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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2011년 새해 인사

by 답설재 2010. 12. 31.

 

 

 

2010년 12월 31일 아침입니다. 하루 사이지만 내일, 2011년 신묘년(辛卯年)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사실은 2월 3일 설날이 돼야 드디어 신묘년입니다.

 

토끼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온순해서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또 착하고 약하게 보이지만 빠르고 영리하다는 이미지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에 「토끼와 거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토끼가 거북이를 만나서 저 산꼭대기까지 누가 먼저 가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가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

 

우리는 그걸 가르치고 배우면서 그 이야기의 교훈은 '노력'이라고 단정해서 문제지에 답을 써넣을 □□도 딱 맞게 두 개를 마련했고 그러면 아이들은 그 □□에 '노력'이라고 써넣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도 어른들의 의도에 맞추어 그렇게 써넣어준 것이지요.

요즘은 그렇게 가르친 걸 후회하는 교육자가 더러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1학년을 담임해서 아이들에게 마음놓고 이야기해도 괜찮다, 때려주거나 비웃거나 비난하거나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40분 동안 글쎄 일흔 몇 가지의 대답을 궁리해내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담임을 한 1989년의 일입니다.

 

토끼가 용왕에게 붙들려가서 "간을 빼놓고 왔다"는 지혜를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좀 막연한 제안이긴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대대로 교과서에 넣어 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육도 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했으면 합니다.

우리들 모두 그때 그 토끼처럼 영리하고 지혜롭고 온순하고 착하게 살면 좋겠고, 때로는 낮잠을 자다가 부끄러운 꼴도 당하는 그 토끼처럼 순진하게 살아도 괜찮은 세상이면 더 좋겠고, 그 이야기 속의 토끼와 거북이, 용왕의 마음을 두고두고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기에 하는 제안입니다.

 

가령 거북이는 '내 이놈을 오늘은 기어이 혼내 주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산꼭대기를 향해 땀을 뻘뻘 흘리며 기어올랐을 것입니다. 또 바로 그 거북이의 등에 올라타고 붙들려 온 토끼를 내려다본 용왕님은, 토끼의 잔꾀를 다 알면서도 그냥 돌려보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용왕님인데 그것도 몰랐을 리가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 거북이처럼, 용왕님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순조롭고 단호한 썰물처럼 사라져갑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은 당연히 아주 쉽게 잊혀져갑니다.

"그는 떠났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격리'의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정이월(正二月) 보리밭의 서릿발처럼 시퍼렇게 살아 있는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은 한 사람을 쉽게 잊어버리고, 한 사람은 그 수많은 사람들을 낙인(烙印)처럼 기억하는 것입니다.

 

엘라님, 하나하나 확인해주는 그 관심으로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그놀리아님,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매그놀리아의 관점은 참 곱습니다.

태권소녀님, 그 정겨움 때문에 그곳이 그립습니다.

씨앗님, 고흐를 찾아가는 그 길에서 꼭 빛나는 교육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떳떳이님, 2001년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이파이브를 신청합니다.

깜찍이님, '고운 아이들을 닮아가는 선생님 찾기'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데이지님, 아이들에게 그만 '풍덩' 빠져버렸습니까?

오리아빠님, 생활문화 개척의 선구자님. 무궁한 '번창'을 기원합니다.

비둘기님, 불가능하겠지만 그 고마운 정을 "갚을게요"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향기님, '사색의 길' 정말로 만드셨을까요? 요즘은 무얼 만들고 있습니까?

햇살님, 햇살님께는 연수원이 좋은 곳이죠?

김소영님, 다시 만난 것이 저에겐 행운입니다. 가을길, 그 길가의 커피숍은, 행복한 숙제로 생각하겠습니다.

호이즌님, 체벌 이야기 감명 깊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도 체벌이 너무나 싫습니다.

김태환님, 그곳에서 한번 멋진 꿈을 펼쳐보십시오.

조신처자님, 축하합니다. 또 축하합니다.

강변님, 님을 만난 행운을 자꾸 생각합니다. 돌아갈 곳이 있는 듯한 우리의 그 '강변 이야기'들은 위안입니다.

왈샘님, 그 세월이 그립습니다.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좋은 선생님이시겠지요.

오상연님, 요즘은 무얼 또 깊이 생각하실까요.

호수야, '나를 걱정해주는 학생도 있구나!' 나도 널 생각해줄게. 멋진 고1이 되어라!

따뜻한님, 2010년도 아이들과 따뜻하게 지낸 한 해였겠지요.

소시민님, 언제나 그리운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Mick님, 떠난지 오래인데도 그처럼 흔들림없는 교육관을 가진 경우가 흔치 않을 것입니다.

호연지기님, 요즘은 무엇에 매진하실까요? 두 분이서라면 뭐든 가능하겠지요.

