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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대화10

'이른 아침은 아름답다'(옛 대화) 이른 아침은 아름답다. 아침 노을 속으로 차를 달리지 않아도 친구들과 테니스 치러 공원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도 가는 길에 들른 스타○스에서 2불 11센트인 톨(toll) 커피를 2불에 해주지 않아도 그리고 그 옆 '아인스타인 베이글'의 벽 장식이 눈을 즐겁게 해주지 않아도 그리고선 베이글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차창 밖 어느 집 마당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지나쳐 가지 않아도 이른 아침은 아름답다. 코트 저쪽 끝에 한 줄로 서 있는 겨울 나무들의 상반신이 금빛으로 빛난다. 푸른색 코트에서 게임 중인 J 교수의 오렌지빛 자캣이 멋진 엑센트가 돼준다. 이 글과 사진들을 보고 댓글을 썼었다. 2014년 12월 21일이었다. 지금도 그의 그 글은 남아 있다. 보여주신 모습들이 다 아름답다는 거죠? 왜 그런지, 구체.. 2024. 1. 5.
"사람들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요." "무슨! 사람들이 왜 얘기를 안 해?" "아니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밖엔 안 해요. 그런 것들이 뭐는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이죠. 누구든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카페에서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저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똑같은 우스갯소리들만 하고 하고 또 해요. 음악회라고 가 보면 현란한 조명들이 온 사방을 어지럽게 누비더군요. 보기엔 멋있고 즐겁지만 그것뿐이죠. 공허하고 추상적일 뿐. 박물관은 또, 가 본 적이 있으세요? 거기도 전부 다 추상적인 물건들뿐이에요. 지금 있는 것들은 다 그래요. (......)" 소설 《화씨 451》(레이 브래드버리)에서 소녀 클라리세 매클린이 방화수 .. 2023. 12. 8.
대화 그 아이는 가정 돌봄이 불가능한, 포기한 상태입니다. 열한 살.. 코로나 시국이 학교를 오다가 안 오다가의 반복된 상황으로 등교가 귀찮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석이 잦고, 연락하고 또 연락해도 깨워줄 사람의 부재로 늘 교무실팀이 데리러 가야 합니다. 친구랑 엮어주기도 했고, 일주일 등교 잘하면 떡볶이도 사주기도 했고.. 효과는 순간에 불가했습니다만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고 올 9월 신규 샘이 발령받아 담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규 샘 왈 "아침에 제가 연락하여 등교시켜볼게요" 그렇게 매일 그 아이 집 앞에서 기다려 아이와 함께 등교하기를 반복, 잠시 잊었습니다. 안정되었나 보다.. 다시 결석과 출석이 반복되고 그 사이 사건도 생겼지만 하루하루 넘기던 12월 어느 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교.. 2021. 12. 13.
"복숭아가 어떻게 됐다고?" 오십이 넘은 방송인(연예인?) 아무개 씨가 혼인 신고를 했답니다. 연예인 결혼한 일은, 연예인은 우리와 사는 것이 달라서 뉴스가 되는가 보다 하는 편이고, 했거나 말았거나 시큰둥한 것인데 그 아무개 씨의 경우는 왠지 전화로라도 축하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결혼해보면 괜히 했다 싶을 때도 있을 순 있지만 좋을 때가 훨씬 많아요. 어쩌고 저쩌고." 그렇지만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모릅니다. 허구한 날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던 그의 연락처도 모른 채 살고 있다니... 그가 혼인 신고를 한 것은 아내가 먼저 알아냈습니다. 아내는 그걸 가지고 좀 잘난 척하며 내게 알렸는데 처음에 나는 그 전언(傳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아내) "○○○이가 @#$%^&*~" (나) "복숭아가 어떻게 됐다고.. 2021. 8. 1.
대화 # 1 "할아버지, 뭐 하세요?" "....." "여기 좀 보세요! 저희 예쁘지 않아요? 얘가 저 사랑하고 싶대요." "......" "아이,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러시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늘 저 좋다고 하시면서......" "......" # 2 "할아버지, 나무들도 대화를 해?" "그럼! 하고말고." "그걸 누가 알아들어?" "대화를 하는 건 분명한데 우리는 거의 알아듣지 못해." "......" "누가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심지어 물에게도 음악을 들려주어 봤다잖아." "그 얘긴 읽어봤어." "연구하면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겠지." "새들 이야기처럼?" "그렇지!" "생물학자가 되면 모든 생물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더 어렵지 않을까? 조류학자가 되면 새 이야기를 .. 2021. 3. 11.
'대화'라는 것 이 좋은 길을 젊은 부부가 걸어옵니다.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연령입니다. 그들이 내 곁을 지나가며 이야기합니다. 두 마디만 들렸습니다. "1 키로면 겨우 1000미터 아이가, 이 사람아!" "그래, 오르막길 1 키로면 멀다고!" 어느 한쪽이 양해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들은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판단해서 미안합니다. 어쩌면 그 별 것 아닌 것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화란 동등(同等)한 입장에서는 부질없을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고, 어느 한쪽만이라도 그걸 인정한다면 그쪽이 입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대로라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2020. 9. 4.
루이저 린저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루이저 린저 Luise Rinser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이강빈 옮김, 홍신문화사 1995 Ⅰ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했던 것일까?……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로써 상대를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었습니다. 오십 년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자주 떠올렸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언젠가 그어 놓은 밑줄을 보았습니다. 니나가 뢰벤 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얼마 전에 내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 나는 이야기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이 아주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초라해지고 두 배.. 2016. 1. 6.
힘겨웠던 설득 힘겨웠던 설득 2015.1.1.14:02 Ⅰ 권력이나 지위, 돈, 지식 같은 걸 가지고 있으면 영향력 있는 말을 하기가 수월한 것 같습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하는 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게 되고, 특별히 다듬지 않은 말을 해도 듣는 쪽에서 스스로 좋은 뜻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찾으려고 할 수도 .. 2015. 11. 8.
어느 교사와의 대화 선생님............. 가슴이 터질 듯한 답답함 때문에 잡은 책 몇 권을 완독하고 나서, 프로젝트를 계획하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독서 멘토가 필요한데, 제 마음대로 음…. 선생님을 나의 독서 멘토로 정해야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법석 떨다가, 학교에 급한 일 떨어져서 마무리하다보니, 또 흐지부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휴~~ 선생님, 막내 녀석이 올해 여덟 살입니다. 우리 학교 1학년에 데리고 다니죠. 남편 말로는 혈액형이 AB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여덟 살 남자아이입니다. 어제 할머니 밭에서 캔 감자를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만 원에 팔았으니까요. 하지만 감자 캐러 가기 직전,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걸려 와서.. 2013. 7. 4.
김민정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남자는 그랬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 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號 하나 달아드.. 2011.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