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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대화

by 답설재 2021. 12. 13.

그 아이는 가정 돌봄이 불가능한, 포기한 상태입니다. 열한 살..
코로나 시국이 학교를 오다가 안 오다가의 반복된 상황으로 등교가 귀찮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석이 잦고, 연락하고 또 연락해도 깨워줄 사람의 부재로 늘 교무실팀이 데리러 가야 합니다.
친구랑 엮어주기도 했고, 일주일 등교 잘하면 떡볶이도 사주기도 했고.. 효과는 순간에 불가했습니다만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고 올 9월 신규 샘이 발령받아 담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규 샘 왈 "아침에 제가 연락하여 등교시켜볼게요"
그렇게 매일 그 아이 집 앞에서 기다려 아이와 함께 등교하기를 반복, 잠시 잊었습니다. 안정되었나 보다..
다시 결석과 출석이 반복되고 그 사이 사건도 생겼지만 하루하루 넘기던 12월 어느 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교육청 보고를 위해 담임선생님의 상담일지 및 출석 독려를 위한 보고서를 기안으로 받고
저는 가슴이 먹먹하여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10월 00일 19:00~23:40
-결석 사흘째 저녁시간 아이와 연락이 되어 가정방문을 하였다. 학생 혼자 있어 집 안에 들어가 보니
-거실엔 담배꽁초가 수북하고 청소를 안 한 지 오래된 듯 쓰레기가 방치되어 여기저기..
-화장실엔 변기가 막혔는지..
-싱크대엔 그릇이 수북하고..
-밥을 안 먹은 듯하여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으며 대화를 하였다.

35년 전,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아이 집을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콘크리트 벽만 남고 문이 한 개도 달려있지 않은 집(?)에서 두 아이와 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연료가 없어 한겨울에 차가운 물에 씻지도 못하는 그런 곳에서 사는 재순이..
그런 것도 모르고 전 그 아이에게
"너는 이제 다 컸고 혼자서 씻을 수 있잖니? 그래도 세수하고 머리는 자주 감고 다녀야지 않을까?"
철 모르는 젊은 교사는 그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올해 발령받은 어리디어린 선생님의 그 따뜻한 행동을 저는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되다니요..
가슴이 따뜻해오면서도, 먹먹하면서도, 미안하여 결재도 못하고 잠시 멈춤 하였습니다.
힘들면 교무실에, 교장실에 언제든 전화하세요 달려갈게요...
그렇게 말했건만 우리 젊은 선생님은 혼자서 묵묵히 아이 곁을 지키고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어제.. 알았습니다.

선생님.
가정교육의 부재를 학교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멋지게 하고 계시네요!
이미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고 마음을 쓰시고 있으니까 주제넘지만 여담으로 한 가지만 쓸게요.

고학년 같은데 6학년일까요?
그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 사랑 때문이죠.
한번 사랑을 겪은 아이는 절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지금보다 더한 역경 속에서 헤매게 된다 해도 그 사랑을 잊지 못하거든요. 잊지는 않거든요. 그걸 '간직한다'고 하죠?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남몰래 꺼내보곤 하겠지요.
그러다가 언제든 기회가 되면 다시 그런 사랑을 찾아서 갖게 되는 게 인간이죠. 그걸 '행복'이라고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아이는 올해 담임선생님을 참 잘 만난 거죠.

담임선생님도 그렇지요.
교장을, 멋진 교장을 만난 거죠.
흔히 네가 알아서 해, 하고는 책임만 지우잖아요.
그런데 비해 지금 그 선생님은 뒤에 루아가 계시니까, 교장으로서의 책임을 져주시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초임에 진짜 교육다운 교육을 하게 되었으니까 시쳇말로 완전 땡잡은 거죠.
그분도 루아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괜히 좀 즐겁게 얘기하는 것 같긴 하지만 아주, 아주 '잘 맺어진 삼각관계' 같아요.

에릭 홉스봄이 젊은 날 그의 스승에게서 들은 충고랍니다.
"자네가 가르쳐야 할 사람들은 자네처럼 총명한 학생들이 아니네. 그들은 2등급의 바닥에서 학위를 받게 되는 보통 학생들이야. 1등급의 학생들을 가르치면 흥미는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네. 자네를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보통 학생들이란 것을 잊지 말게."

교사들은 흔히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교육을 하잖아요.
가만두어도 잘할, 무럭무럭 자랄 아이들을 간섭하며 공연히 자신이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신 때문에 그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란다고 착각하는 거죠.
가관이죠?
홉스봄은 2등급 학생들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참으로 낭패스러운 그런 아이가 되겠지요?
그런 아이를 잘 보살피면 다른 아이들은 안 보는 척해도 선생님의 그 모습, 그 표정을 살피면서 저절로 잘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간섭하지 않아도 될 아이들 상대할 시간에 그런 아이 돌보면 거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아이도 올해는 행복하고 담임선생님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루아는 교장이 되신 해에 그런 아이를 만나다니...
그 아이는 루아가 교장으로 오실 줄 짐작했을까요?
그렇진 않겠지만 영원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제 1976년도에 졸업시킨 '여자아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올해 58세 정도 되었겠네요.
거제도 조선소에 근무하고 있는데, 한 해에 적어도 두세 차례는 꼭꼭 전화를 합니다. "선생님, 죽지 마세요~"
그 아이는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공부할 시간도 없는 아이였지만요.
45년 전 그 교실에서 만나던 그 아이의 얼굴을 저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루아는 이렇게 썼잖아요. 전에도 이야기했지요?("내 생애의 아이들")

"나는 책상에 가 앉아서 우리 학생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급했다.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히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 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 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루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