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The Sea Around Us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2018
바다의 생성과 변화,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거의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느낀 것들은 다음과 같다.
• 궁금하지도 않았던,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실도 흥미롭게 다가왔다(95, 102).
덩치 크고 머리가 네모나고 이빨이 무시무시한 향유고래는 인간이 불과 얼마 전에야 깨달은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요컨대 표층수에서는 거의 아무런 생물도 살지 않는 열대 지방과 외해의 바다 역시 수면 아래 1킬로미터 지점에는 바다 동물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향유고래는 이 깊은 바다를 사냥터로 삼았다. 녀석들의 먹잇감은 450미터 넘는 깊이의 대양에서 살아가는 커다란 대왕오징어(Archjteuthis)를 비롯한 오징어 군단이다. 어떤 향유고래의 머리통에는 긴 줄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오징어의 흡반에 찍힌 둥근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깊은 바다의 어둠 속에서 두 거구가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 몸체 길이 9미터(꿈틀대는 다리까지 쫙 펴면 자그마치 15미터)의 대왕오징어와 무려 70톤의 무게에 달하는 향유고래가 거칠게 한 판 붙는 광경을 말이다.
아틀란티스호의 선원들은 버뮤다제도 부근의 깊은 바다에 수중청음기를 내려보냄으로써 누가 내는지 파악할 길 없는 가냘픈 울음소리, 새된 비명 소리, 유령 같은 신음 소리 등 희한한 소리를 채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얕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다 수족관에 넣고 소리를 녹음해 심해에서 들리는 소리와 비교해 본 결과, 만족스럽게도 많은 경우 그 소리의 주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 다큐멘터리 '우리를 둘러싼 바다'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67~68).
모자반 숲에서 살아가는 작은 해양 동물 상당수는 서로 질세라 자신을 다른 존재와 분간하지 못하도록 정교한 위장 게임을 펼치고 있는 듯하다. 사르가소해에서 살아가는 민달팽이─껍데기가 없는 달팽이─는 특정한 모양이 없는 부드러운 갈색 몸에 테두리가 검은 동그란 점이 군데군데 박혀 있고, 둘레는 너덜거리는 피부나 주름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민달팽이기 먹이를 찾아 모자반 위를 기어 다닐 때면 거의 그 해조와 분간이 안 된다. 이곳에서 가장 사나운 육식동물 중 하나는 바로 사르가소 물고기 노랑씬벵이다. 노랑씬벵이는 모자반의 엽상체며 황금빛 부낭, 몸체의 짙은 고동색, 심지어 흰 점 모양의 피각을 이룬 충관상(蟲管狀) 구조까지 똑같이 복제했다. 이 온갖 정교한 의태(疑態)는 모자반 정글에서 대살육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약하거나 방심한 동물에게 조금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는 인정사정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레이첼 카슨의 환경(바다)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심원하다(160).
트리스탄다쿠냐섬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섬의 고유종으로 진화해 온 육지 새들 거의 전부가 돼지와 쥐한테 잡아먹혔다. 타히티섬의 토착종도 인간이 들여온 수많은 외래종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다.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고유 동식물 종이 사라져 간 하와이 제도는 자연의 균형에 간섭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물과 식물, 식물과 토양의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난데없이 끼어들어 제멋대로 그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붕괴로 치닫는 연쇄 작용을 촉발했다.
• 서사시 '바다'를 읽는 느낌이었다(75, 76).
규조류의 수가 줄어들고 상당수의 동물 플랑크톤과 대부분의 물고기가 산란을 마치면, 표층수 생물들은 삶의 고삐를 서서히 늦추면서 한여름의 느긋함에 몸을 맡긴다. 여러 해류가 만나는 지점을 따라 수천 마리의 창백한 보름달물해파리(Aurelia) 떼가 몰려와 바다 위 몇 킬로미터를 삐뚤빼뚤한 띠로 장식한다. 새들은 초록 바다 깊은 곳에서 그들의 희미한 형체가 빛을 받아 일렁이는 광경을 굽어본다. 한여름에 붉은 대형 유령해파리는 촉수를 길게 늘어뜨린 채 리듬감 있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바닷속을 누빈다. 그리고 제 갓 속에 숨어 지내며 함께 여행하는 어린 대구나 해덕(Haddock: 북대서양에 서식하는 대구의 일종) 무리를 보살피기도 한다.
