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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행복에 관한 단상(斷想)

by 답설재 2011. 1. 12.

 

 

 

해가 바뀌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다 더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조선일보와 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세계 10개국 5190명을 대상으로 '행복의 지도(地圖)'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들은 '물욕(物欲)으로 인한 피로감', '주변국의 위협', '정치인의 부정부패' 등에 지쳐 있더랍니다.

 

"나는 행복하다"는 사람이 브라질에는 57%인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7%였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미국은 11%, 우리나라는 37%(10개국 중 최고),  "공교육 못 믿겠다"는 사람은 핀란드는 6%, 우리나라는 57%,  "꼭 조국에서 아이 낳고 싶다"는 사람은 우리나라 응답자가 20%로 10개국 중 꼴찌,  "대통령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는 응답자가 핀란드는 3%, 우리나라는 30%,  "정치인은 분쟁 일삼는 사람"이라는 응답자가 우리나라는 45%였고, 나머지 9개국은 13%였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점도 있었습니다. 북유럽 국가 국민들은 '깨끗한 정치', '탄탄한 공교육'에서 행복을 찾았고, 동남아시아 이슬람 국가 국민들은 "종교가 내 존재의 이유"라고 답하며 편안한 죽음을 기대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응답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반응을 보였답니다.1

 

 

 

 

<'큰 복지' 놔두고 '작은 복지'로 국민 속여먹기>라는 글이 보입니다.2

주요내용을 뽑은 부제(副題)들은 이렇습니다. '경제발전·고용은 큰 복지, 소득 재분배는 작은 복지, 큰 복지가 국민 삶 향상,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데 정치권은 작은 복지로 국민 속여 표 얻을 궁리'

 

같은 신문에서 <한 사람만 빼고 모두가 불행한 '1등病'>이라는 글도 보았습니다.3 이렇게 시작됩니다.

"2010년 '매우 행복하다'는 우리 국민은 7%였다. 지난 18년 새 소득은 3배 늘었는데도 행복한 국민은 오히려 10% 줄었다. 우리만 왜 거꾸로 가는 걸까? 분명 우리의 정신자세와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후략)…"

 

두 글에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면 또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설명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6천원짜리 감자탕집이나 콩나물 국밥집은 언제나 '만원'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번번이 눈길을 끄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지난번 감자탕집에서는 아이가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김밥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칭얼대는데도 짜증을 내지 않고 점심을 먹는 새댁을 봤습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칭얼대는 것은 얼른 그 식당 이층에 있는 놀이방에 가고 싶다는 신호였습니다. 새댁의 가슴에는 젖먹이까지 안겨 있었고, 맞은편에는 친정 엄마와 남동생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친정에서 온 두 사람에게 외식을 시켜주려고 나온 것 같았습니다.

 

얼른 식사를 마친 새댁이 젖먹이를 업고 칭얼대던 아이와 함께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한참만에 내려왔습니다. 친정 엄마와 남동생이 때맞추어 식사를 마친 시각이었습니다. 칭얼대는 아이를 만족시켜 주고 내려온 새댁의 얼굴에는 아무런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얼굴을 살펴보는 제가 행복해질 뻔했습니다.

 

새댁은 학벌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행색이었습니다. '그런 새댁'은 '그런 식당'에 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새댁이 정말로 행복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작년 연간실적 잠정치로 매출 153조·영업이익 17조를 달성하여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답니다.4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은 유럽의 전통적인 공업 강국인 이탈리아와 벨기에를 제치고 세계 7위로 올라섰고, 수출입 실적을 합한 무역 규모에서도 우리나라는 2009년보다 한 계단 상승한 세계 9위를 기록했답니다.5

 

李대통령은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올해 국정의 중심은 안보와 경제"라고 했습니다.6

 

우리나라의 경제는 더 좋아질 것입니다. 메이저 그룹의 CEO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십년, 이십년 앞을 내다보며 1위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올해 칠순(七旬)을 맞은 이건희 삼성회장은 "한국(기업)이 정신을 안 차리면 한걸음 뒤쳐질 수 있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7

 

그 바로 아래에는 '소비자가전쇼(CES) 2011'이 개최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한 말도 실려 있었습니다. "취임하면서 패스트(Fast), 스트롱(Strong), 스마트(Smart)를 슬로건으로 제시하고 강조했는데, 이 부분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것 같다"고 부진의 원인을 분석하고 "독한 문화를 (LG전자의) DNA로 가져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답니다.8

 

하다못해 스마트폰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끝이 어딘지는 잘 모릅니다.

 

 

 

 

…… 몇 년 전 인턴 시절 팀장을 따라 한국에 갔다가 들렀던 자정 무렵의 홍대 앞 풍경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학생인지 회사원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젊은 남녀들이 술에 취해 밤거리에서 실랑이를 벌이거나 우루루 몰려다녔다. 처음 무일의 눈에 그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롭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거리에서 오가다 슬쩍 부딪치는 것조차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무일의 눈에 그들은 살면서 무엇엔가 크게 당한 사람들, 그래서 복수를 벼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

 

함정임,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단편소설), 『현대문학』 2010년 6월호, 58쪽에서.

 

 

 

 

자잘하고 보잘것없이 살아가는 저로서는, 더구나 이젠 돌아와 스산한 바람 불어가는 뒷뜰에 앉아서 바라보는 저로서는, 거대 담론들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다만 평온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임> 2011.1.21.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일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세상이 하도 빨리 바뀌니 10년후, 20년 후가 어떻게 될지 상상을 못할 지경"이라면서 "일본에서 옛날 학교 동창, 교수, 사업가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도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에 대해 아무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세상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고 했답니다.9

 

우리는 언제까지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할까요?

언제 어디서 우리는 "이제 행복하구나"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앉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는 길에 그럴 시기, 그럴 지점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행복을 살 수 있는 돈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1. 조선일보, 2011.1.1.A1,4~5면. [본문으로]
  2. 박세일(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칼럼, 조선일보, 2011.1.7. A30. [본문으로]
  3. 최상호(도산아카데미 자문위원), 조선일보, 2011.1.7.A29. [본문으로]
  4. 문화일보, 2011.1.7.1면. [본문으로]
  5. 조선일보, 2011.1.3.A1. [본문으로]
  6. 조선일보, 2011.1.3.A1. [본문으로]
  7. 문화일보, 2011.1.10.11면. [본문으로]
  8. 문화일보, 2011.1.10.11면. [본문으로]
  9. '조선일보, 2011.1.20. B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