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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빌 게이츠, 그리고 과학자들에게-

by 답설재 2010. 12. 28.

DAUM 이미지(부분 : 2021.5.6. 밤)

 

 

 

빌 게이츠씨.

지난봄 어느 날, 「빌 게이츠 '꿈의 原電' 만든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핵 연료 교환없이 100년간 연속운전이 가능한 원전 개발을 도시바와 공동으로 착수했다면서요?

 

꿈의 원전? 미안합니다. 그대나 그대와 같은 과학자들에겐 그게 대단한 일인 것이 분명하겠지만, 저로서는 "하나님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신다면……"으로 시작된 귀하의 그 호기(豪氣)가 싫었습니다.

 

신문에 소개된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1

 

"하나님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신다면 현재의 절반 비용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하겠다."

지난 2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세미나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사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갑부인 게이츠 회장의 요즘 관심은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에너지 개발에 쏠려 있다. 2년 전 MS의 비상근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빈곤 해결과 함께 지구환경은 그의 최대 관심사다.

그런 게이츠 회장이 마침내 핵연료 교환 없이 100년간 연속 운전이 가능한 '꿈의 원자로' 개발에 본격 나섰다. 일본 원전 건설업체인 도시바는 게이츠 회장과 손잡고 'TWR'로 불리는 차세대 원자로 공동 개발에 착수한다고 23일 발표했다.

게이츠 회장이 사재를 투자한 원자력 벤처회사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신형 원자로 TWR에 도시바의 기술을 접목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원전인 경수로는 수 년에 한번씩 핵연료를 교환해야 하지만 TWR은 그럴 필요가 없다. 또 원자로 내에서 연료가 서서히 연소하면서 핵분열 반응 속도를 조정하기 때문에 제어봉이 필요 없어 안전성도 높다.

…(중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세계 에너지 수요는 신흥국의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급증해 2030년에는 석유 환산으로 168억 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에너지 수요의 1.4배에 달하는 것이다. 원전의 경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등 5개국에서만 현재 약 150기의 건설이 예정돼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chabs@hankyung.com

 

 

 

빌 게이츠씨.

당신의 구상을 폄하하거나 훼방 놓으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훼방을 놓는다고 꿈쩍할 대상도 아니겠지요. 하필이면 일본의 도시바와 공동개발에 속이 상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의문을 가지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 '꿈의 원전'이라는 것은 어떤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인지도 함께 연구해서 이 세상이 절대적으로 더 좋아지도록 할 수 있는가, 그것입니다.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지구를 망쳐놓더라도 이건 해야 한다!"는 과학자나 그런 발명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의문은 그 '꿈의 원전'이라는 것에서도 틀림없이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들립니까? 아닙니다. 다만 그대와 같은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세상을 발전시키겠다며 한 일에는, 글쎄요, 지금까지는 거의 백발백중 부작용도 나타났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귀하가 전공하는 '컴퓨터'는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과학자들 중에 좀 잘난 체하는 사람들은, 그 태도를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 말을 꼭 하고 싶은 것이 이 편지를 쓰게 된 의도였습니다. 잘난 체하는 과학자가 얼마나 되는가, 구체적으로 누군가, 그런 걸 물으면 답하기 곤란합니다. 난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없다고 할 수는 없고, 저로서도 물러서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버지에게 이끌려 마굿간을 나오던 그 소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하러 갈 때의 아버지와 시장에 소를 팔러 갈 때의 아버지의 행색은 어디가 달라서 그 소가 다 알아맞힌 것일까요.

살처분(殺處分)을 할 소들에게 며칠 치의 여물을 주었다는 어느 촌부의 울음이 가슴을 적십니다. 오죽했겠습니까.

 

한 달도 안 돼 소·돼지 32만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처분 대상에는 구제역에 감염된 놈들만 아니라, 장차 감염될지도 모를 놈들도 포함됐다.

"어떤 농가에 가니 할머니가 '우리 소가 내일이면 새끼를 낳는데 내일 잡아가면 안 되느냐'고 했다. 새끼 밴 어미도 그렇고 그 새끼도 다 파묻어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못할 짓이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산 놈을 구덩이 파서 집어 넣는 것은…"2

 

농부는 실신해 병원에 실려가고 자기도 함께 묻어달라며 구덩이 속으로 뛰어듭니다. 소를 안락사시킬 주사기를 든 女공무원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며 울면서 바늘을 찔렀습니다.3

 

빌 게이츠씨.

잘난 체하지 말자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과학자들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과학자의 힘이 아니면 이 몸을 유지하지 못하여 당장 오늘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다만 너무 호기를 부리진 말고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대의 '하나님'도 호기를 부리는 과학은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과학의 힘으로는 못할 것이 없다는 듯이 나대는, 뭐랄까요, 그 허세? 그 태도? 그 자신만만함? 그것이 과학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제가 보기에도 역겹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것을 지적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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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경제, 2010. 3. 24, A12.
2. 조선일보, 2010.12.27. A29. 최보식이 만난 사람 '첫 구제역 발생 당시 역학조사위원장 김순재 선생' 인터뷰 기사에서.
3. 홍승표(파주시부시장), '살처분 현장은 전쟁터, 눈물로 기도합니다'(조선일보, 2010.12.28. A2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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