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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기억9

'이른 아침은 아름답다'(옛 대화) 이른 아침은 아름답다. 아침 노을 속으로 차를 달리지 않아도 친구들과 테니스 치러 공원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도 가는 길에 들른 스타○스에서 2불 11센트인 톨(toll) 커피를 2불에 해주지 않아도 그리고 그 옆 '아인스타인 베이글'의 벽 장식이 눈을 즐겁게 해주지 않아도 그리고선 베이글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차창 밖 어느 집 마당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지나쳐 가지 않아도 이른 아침은 아름답다. 코트 저쪽 끝에 한 줄로 서 있는 겨울 나무들의 상반신이 금빛으로 빛난다. 푸른색 코트에서 게임 중인 J 교수의 오렌지빛 자캣이 멋진 엑센트가 돼준다. 이 글과 사진들을 보고 댓글을 썼었다. 2014년 12월 21일이었다. 지금도 그의 그 글은 남아 있다. 보여주신 모습들이 다 아름답다는 거죠? 왜 그런지, 구체.. 2024. 1. 5.
1999년 12월 11일 저녁 그 애와 내가 달라진 점 늦은 밤 늘 듣던 인사 "다녀왔어요." 오늘 아침 제 엄마에게 주고 나갔다는 아파트 열쇠 오후 5시 30분경 공항 가는 길의 전화, "아빠, 지금 어디 있어요?" 하고 울먹이던 목소리 기다려도 내 집으로 귀가하지 않게 된 것. 그런데도 나는 그 애가 여행을 다녀올 것 같은 느낌으로 지내게 된 것 2023. 11. 16.
박승우「꽃피는 지하철역」 꽃피는 지하철역 박승우(1961~ ) 지하철역 이름이 꽃 이름이면 좋겠어 목련역, 개나리역, 진달래역, 라일락역, 들국화역… 꽃 이름을 붙이면 지하철역이 꽃밭 같을 거야. ‘친구야, 오늘 민들레역에서 만날래?’ 이 한마디로도 친구와 난 꽃밭에서 만나는 기분일 거야.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늘 꽃 이름을 부르겠지 원추리, 백일홍, 바람꽃, 금낭화, 물망초… 자주 부르다 보면 사람들도 꽃이 된 느낌일 거야. ‘이번 정차할 역은 수선화역입니다. 다음 역은 채송화역입니다’ 지하철 방송이 흘러나오면 사람들이 송이송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겠지 사람들한테 꽃향기가 나겠지. 그새 또 8년이 지났네? 2014년 5월 14일(수) 조선일보에서 봤으니까('가슴으로 읽는 동시' 아동문학가 이준관 소개). 오월의 지하철역은 꽃 .. 2022. 6. 18.
거짓말로 진실 만들기 녀석의 거짓말은 이렇게 해서 생산된 것이구나! "뇌는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중요한 정보라 해도 정보의 대부분을 지워버리는 식으로 압축을 합니다. 모든 디테일은 사실 없어집니다. 우리가 뇌에 기억하는 건 중요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압축해서 거의 키워드 정도만 입력을 하는 것이고, 나중에 우리가 기억을 할 때는 키워드를 제목만 가지고 와서 제목과 제목 사이의 디테일은 새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있었던 사실을 서랍에다 집어넣었다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고, 매번 새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대식 교수(KAIST 전기 및 전자과)가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그렇게 설명했습니다(위클리비즈 2015.3.28.). 그는 두 가지의 증.. 2022. 3. 30.
외손자와 놀던 곳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 계곡으로 들어갔다 나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이 개울을 확인합니다. 녀석이 어디쯤에서 바지를 걷고 물속을 들여다보았지? 할머니는 어디서 녀석을 바라보았지? 그때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대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한 해 월반을 해서 지금은 대학 2학년입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훨씬 더 좋겠는데, 매일처럼 홍대 앞에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잘 지내기를, 내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신나는 나날이기를 저곳에서 생각하고, 다시 올라갑니다. 2020. 9. 21.
아파트 마당의 소음 초저녁에나 늦은 밤에나 아파트 마당에서 도란거리는 소리는 한적한 어느 호텔, 아니면 펜션에서 들었던 그 소음처럼 들려옵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던 그 대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러면 나는 제시간에 먼저 잠자리에 들 때처럼 혹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슬며시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지만 그건 지난여름이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떠오르고 또 떠오르는, 그러나 점점 스러져가는 느낌입니다. 이 저녁에는 바람소리가 낙엽이 휩쓸려가는 소리로 들리고 사람들이 도란거리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든 속절없이 떠나야 할 여름의 서글픈 저녁입니다. 2018. 9. 6.
허희정「파운드케이크」 (……) 갯벌을 떠난 다음에도 자꾸 걸었어. 갯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너무 멀리 와버린 데다가, 갯벌이 어딘지도 알 수가 없었거든. 자꾸 걷다 보니, 짐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가드레일 너머로 그냥 통째로 던저버렸어. 그땐 정말로 신나는 기분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무거운 게 가벼워지진 않더군. 이상하게 여전히 온몸이 무거웠어. 어쩌면 진흙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방도가 없으니까 일단 걸었어. 걷다 보면 모든 게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지.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더라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자꾸만, 자꾸만 물건들이 커지는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그냥 걸었지. (……) 월간『현대문학』에서 허희정1의 단편소설을 읽었습니다.2 마지막 부분.. 2017. 1. 10.
「저 빨간 곶」 저 빨간 곶 문인수 친정 곳 통영 유자도에 에구구 홀로 산다. 나는 이제 그만 떠나야 하고 엄마는 오늘도 무릎 짚고 무릎 짚어 허리 버티는 독보다. 그렇게 끝끝내 삽짝까지 걸어 나온, 오랜 삽짝이다. 거기 못 박히려는 듯 한 번 곧게 몸 일으켰다, 곧 다시 꼬부라져 어서 가라고 가라고 배 뜰 시간 다 됐다고 손 흔들고 손 흔든다. 조그만 만灣이 여러 구비, 새삼 여러 구비 깊이 파고들어 또 돌아본 즉 곶串에, 저 옛집에 걸린 바다가 지금 더 많이 부푼다. 뜰엔 해당화가 참 예뻤다. 어서 가라고 가라고 내 눈에서 번지는 저녁노을, 빨간 슬레이트 지붕이 섬을 다 물들인다. ――――――――――――――――――――――――――――――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등단. 시집 『뿔』 『홰치.. 2013. 10. 10.
옛 담임교사가 생각납니까? 연말에 망년회를 했다면서 어느 아이(?)가 핸드폰에 보내준 사진입니다. 1978년에 담임했던 '아이들'입니다. 함께 저 '참이슬'이나 '하이트'를 마실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사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물겹습니다. 이제 조용하니까 그 동네가 자주 생각나고, 아직도 기억 속에는 그 마을의 어려운 모습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나에게는'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 '애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에 이 사진을 실어놓고 심심할 때, 외로울 때, 생각날 때 열어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 여러분도 옛 담임교사가 더러 생각납니까? 그 담임교사가 어떻게 생각됩니까? 담임을 했던 그분은 여러분의 어린 시절을 얼마나 기억할 것 같습니까? 나는 그렇습니다. 이 '애들'의 그때 .. 2011.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