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코스모스7

잘도 오는 가을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제때 오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나곤 했다. 기온이 아직은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물들여버렸다. 결국 올해도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따르기가 싫다. 2022. 9. 18.
칼 세이건 《코스모스 COSMOS》 칼 세이건 《코스모스 COSMOS》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이 책 이야기를 하려고 몇 년을 별렀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코스모스(COSMOS), 그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라는 서문(앤 드루얀) 첫머리의 인용구로부터, 그리고 "우주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결코 아니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修辭가 아니다"라는 머리말에서부터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게 시적 수사가 아니라고? 칼 세이건은 그렇게 부정해 놓았지만 우주는 시적 수사가 아니라면 그 아름다움과 광활함 같은 걸 이야기할 길을 찾을 수 없어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 것 같았다. "코스모스의 광막한 어둠 속에는 1.. 2022. 1. 30.
황순분 「코스모스」 코스모스 코스모스 아름답다. 길 옆에 가는 사람 아름답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 구절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 코스모스가 반가워서 코스모스 꽃밭이 선물 같다고 썼던 자신이 한심하구나 싶었습니다. 저 한적한 길의 코스모스가 나를 보고 반가워했었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길 옆에 가는 사람 아름답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는 저 코스모스가 순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저 시인이 그 코스모스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아름답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게 참 미안하고 쑥스러웠습니다. 이제 보니까 첫 문장 "코스모스 아름답다"는 평범함을 가장한 예사로움 같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그.. 2021. 11. 3.
코스모스 선물 종일 여남은 명이나 지날까 싶은 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여남은 명 중의 나에게는 이 꽃밭이 과분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딴에는 영욕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 여기 이 길에서 나는 저 코스모스 꽃밭이 얼굴 모르는 이들에 대한 선물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고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선물을 하고 싶다는 어려운 과제를 생각했습니다. 2021. 9. 15.
걱정 많은 중딩이 교장선생님께 (2021.7.30. 수원일보) 교장선생님! 저 서욱이에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과학 독후감 쓴 아이요. 과학자 같다고 하셨잖아요. “아하~ 서욱이!” 하시겠지요. 여름방학이니까 한 학기만 지나면 졸업이네요. 코로나 열풍으로 학교생활도 ‘그럭저럭’이었는데 고등학교 진학도 걱정이에요. 전면 시행은 아니라지만 학점제는 특히 부담스러워요. 실패하면 어쩌지? 다들 괜찮은 척해도 속으로는 궁금해하죠. 우리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게 한다면서요? 내 적성은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해져요. 그때 가서 부모님과 상의하면 답이 나올까요? 고등학교 진로 담당 선생님은 아이들 적성과 진로를 꿰뚫어 보시는 족집게이면 좋겠는데 각자.. 2021. 7. 30.
김사인 「노숙」 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 2015. 2. 25.
가을葉書(Ⅳ) : 코스모스와 어느 양호교사의 사랑 코스모스와 어느 보건교사의 사랑 이맘때쯤엔 코스모스가 지천이었습니다. 고생스런 삶이어서 그런지 그 고향이 저는 싫습니다. 싫은데도 생각이 납니다. 요즘은 밤낮없이 떠오릅니다. 주말 이야기 끝에 코스모스라도 좀 봤느냐고 물었습니다. "에이, 코스모스야 여름방학 전 칠월 중순.. 2008.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