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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거짓말로 진실 만들기

by 답설재 2022. 3. 30.

<사례> 녀석의 거짓말은 이렇게 해서 생산된 것이구나!

 

"뇌는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중요한 정보라 해도 정보의 대부분을 지워버리는 식으로 압축을 합니다. 모든 디테일은 사실 없어집니다. 우리가 뇌에 기억하는 건 중요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압축해서 거의 키워드 정도만 입력을 하는 것이고, 나중에 우리가 기억을 할 때는 키워드를 제목만 가지고 와서 제목과 제목 사이의 디테일은 새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있었던 사실을 서랍에다 집어넣었다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고, 매번 새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대식 교수(KAIST 전기 및 전자과)가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그렇게 설명했습니다(위클리비즈 2015.3.28.). 그는 두 가지의 증거도 제시했는데 다음은 그중 한 가지입니다.

 

 

 

 

"뇌가 너무 많은 해석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림 가〉를 보면 A가 B보다 더 어둡게 보이죠. 시각에 문제가 없다면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그림 나〉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A와 B의 밝기는 같습니다. 시각적 착시 현상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 우선 망막은 A와 B의 밝기가 똑같다고 얘기를 할 거예요. 근데 뇌는 망막을 안 믿고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B는 그림자 안에 있다. 그림자 안에 있는 물체는 진짜보다 항상 더 어둡게 보인다. B는 이미 원래보다 더 어둡게 보이는 상황에서 A랑 똑같다. 그럼 B가 사실 A보다 훨씬 더 밝은 거다.' 재밌는 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저는 다 이해를 하는데도 매번 볼 때마다 여전히 더 밝게 보인다는 겁니다. 내가 100% 확신을 가지고 있어도 100% 틀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게 아마 뇌과학의 메시지 중 하나가 될 겁니다. / 현대 뇌과학에서는 저희가 느끼고, 지각하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의 대부분을 착시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사례> 악마의 명언 ; 거짓말은 되풀이되면 결국 모두가 믿게 된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악마의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가령, 이런 것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가 믿게 된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증거와 문서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땐 이미 사람들은 선동되어 있다. 아흔아홉 개의 거짓들과 한 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퍼센트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다.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민중은 단순하다. 빵 한 덩어리와 왜곡된 정보만 준다면 국가에 충실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개나 앓는 질병이다. 정직한 외교관은 나무로 만든 철이나 말라버린 물과 같다. 인간에게 막역한 사이란 없다. 막연한 사이만이 있을 뿐이다. 열린 마음은 문지기 없는 성城과 같다. 피를 요구하는 투쟁에는 반드시 반대하는 자가 있게 마련임을 우리는 안다. 왜냐하면 완전한 의견 일치는 무덤 속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한 국가의 외무장관이 외국과의 평화회담에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국제평화를 지킨다고 말한다면, 그 시각에 그의 본국 정부에서는 최신 함정과 전투기를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다. 하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숫자에 불과하다.

                               이응준, 「북쪽 침상에 눕다」(소설) 『현대문학』 2015년 11월호, 77~78쪽에서.

 

 

<사례> 과거는 만들 수 있다

 

과거란 당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는 변경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절대로 변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시기에 알맞은 형태로 과거가 멋대로 재창조되면 이 새 과거가 과거일 뿐 다른 과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그렇듯 1년을 지나는 동안에  같은 사건이 여러 차례 수정되는 때가 있더라도 이것은 괜찮다. 언제나 당은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고, 그 절대 진리란 현재의 것과 결코 다를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지배하는 것은 기억의 훈련에 달려 있을 것이다. 모든 기록된 문서가 그 당시의 정통성과 일치한다고 확인하는 것은 단순한 기계적 작용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바람직한 형태로 발생했다고 '기억'해두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의 기억을 재조정하거나 기록된 문서를 변경해야 한다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까지도 '잊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재주는 다른 정신 훈련으로 얻는 기술처럼 습득이 가능하다. 당원들은 거의 다, 그리고 지적이며 정통적인 사람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구어로는 아주 솔직히 '현실 통제'라고 부른다.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하는데 이 이중사고는 이외에도 많은 뜻을 지니고 있다.

                               조지 오웰, 『1984』(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2016, 2판19쇄), 259~260.

 

 

<사례> "나는 기억하지 않아!"

 

"그게 남아 있군요!"

"아닐세."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그가 방을 가로질러 발걸음을 옮겼다. 맞은편 벽에 기억구멍이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뚜껑을 올렸다. 볼 수는 없지만 그 덧없는 종이쪽지는 뜨거운 기류에 회오리치며 내려가 불길 속에 휩싸여 사라지는 것이었다. 오브라이언이 벽에서 몸을 돌렸다.

