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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짝을 위한 애도

by 답설재 2024. 6. 16.

 

 

 

 

어젯밤에 방충망 안쪽에 붙어 있는 놈을 살해했다. 살려줄까 하다가 방충망을 열고 내보내는 건 다른 벌레를 불러들이는 꼴이어서 이내 단념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도 저놈은 저렇게 붙어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와 있다가 내게 살해당한 놈과 커플일 거라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방충망 안쪽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놈을 보고 생각한 것은, 어쩌다가 방충망 안쪽에 놓인 알이 여름이 되자 성충이 되었지만 뚫고 나갈 수가 없어서 날개 한번 써먹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인가 싶었었는데 오늘밤에는 문득 어젯밤에 살해된 그놈이 저놈과 한쌍이 아닐까 싶었고,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은 짝을 떠나지 못하고 그렇게 죽은 짝의 시체 주변을 맴돌던 그 비둘기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자 저놈과 어젯밤에 내가 살해한 그놈이 분명 한쌍일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다가왔다.

나는 일쑤 벌레를 살해한다. 무심코 그렇게 한다.

저놈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은 짝을 위해 헌신하고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람을 보고 감동한다.

왜?

어려운 일이어서? 드문 일이어서?

비둘기나 저런 버러지들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은 말도 잘하고 사기도 잘 치지만......')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특징은 다 달라. 사람들은 더위도 못 참고 비만 많이 와도 큰 피해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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