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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뭐 잘 한 것이 있다고 비까지 내려주실까'

by 답설재 2019. 4. 27.






'뭐 잘 한 것이 있다고 비까지 내려주실까'






                                                              출처 http://blog.daum.net/asweetbasil/17951956






    1


  "다이어트는 운동 1할, 식사 9할"이라는 책의 이름을 패러디한다면, 이 세상의 일들은 9할은 엉터리, 겨우 1할, 그 정도만 합리적일 뿐인 것 같고, 게다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 심사를 고약한 것으로 시인한다 해도 이런 심사로 그 엉터리인 9할의 일들을 바라보고 참으며 지내다 보면 속이 뒤틀려서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1할 정도인 합리적인 일들을 바라보며 겨우겨우 연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람들이 뭐 잘한 것이 있다고 비까지 내려주실까.'


  꽃을 가꾸는, 우리 또래 어느 여성의 블로그에서 이 말을 발견했다.

  본인은 객쩍은 소리라고 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여성의 가슴속엔 그렇게 가꾸는 꽃들 같은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내 심사가 아주 고약해진 날 이 블로그에 그 고약한 마음을 토로하는 글을 써놓은 걸 본 그 여성이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해도 거기에까지 마음이 뒤틀어지지는 않았다. 꽃 같은 마음이 꽃 같지 않은 마음에게 그건 아니라고 하면 그건 아닌 것이기 때문이었다.



    3


  그런데 이것 봐!


  '사람들이 뭐 잘한 것이 있다고 비까지 내려주실까.'

  그 글에는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다 나와 있지만 이 표현을 더 자세히 보여주는 문장도 들어 있었다.

  '오던 비가 이 인간들이 뭐가 이쁘다고 비까지 내려주나 싶어서 얼른 그치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당장 '이것 봐! 이런 사람도 다 이렇게 썼잖아!' 하고 누구에겐가 내 고약한 마음이 정당하다는 걸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것처럼 속이 시원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4


  그렇지만 그 글을 끝까지 읽은 나는 다시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틀렸다는 걸 시인해야만 했던 것이다.

  

  밤이 되고 비는 제법 온다.

  밤새 이 세력으로 온다면 옥상의 작은 통들에 빗물이 제법 받아질 듯하다.


  그래도 미련한 사람들을 하늘께서는 보아주시는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최근 어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일화가 들어 있는 걸 봤다.1

  나는 말하자면 첫 번째 제자이다.


  늙고 지혜로운 스승에게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아온 두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너희들의 인생은 복될 것이다."

  제자들은 아쉬움과 흥분이 뒤섞인 채 스승을 떠나 각자의 길로 갔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다시 만난 것에 행복해했고, 상대방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으려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첫 번째 제자가 두 번째 제자에게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있는 많은 빛나는 것들을 보는 법을 배웠지. 하지만 여전히 불행하네. 슬프고 실망스러운 것들 역시 많이 보았기에 스승님의 충고를 따를 수 없다고 느낀다네. 아마 나는 결코 행복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질 수가 없을 것 같으이.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야."

  두 번째 제자는 행복감에 반짝이며 첫 번째 제자에게 말했다.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지."






                                                               출처 : http://blog.daum.net/asweetbasil/17951940








  1.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모든 것은 빛난다 ALL THINGS SHINING》김동규 옮김, 사월의책 2013. 37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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