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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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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 내 친구 김교수의 경우 10월 25일 수요일에 그 카페에서 만났을 때 김 교수는 뜻밖의 주문을 했다. "우리 스테이크 시킵시다." "비싼 걸 뭐 하려고요." "제가 살게요....." 김 교수는 미국에서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의 연금이 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좀 써도 된다는 것이다. 손바닥 1/3만 한 크기의 스테이크가 나온 걸 본 순간 '이게 5만 원짜리라고? 이걸 먹고 때가 되겠나' 싶었다. 먹고 나니까 보기와 달랐다. 김 교수는 반밖에 먹지 못해서 남긴 걸 보니까 좀 아까웠다. 식사를 마쳤을 때, 11월에 만나면 당연히 내가 사야 하고 나도 굳이 스테이크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요즘도 댁에서 치킨, 떡볶이 같은 것도 배달시켜 먹는지 물어보았다. "아, 그럼요! 치킨, 떡볶이는 늘 최고죠!" "그럼 다음에는 제가 그걸 .. 2023. 11. 30.
돈 : 나의 친구 J의 경우 내 친구 J는 저세상으로 간지 한참되었다. 평생 돈도 못 벌어본 채 한 많은 생을 비감하게 마감했다. 서울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올라왔다. 작심하고 푸줏간을 운영했다. '되겠지' '되겠지' 했겠지만 점점 더 되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였는지 그의 푸줏간을 찾는 발길은 아주 드물게 되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도 부인의 행색만은 남루하지 않게 해 주었고, 밖으로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는 날엔 단정한 모습으로 나왔고, 점잖은 용어로 조용조용 얘기했고,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어도(가령 어떤 교사가 학생을 두들겨 팼거나 아이에게 두들겨 맞아서 신문에 난 날 모임이 있으면 그들은 다짜고짜 내게 덤벼들었다. "야, 임마! 교육부 놈들 다 뭐하냐.. 2023. 11. 19.
천양희 「아침에 생각하다」 아침에 생각하다 천양희 아침에 눈을 뜨면 시를 쓰지 않고는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는 릴케가 생각나고 나는 시작時作의 출발부터 시인을 포기했다 나에게 시인이 없어졌을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김수영이 생각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문학에서의 정치는 연주회장에 울리는 총소리와 같다는 스탕달이 생각나고 우리의 열망이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새뮤얼 존슨이 생각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은 깊게 생활은 단순하게 하라는 워즈워스가 생각나고 오늘 나는 아름다움에 인사할 줄 안다는 랭보가 생각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는 움베르트 에코가 생각나고 나는 정의를 믿는다 그러나 정의에 앞서 어머니를 옹호한다는 카뮈가 생각난다.. 2023. 10. 22.
돈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자히르」에는 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소설집《알레프》). 잠을 이루지 못해 뭔가에 홀린 듯이 거의 행복한 마음으로 나는 돈보다 더 물질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어떤 동전이든지(가령 20 센터보짜리 동전) 가능한 미래의 창고이기 때문이다. 나는 "돈은 추상적이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라고 되풀이했다. 그것은 외곽 지역에서의 어느 오후일 수도 있고, 브람스의 음악일 수도 있으며, 지도일 수도 있고, 체스일 수도 있으며, 커피일 수도 있고, 황금을 경멸하도록 가르치는 에피테투스(Epictetus 55?~135?, 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의 말일 수도 있다. 그것은 파로스 섬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한 프로테우스이다. 그것은 .. 2023. 9. 24.
행복에 관한 단상(斷想) 해가 바뀌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다 더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조선일보와 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세계 10개국 5190명을 대상으로 '행복의 지도(地圖)'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들은 '물욕(物欲)으로 인한 피로감', '주변국의 위협', '정치인의 부정부패' 등에 지쳐 있더랍니다. "나는 행복하다"는 사람이 브라질에는 57%인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7%였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미국은 11%, 우리나라는 37%(10개국 중 최고), "공교육 못 믿겠다"는 사람은 핀란드는 6%, 우리나라는 57%, "꼭 조국에서 아이 낳고 싶다"는 사람은 우리나라 응답자가 20%로 10개국 중 꼴찌, "대통령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 2011.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