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안기순 옮김, 미래엔 2012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 1박에 82달러
캘리포니아 주 산타아나 시를 포함한 일부 도시에서는 폭력범을 제외한 교도소 수감자들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깨끗하고 조용하면서, 다른 죄수들과 동떨어진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 (19)
'이런 책을 두고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싶었다.
내용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새치기
'선착순'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약간의 돈만 더 내면 공항 보안검색대든 놀이공원의 인기 놀이기구든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빨리 이용할 수 있다. 지불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는 시장논리가 '선착순'이라는 전통적 관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례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미덕이 시장논리에 지배당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2. 인센티브
결혼에서 기대하는 효용이, 독신으로 남거나 좀 더 나은 짝을 찾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기혼자는 그 반대의 경우로써 이혼한다.
제시간에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것이 교사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여겨졌으나 늦은 시간만큼 벌금을 내게 되자 이제 부모들은 이를 시장논리로 받아들여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교사에게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의 의도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3.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일반 경제논리는 재화를 사고팔 때 재화의 특징은 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사람의 신장, 성, 학위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불미스럽다. 우리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돈으로 사고팔 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재화의 관행이 있다.
그래서 내재적 동기유발이나 도덕적 헌신이 중요한 교육·건강·직장·자발적 단체·시민생활 및 기타 환경의 많은 측면에 시장 메커니즘과 시장논리를 적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4. 삶과 죽음의 시장
전통적으로 '삶과 죽음'은 시장에서 금기시되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시장논리가 침투하면서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유가족에게 재정적 안전망을 제공하려고 생긴 생명보험은 투기를 목적으로 그 증서를 사고파는 것이 허용되면서 타인의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고, 웹사이트에서 유명인의 죽음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행위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때로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하는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5. 명명권
20세기까지만 해도 야구경기장은 기업 임원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핫도그나 맥주를 사기 위해 똑같이 줄을 서며, 비가 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젓는 곳이었다. 그러나 스카이박스가 등장하면서 부자와 특권 계층은 아래의 일반 관람석에 앉는 보통 사람들과 분리되었다. 세대와 계층 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같은 팀을 응원하던 공감대와 연대의 가치는 변질되고 있다.
야구공이 '머니볼(moneyball)'로 탈바꿈하고 있고, 2000년 거대한 피자헛 로고를 새긴 러시아 로켓이 우주공간으로 광고를 실어 날랐다. 2011년 콜로라도 주의 한 교육청은 성적표에 광고할 공간을 팔았다.
마이클 샌델의 글은 명쾌하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 결론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든 국가사회적으로든 결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길의 요약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시장 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
상업화는 특정 재화를 훼손할 뿐 아니라 공통성을 잠식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각계각층 사람들이 서로 마주칠 기회는 줄어든다. (...)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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