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창밖으로 솜뭉치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또 그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 피지 않은 목화의 열매 다래...
먼 곳 절 앞 목화밭에서 그 열매 세 개를 받았습니다.
그걸 책상 설합 안에 넣어두었는데 이태가 지난 어느 날 설합 깊숙이 들어 있는 물건을 찾다가 그걸 발견했습니다.
어!
웬 솜?
이런! 아직 파랗던 그 다래가 팝콘처럼 익고 폭발해서 하얀 솜뭉치 하나씩을 달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둠과 지루함을 이기고 타임캡슐로 변신해서 나타난 그걸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상은 이후로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대체로 부피가 큰 물건보다 작은 것들이 타임캡슐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버리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값어치가 있는 것도 아닌 것들... 동전, 이름표, 조약돌, 열쇠고리, 조개껍질 같은 물건을 별도로 보관하는 상자를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
그 상자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낀 아이들이 거기에 들어 있는 잡동사니를 하나하나 꺼내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고, 마침내 그 상자는 그 아이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부피가 큰 물건은?
사정이 허락한다면야 얼마든지 보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이 백 평 정도 되고 이사도 자주 다니지 않고 그 집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어서 지하실이나 다락같은 곳에 그런 물건들을 보관한다면 그중에는 나중에 "진품명품" 프로그램에 갖고 나갈 만한 물건도 생길 것이고, 그렇지는 않아도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물건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 (지금 있는 일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 결국은 추억이 될 것이므로) 그가 옛 일이 되어버린 지금 일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한 번의 해후만으로도 그 물건은 충분한 타임캡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건들도 사람의 손길이 닿고 스치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처럼 무슨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침내 영혼 같은 걸 지니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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