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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2》

by 답설재 2024. 12. 24.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2》

윤진 옮김, 창비 2018

 

 

 

 

 

 

그리하여(《군주의 여인 1》) 쏠랄과 아리안은 다시는 헤어날 길 없는 사랑의 늪에 빠져버린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끝없이, 그리고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다.

아리안이 잠시 출장을 간 쏠랄에게 보낸 편지 일부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왔죠. 9시 오분 전엔 북극성을 보기 위해 정원으로 뛰어갔고요. 당신도 북극성을 봤겠죠. 당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다음엔 나의 숲을 거닐었고, 꽤 늦게까지 있었어요. 침대에 누워 당신이 보내온 전보들을 다시 읽었는데, 혹시라도 편지에 담긴 향기가 날아가버릴까 봐 너무 많이 읽지는 않았어요. 당신의 사진도 손으로 가려가며 조금씩 봤죠. 그것도 너무 오래 보지는 않았고요. 안에 담긴 기운이 다 날아가버리면 안 되니까. 당신과 함께 잠들고 싶어서 당신 사진을 베개 밑에 넣었어요. 하지만 구겨질까 걱정이 돼서 다시 꺼냈고, 결국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볼 수 있게 머리맡 협탁에 놓았답니다. 11시 30분이 되니까 졸음이 왔지만 자정까지 눈을 뜨고 버텼죠. 그래야 금요일이 되고, 하루만 더 기다리면 되잖아요.

 

 

아리안 됨 부인이 이렇게 깊은 곳에 빠져버리니까 그녀의 남편 아드리앵 됨은 출세에 눈이 멀어 정신을 못 차리다가 오쟁이 진 녀석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리안이 남겨 둔 편지를 본 그는 자살 미수까지 간다.

 

 

(...) 조금 전 집으로 들어설 때 현관 복도에 걸려 있는 당신 레인코트를 봤어요. 왠지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옷깃을 어루만졌죠. 가운데 단추가 달랑달랑하길래 다시 달았어요.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게 아직 좋았어요. 냉장고도 열어봤어요. 오늘 먹을 건 다 들어 있어요. 차가운 그대로 먹지 말고 꼭 데워 먹도록 해요. 내일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고, 동료들과 같이 점심을 먹어요. 저녁에도 혼자 있지 말고 친구들 집에 놀러 가고, 무엇보다 부모님한테 전보를 보내 즉시 돌아오시게 해요. 날 용서해 줘요. 하지만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 사람은 내 인생에 단 하나뿐인 사랑, 내가 처음으로 찾은 사랑이에요. 그곳에 가서 다시 편지 보낼게요.

 

 

그럼 쏠랄과 아리안은?

화학적으로 순수한 사랑이 지속되는 기간은 겨우 3개월, 그 3개월이 꿈결같이 흘러서 그들은 사랑의 그 감정이 변해버리는 데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욕정 그 단순한 행위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고, 역겨워하면서도 그런 느낌에서 오는 정서를 숨기려는 온갖 가식적인 행위들을 일삼는다.

 

유대인 쏠랄은 사랑의 도피행각으로 국제연맹 사무차장 자리와 함께 프랑스 국적을 잃은 무국적자가 되어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된 나락의 길을 간다.

불륜에 뛰어든 대가로 욕정에 갇혀 고독한 사랑을 나누어야만 하는 지옥, 매일매일 그녀에 대한 사랑이 줄어드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끼면서, 하루 스물네 시간 그녀와 단둘이 살아가야 하는 지옥......

 

사랑 말고는 모든 걸 잃은 불행한 연인들은 차츰 평범한 이웃들과의 관계를 그리워하는 외로움, 죽음과 같은 슬픔, 고독 속에서 1년을 보낸다.

그러다가 아리안이 쏠랄의 질투심을 유발함으로써 변화를 시도해 보려고 그들이 만나기 전에 알았던 남자 이야기를 꺼내게 되자 모든 걸 잃었지만 순결한 아리안, 아리안과의 절대적인 사랑을 얻었다고 믿었던 쏠랄은 그 질투가 극에 달하여 오로지 아리안을 괴롭히는 일에만 몰두한다.

 

부유한 상류사회의 소녀였던 아리안은 치열했던 사랑의 정염이 남긴 질투, 그 질투에 혼신을 맡겨버린 짐승과 밤낮없이 얽혀 지내야 하는 지옥에 빠져 허덕이게 된 것이다. 그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운 싸움은 단 하룻밤만으로도 지치게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그로부터 1년 3개월간 이어진다.

두 연인은 만난 지 2년 반만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환희와 열락으로 좌절, 연민을 가르치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