소나무님, 약속 잊지 않으실거죠?

자유의지님, 초봄 이후 여전하신가요?

김영래님, 멋진 블로거, 무섭도록 열정적이신 분.

안희경님, 틱낫한 스님 책은 제때 나왔지요? 제목은 뭔가요? 지금은 뭘 번역하고 계실까요? 아기는 많이 자랐지요?

강성욱님, 늘 선생님을 생각하며 씁니다.

작은세상님, 잊지 않는다는 것이 참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sanmit63님, 걱정해주시는 마음 참 고마웠습니다.

Wow님, 아이들을 보는 눈의 공감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시조황제님, 그 열정의 영광을 기원합니다.

현지님, 다들 쉬운 이야기를 쓰는데 저는 아직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더 쉽게 쓸게요. 미안해요.

sharon1님, 딱딱한 글까지 읽어주셔서 감동했습니다.

고양이님, 님의 눈도 "짱"입니다.

진단혁명님, 희망님, 건강 정보 고맙습니다.

전북의재발견님, 제 글을 그렇게까지 평가해주셔서 감격했습니다.

winter님, 멋있는 블로거가 오신 걸 영광스러워합니다.

고시생님, 어떻게 되셨을까요? '주입식' 비판에 공감하신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주현님, 님 같은 분이 늘 지켜본다는 걸 학교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선원식품님, 공감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바람흔적님, 대단하신 블로거가 다녀가신 걸 영광스러워합니다. 그런 책, 그런 이야기를 읽어주는 독자는 흔치 않았습니다.

skyland님, 그 연구가 결실을 맺을 날이 가까워오고 있겠지요.

빠샤1234님, 우리 사회는 다른 일에 파묻혀 '폭력' 같은 건 또 잊어버리고 지냅니다. 우리는 그걸 통탄해야 할 것입니다.

엄정중립님, 님의 인정을 보면서 '6.25전쟁' 같은 용어를 정리하던 그런 행정이 다시 보고싶었습니다.

덩달이님, '고양이와 악마', 고심해서 만든 자료를 스크랩하셨을 때 희열을 느꼈습니다.

구자빈님, 주입식 교육을 함께 비판해준 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희성 대표님, 그 사업은 정말정말 잘 되면 좋겠는데……

오드리미니님, 잘 살고 있겠지요.

art5208님, 대법원 판결 이후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영희님, 요즘도 여기 오셔서 생각하다가 가실까요?

혜숙아, 좋은 엄마, 좋은 '선생님'인 혜숙아.

열매님,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자잘한 일은 까짓거 그냥두세요.

맨밥 김석순님, 제 그림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주신 고마운 분.

Lura님, 이젠 그곳 아이들이 사랑해주는 선생님으로 변신했겠지요.

Rilla님, Free Grapher, 대단한 블로그입니다. 저도 남양주를 더 좋아하며 살아야 할텐데요.

우왕님, 이제 3학년이 됩니까? 1년후에는 '무비네'가 가동되겠지요?

윤은수, 잘 지내니?

멘토짱님, 저는 멘토가 되려고 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이 멘토링인 것 같습니다.

한경택님, 요즘은 어떤 일에 몰두하실까요?

誠實님, 고운 분이 저에게 다녀가셨습니다.

뷰티풀걸님, 눈 덮인 정원이 또 '지바고'를 떠올립니다.

블로그피플님, 이 겨울의 '동백꽃'도 보셨습니까?

아르님, 님에게도 새해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유황오리님, 하루빨리 그런 수업이 일반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apple님, 시지프스의 신화는 몇 번 얘기해봐도 어설펐습니다. 미안합니다.

light1020님, 혼신을 다해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자운영님, "멋이란 건 이런 거야!" 하셔도 충분한 들꽃 매니어입니다.

용설란, 어떻게 지내니? 어렵지? 산다는 것? 무엇무엇이 특히 어렵니?

BONA님, 이 블로그로 '확인'을 받는 느낌으로 지내는 나날이었습니다.

짝궁님, 님은 따듯한 블로거입니다.

靑春禮讚님, 님에게서 힘의 상징을 보았습니다.

김미자님, 마음 편한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립니다.

럭키in걸님, 와 보라고 하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맑은샘물님, 이제 우리가 친구(親舊)가 된 거지요?

산돌배님, 아름다운 글마을의 고뇌하는 주인님, 다시 돌아오셔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도도님, 그대에게 끝까지 무섭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천성이니 어떻게 합니까.

Mr Winfrey님, '독서MBA'가 늘 성공적이기를 바랍니다.

라재주님, 국학원에서의 인연을 저 또한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양현범님, '동아시아미학'처럼 좋은 책들을 출판하시는 '사계절출판사'의 노력이 빛나기를 기원드립니다.