"재가 됐어." 그가 말했다. "흔적도 없는 재야. 먼지지. 그건 이제 존재하지 않아! 전에도 절대 존재한 일이 없어."

"그렇지만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존재하고요! 기억 속에 존재한단 말입니다. 전 그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기억하고요."

"나는 기억하지 않아."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윈스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지 오웰, 위의 책, 301~302.

 

 

<사례> 묘한 장난으로 거짓 기억 만들기

 

만약 '2 곱하기 2는 4'라는 말과 '나는 지금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라는 말에 진지하게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반면에 나는 어제 날씨가 맑았다고 확신할 수 있지만, 단언하지는 못한다. 가끔은 기억이 묘한 장난을 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욱 의심스럽게 마련이다. 특히 1815년 워털루 전투 당시 자신이 전장에 있었다고 기억한 조지 4세처럼 거짓 기억을 만들어 낼 강력한 감정적 이유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과학 법칙이 거의 전적으로 확실한가, 아니면 아주 미약한 개연성만을 지니는가 하는 문제는 증거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77~78.

 

 

<사례> "내 입에서 나오니까 진실이 되는 거야"

 

(……) 흐흐, 그런데 말하다 보니, 진짜 신기하더라고. 입에서 술술 이야기가 만들어져 나왔으니 말이야. 소설 쓰는 새끼들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했는데, 음, 그러니까 그건 이런 거였어. 처음엔 거짓말로 시작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든 건 진실이 되고, 나는 그걸 믿어버리게 되는 거야. 그래, 지금처럼 말이야. 나는 나중에도 증언했지. 아니, 내 말은, 따라서 이게 진실이라는 거야. 냇가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빨갱이 폭도 새끼들이 우릴 공격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응사격을 했는데, 놈들은 모두 도망치고 애꿎은 중학생이 몇 죽게 됐다는 거. 그래, 뭐 어쩔 거야? 그렇게 개죽음당하기 싫었으면, 애초부터 그런 곳에 나와 어슬렁대지 말았어야지. 대체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한가하게 물놀이나 하고 있냐고. 아니, 생각해보니 다 잘못됐어.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야. 나는 소총도 쏘지 않았고 새도 못 봤어. 정 하사란 인간은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 그는 가공의 인물, 허구야. 당연히 통신병도 없었지. 다 가짜고 다 거짓이었던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어. 그해 오월, 우린 정해져 있던 훈련을 하기 위해 남도로 내려갔고, 별일 없이 다시 올라왔어. 세상은 너무 평온해서, 중학생이 마을 냇가에서 수영하다 지나가던 군인들 총에 맞아 죽는 일 따윈 아예 일어날 수도 없었지. 생각해봐, 그게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해? 몇 년 뒤에 올림픽이 열릴 나라에서? 만약 정말로 그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면, 그 사람들, 잘사는 사람들, 선진 국민들, 인권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우리보다 훨씬 많이 배운 수많은 외국 귀빈들이 여기 발이라도 디뎠을 것 같아?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고? 이 땅에 살던 다른 사람들 말이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사람들, 저녁밥을 먹으며 텔레비전 뉴스란 뉴스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보다 남에게 일어나는 일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들은 어떻겠어?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왜 다들 가만히 있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을 맞고 다시 저녁이면 잠자리에 들잖아. 악몽 하나 꾸지 않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건 모두 허구야. 어떤 할 일 없는 인간이 어느 구석에 숨어서 소설을 썼겠지. 그러고는 여기저기 퍼뜨렸을 거야.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은 책자나 신문 쪼가리, 혹은 찌라시나 구석탱이 벽에만 붙어 있는 대자보 따위로 만들어서, 그리고 그런 거짓말에 우리는, 그래, 당신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속아 넘어간 거라고. 흐흐, 웃기지 않아? 웃기지 않냐고? 어떻게 그런 걸 믿을 수가 있지? 알 만한 인간들이. (……)

                                 김희선, 《계시》(『현대문학』 장편연재소설 제15회), 2016년 7월호, 61~62.

 

 

<사례> 진실은 추억 속에 녹아든다

 

진실은 도달할 수 없는 데에 있다. 진실은 추억 속에 녹아들고 영원히 새롭게 변신하고 신선해진 추억이 진실을 대신하게 된다.

                                 미즈바야시 아키라 《멜로디》(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2016), 125.

 

 

<사례> 녀석의 거짓말

 

'어?' '어?' 하는 사이에 나는 불효자가 되어 있고, 거짓말 전문가인 그 녀석은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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