 상대해 봐도 별 것 아닌 인간이 분명한데 '왜!'(혹은 '어떻게 해서') 교과서 원고는 잘 쓰는가? 그건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 하고 묻는 듯한 태도에 대한 복수!

 

그 일도 옛일이 되었다.

이젠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이렇게 들어앉아서 '블로그질'이나 하고 있으니까 작가가 되고 싶다며 글 좀 봐주겠느냐는 요청을 해오는 사람도 있다.

작가 지망생이 워낙 많고, 이런저런 일에 매진하며 살다가 이제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하면 '설설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작가가 되어볼까?'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어느 날 '블로그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 블로그에는 댓글 다는 사람도 별로 없는 걸 보니까 이 사람은 할 일도 별로 없겠다' 짐작하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건 어처구니없는 제안이 아닌가?

글을 잘 쓸 줄 안다면 왜 나는 작가가 되지 않고 이러고 있겠는가?

글 좀 봐달라니!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를 읽다가 니체에 대한 장(章)에서 마침내 그런 분들을 위한 '정말로 좋은 정보' '정통한 정보'를 얻게 되어 여기에 옮겨 써놓게 되었다.

그런 제의를 해오는 분이 또 있으면 이걸 좀 보라고 하면 좋아할 것 같았다.

이건 나에게도 신통한 일이고 그들에게도 얼마나 좋은 일이 될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소설을 위한 밑그림을 100편 정도 그리되 밑그림마다 두 쪽을 넘지 않아야 하고, 또 그 밑그림에 동원된 단어들은 거기에 꼭 들어맞는 정확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일상의 일화들을 적어두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가장 충만하고 효과적인 형식으로 기록하는 요령을 터득할 때까지...... 그리고 지치지 않고 다양한 인간형과 성격들을 포착하고 묘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모든 일이나 사물을 다른 것과 연결짓고, 또 그런 것들이 야기하는 결과에도 눈과 귀를 늘 열어두어야 한다. 여행을 할 때는 풍경화가나 의상 디자이너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 행동의 동기에 대해 숙고하고, 그런 동기를 말해주는 단서를 절대 무시하지 말 것이며, 밤낮으로 이런 사소한 것들을 수집해야 한다. 이 같은 다각적인 연습을 10년 이상 게을리하지 않은 끝에 탄생하는 작품이라야 이 세상에 내놓아도 좋을 만한 수준이 될 것이다.

 

이 부분의 바로 앞에 다음과 같은 전제가 붙어 있다는 건 꼭 덧붙여야 하겠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비법을 내놓기는 무척 쉽지만 그 비법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사람들이 "나는 재능이 부족해"라고 말할 때 쉽게 간과해 버리는 노력의 질(質)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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