안동립님, "늘 겸손하게 숨만 쉬고 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대와 같은 친구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구난희님,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정겨움을 느낍니다.

전재호님, "힘든다" "마음의 상처가 아프다"고 하신 걸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담당 관료의 의지만 강하다면 얼마든지 좋을 제도일 것입니다.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이 있어야 한다면 선생님 같은 분이 인정을 받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초원리승선님, 부지런하신 시인, 시와 함께 살아가는 시인을 봤습니다.

김두식님, 멋진 교장선생님이시겠지요. '장락동나그네'이신 줄을 몰랐었습니다.

맑은시내님, 품격 높은 블로거, 교육 전문가이신 맑은시내님.

김효정님, 클래식 공연 기획사 '프로아트'가 번창하기를 기대합니다.

정미선님, 좋은 곳에 초대 받았고 좋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한 걸 잊을 수 없습니다.

들꽃시님, 들꽃처럼 사는 시인.

윤종언님, 선생님 마음속에 들어간 적이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부디 존경받는 행정가로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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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샘물님

 

님의 블로그에 제 이름이 탑재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지요. 전 정말이지 '컴맹'이어서 얼마 전까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클래식과 팝뿐만 아니라 새 우는 소리와 바람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뉴욕에서 달과 구름이 만날 때 나는 소리를 상상하곤 했어요. 아프리카에 갔을 땐 너무나 고요해서 그 침묵을 녹음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녹음했더니 녹음기 모터 소리만 들렸지만 말이죠.

 

'피아노의 詩人'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야기입니다.1 그는 음악가니까 침묵을 소리로 듣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나로서는 이렇게 지내는 생활의 전부가 침묵입니다. 그 침묵 속에 무수한 기억들이 이슬방울처럼 매달려 있어서 헤아려 볼 엄두가 나질 않고, 더구나 그 빛깔들은 언제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고달팠고 쓰라렸느냐는 듯 찬란하기조차 합니다.

 

퇴물에게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나 싶겠지만, 그 기억들을 다 꺼내 놓으면 요즘은 쓰지도 않는 그 녹음테이프의 '내장'을 다 풀어 헤쳐 놓은 것 같을 겁니다. 그 쏟아진 테이프 곳곳에 찍혀 있는 기억들은 그러나 아무도 재생해줄 수 없는 것들이지만 빛깔과 소리를 지닌 것은 분명합니다.

 

대지의 여러 모습들이 기억에 너무도 꼭 매달려 있을 때엔, 행복의 손짓이 너무도 집요할 때엔, 인간의 마음 속에서 우수가 일게 되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렇게 썼습니다.2 그는 또 이렇게 이어 썼습니다.

 

끝 모를 비애는 너무 무거워 견딜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겟세마네의 밤인 것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진실들은, 그것이 인식될 때 소멸된다. 그래서 외디푸스도 처음에는 운명을 알지 못한 채 그 운명에 복종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눈 멀고 절망한 채로 그는 자기를 세계와 연결해 주는 유일한 것은 한 처녀(그의 딸-역주)의 차가운 손뿐임을 깨닫는다. 그 때에 굉장한 한 마디 말이 울려 나오는 것이다. "그 많은 시련들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령(老齡)과 내 영혼의 고귀함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나도 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외디푸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알베르 까뮈도 아니고 더 낮추어 알베르 까뮈를 잘 이해하여 내 삶에 당장 대입해 넣을 만한 힘을 지닌 것도 아니어서 말하자면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여생이 얼마만큼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걸 목표로 삼고 지내겠다는 각오를 합니다.

 

나의 이 침묵 속에는 이런 회한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에게 준 상처들-더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상처가 된 것들-만 떠올라 너무도 곤혹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모욕받을 짓을 한 다음에 모욕을 당한다(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맹자)는 말씀대로. 사실은 그 곤혹스러움이 무지무지한 괴로움이 되고 의사들이 설명하는 스트레스가 되어 그 의사들은 지난 가을에 다시 한번 제 심장을 열었습니다.

 

'제 정신'이라면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있다가 가고 싶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느 '행복 전도사'가 죽음을 앞두고 700가지 아픔을 고백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게 되고 마음이 아프면 다시 몸도 따라 아파야 하며 이곳이 아프면 저곳도 아파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더 미안하게 되고, 그 미안함이 쌓이면 갚을 길도 없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는 신세만 지고 할 말은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백(告白)하면, 나의 경험이고, 다 원인이 있는 거지만 내가 지금 그렇게 신세만 지고 있는 한심한 사람이란 얘기입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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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가 2011년 1월 9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10여 년 만에 두 번째 내한무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지난 12월 7일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기사에서 옮겼습니다.
2. 알베르 까뮈(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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