식물 플랑크톤이 풍부한 북대서양 바다 위에서는 빙빙 맴을 돌기도 하고 물속으로 자맥질했다 다시 떠오르기를 되풀이하는 작은 갈색 깝작도요(phalarope)의 메마른 재잘거림이 초봄 이래 처음으로 들려온다. 북극 툰드라 지방에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던 깝작도요 선발대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 바람에 날려 온갖 씨앗과 벌레가 외로운 섬 구석구석을 찾아간다는 얘기는 아득한 느낌이어서 좋고, 아무것도 없는 바위섬에서 한 마리 거미가 속절없이 먹이를 기다린다는 얘기는 안타깝고 재미있지만, 세계의 바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해류의 방향을 살펴보는 건 지루했다. 비전문가여서 그럴 것이다. 중간쯤에서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해서 한동안 계속되다가 어느새 특유의 그 시적이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돌아와 있었다. 레이첼 카슨은 그걸 알고 있었을까?
• 지도책을 펴놓고 읽었다(고등학교 지리부도 정도를 가지고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았다). "세계를 배우는 어린이 지도"(주니어랜덤, 2006)를 집필할 때 공동저자 중 누구에겐가 빌려준 뒤 돌아오지 않은 "구글 세계지도책"이 생각났다. 거기엔 세계 곳곳의 멋진 해저지형도도 들어 있었는데... 강우철 교수가 선물한 영국의 "지도 사전(事典)"도 그때 사라졌다.
•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들이겠지만 이런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식들을 많이 보았다.
- 하루의 길이는 변한다(239).
어렸을 때의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 아주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4시간 정도). 그때 이후 지구 자전은 크게 느려져서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알다시피 24시간을 주기로 순환한다. 수학자들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앞으로도 하루가 지금의 50배로 늘어날 때까지 계속 느려질 거라고 추정한다. 조석 마찰은 이제까지 달을 32만 킬로미터 넘게 밀어낸 것처럼 제2의 이러한 노력을 간단없이 계속할 것이다. (역학 법칙에 따르면,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질수록 달의 자전 속도는 빨라지고 원심력에 의해 달은 점점 더 멀어진다.) 서서히 물러나는 달은 조석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고, 따라서 조석은 점점 미약해진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도 조금씩 길어진다. 마침내 하루 길이와 한 달의 길이가 일치하면 달은 더 이상 지구 주위를 돌지 않을 테고, 달에 의한 조석도 없어질 것이다.
바다는 금(金) 노다지란다!!!(283).
지표면의 거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바다에는 세상 모든 사람을 백만장자로 만들어주고도 남을 만큼 많은 금이 들어 있다.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하버(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 Fritz Haber)는 독일의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바다에서 충분한 양의 금을 추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꿈은 마침내 (...) 좌우간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실망, 그럼 '소금'!(279).
최초의 바다는 염분기가 조금밖에 없었으나 염도는 억겁의 세월을 거치면서 점차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바다에 염분을 공급한 주요 원천은 바로 암석질의 대륙 지각이기 때문이다. 어린 지구를 에워싸고 있던 두꺼운 구름층에서 최초의 비가 몇 백 년 동안 줄기차게 쏟아져 내렸고, 그 비는 암석을 침식하고 거기에 함유된 광물을 바다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다로 흘러든 강물의 양은 연간 2만 7000세제곱킬로미터 정도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십억 톤의 염분이 바다에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인들만 대단했던 건 아니다!(303).
우리는 폴리네시아인이 언제 첫 항해에 나섰는지 모른다. 그러나 뒤이은 항해에 관해서는 약간의 증거가 남아 있다. 이를테면 13세기에 하와이 제도를 향해 중대한 마지막 이주 항해가 이루어졌다는 것, 14세기 중엽에 타히티섬에서 출발한 선박이 뉴질랜드에 영구 정착했다는 것 따위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 모든 게 유럽에는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폴리네시아인이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한참이 지난 뒤까지도 유럽의 뱃사람들은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을 무시무시한 '암흑의 바다'로 나아가는 문지방으로 여겼다.
•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313).
신비로운 과거에 바다는 모든 흐릿한 생명의 기원을 감싸고 있었으며, 마침내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스러져간 뭇 생명의 잔해를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강처럼 종국에는 처음이자 끝인 바다로, 대양의 강인 오케아노스로 돌아간다.
• 레이첼 카슨은 1964년 56세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바닷바람을 맞으며"(1941) → "우리를 둘러싼 바다"(1951) → "바다의 가장자리"(1955) → "침묵의 봄"(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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