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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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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낸다는 것 책을 낸다는 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요? 자비출판(자신의 돈으로 책을 내어 지인들에게 뿌리는) 경우에는 아예 자신의 돈으로 그 책을 미리 다 구입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럴 일이 없지만 저작권료를 받기로 하고 출판한 경우, 책이 팔리지 않으면 본인도 비참하고 출판사에서도 실망스러워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책은 팔리지 않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작가들은 출판을 거듭하면서 실망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는, 매번 실패했음에도 '이번에는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기대는 마치 카드놀이와 흡사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매절'(원고료만 받고 출판사가 마음대로 하는 경우)로 넘긴 원고가 대박이 나서 출판사가 15년 간 떼돈을 벌었고, '이런 .. 2022. 4. 22.
독서 인증제? 독서 대체벌?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요. 글쓰기가 싫었다기보다 그게 숙제라는 게 싫어서 일기 쓰기를 싫어했던 기억이 나요. 어느 날 엄마가 중학생들이 쓰는 예쁜 공책을 사다 주면서 앞으론 여기다 일기를 써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앞장에 좋은 글귀도 써주고 날짜와 날씨 적는 칸도 만들어주셨죠. 공책도 정말 예뻤지만, 친구들과 다른 일기장이어서인지 숙제라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쭉 일기를 써왔어요. 그 습관이 서평을 쓰는 데 도움이 돼요."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딸은 책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독후감 쓰기는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편지'다. 예쁜 편지지를 딸에게 내밀며 '네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책 얘기를 해보라'고 제안한 것. 결과는 대성.. 2022. 4. 2.
내 눈 어머니는 구석에 웅크린 채 책을 읽었다. 편한 자세로,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맨발을 다리 아래로 감추고 책을 읽었다. 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책 위로 굽히고, 책을 읽었다. 등을 웅크리고, 목은 앞쪽으로 숙이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초승달처럼 하고 책을 읽었다. 얼굴은 반쯤 검은 머리칼로 가린 채, 책장 위로 몸을 구부리고 책을 읽었다. 내가 바깥 뜰에서 놀고, 아버지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연구하며 갑갑한 색인 카드들에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책을 읽었고, 저녁 먹은 것들을 다 치운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아버지 책상에 앉아, 내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아버지 어깨에 고개를 가볍게 대고, 우표를 분류하고, 분류 책에.. 2021. 9. 22.
나는 허당이겠지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사는가?' 생각합니다. 현직에 있을 땐 건방진 생각일지언정 신념, 자부심, 의무감, 책무성... 같은 단어를 곧잘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힘차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여기에 이른 것인데 이제 내가 지금 왜 사는가 싶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내게 일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내 지식은 쓰레기가 된 것입니다. 그 '일' 말고는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가만있어 보세요... 운전을 해서 시장을 봐 올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요. 잔소리를 하는 쪽도 그렇고 듣는 쪽도 그렇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당장 그 방법을 따를 것입니다. 그 외에는? 쑥스럽긴 하지만 청소가 있습니다. 내가 청소를 할 줄 안다고 하면 아.. 2021. 5. 8.
책 읽기 1 나는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내 책에 꽂혀 지냈고 이젠 책이나 읽으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책은 어느 분야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읽어도 좋겠지만(그게 거의 당연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것저것 읽을 만하다 싶은 걸 종횡무진으로 읽어치워도(치우다니?) 세상의 책은 무궁무진하니까 얼마든지 좋은 일이지 싶었습니다. 읽지 않는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두 분 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세상을 떠났고, 피붙이 중에는 그런 나를 가리켜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하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 열정과 노력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그 어떤 일을 했더라도 뭔가 얼마쯤의 성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성과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20. 11. 27.
책 버리기 책 버리기는 '사건'입니다. 잊혀도 상처는 남습니다. 함께하기가 어려워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손수레로 세 차례 실어냈습니다. "어허! 죽을 때 가지고 가시지 왜 자꾸 버리세요?" 재활용품을 정리하던 경비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가 듣고 있지 않을까 싶어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저 꼴에 책을 읽는단 말이지?' 단 한 사람이라도 보게 되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 뻔합니다. 지난주에 내다버릴 땐 아뭇소리 않고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순간 나도 덩달아 외쳤습니다. "벅차서요! 남아 있는 것도 다 가져가지 못하겠는걸요!" 정말 그걸 다 갖고 가라면 그 먼길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강을 건널 땐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경비원은 큰 소리로 웃기만 했습니다. "어~ .. 2019. 11. 7.
왕수이자오 《소동파 평전》 중국의 문호 소식蘇軾의 삶과 문학 《소동파 평전 蘇東坡評傳》 왕수이자오 지음 조규백 옮김, 돌베게 2013 1 '적벽부(赤壁賦)'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 적벽부를 읽으면 나도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읽게 된 적벽부는 나를 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임술년1 가을 음력 7월 16일에 소자蘇子가 손님과 더불어 배 띄우고 적벽 아래에서 노닐었네.(169) 그렇게 시작되는 그 긴 부(賦)의 어느 곳에서, 선친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그 얘기를 듣던 육십여 년 전 어느 겨울밤을 그려보았습니다. (……) 진실로 일세의 영웅인데 지금은 어디 가고 없는가?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땔나무 하며 물고기 새우와 벗하고 고라니 사슴과 친구 삼아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표주박.. 2018. 12. 5.
책과 함께 있기 책과 함께 있기 라스코 동굴 벽화(부분) (…) 이렇게 많고 다양한 동물과 크고 작은 것이 섞여 있는 스케일의 그림을, 그것도 암흑 속에서 작은 등불 빛에만 의존하여 그렸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운 위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의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 2018. 10. 31.
"책에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우르간다가 「재치있는 시골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책에게 책이여, 그대가 신중한 태도로 훌륭한 사람들 곁에 다가간다면 세상 물정 모르면서 우쭐대는 사람은 그대의 생각을 알지 못해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어가 매우 조급하게 다루어진다면 비록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짐짓 꾸밀지라도 그대는 이내 알게 될 것이오. 그가 정곡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18) 이롭지 못한 책을 많이 읽고 미쳐버린 라만차의 귀족에 대한 모험담을 그대여 들려주오.(19) 어리석은 책을 내면 끊임없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니.(20)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11, 초판 26쇄). '세상 물정 모르면서'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 2018. 9. 25.
여기 이 방에는 책이 없다 여기 이 방에는 책이 없다 여기 이 방에는 이젠 내가 읽을 만한 책이 없다. 내 책이 있는 곳, 나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2018. 5. 31.
정은숙 『책 사용법』 정은숙, 『책 사용법』(마음산책, 2010) 책은 대개 세 가지 방법으로 고릅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때에는 마치 학생이 된 듯합니다. 다음은, 서평을 보고 고르는 경우입니다. 호기심으로 사 놓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았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당장 읽지 못해서 쌓아 놓고 시간이 좀 흐르면 저절로 그걸 느끼게 됩니다. 그런 책들은, 읽지 못한 여러 권의 책들 사이에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입니다. 다른 책을 사러 간 길에 표지나 목차를 보고 덥썩 사버린 책은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책은 다 좋다" "전화번호부라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는 무책임한, 혹은 따분한 경우는 '선정'의 경우가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은 충동구매를 한 책입니다. "책.. 2014. 2. 23.
『왜 책을 읽는가』 표지 그림에 끌려서 샀습니다. 모두들 열중하고 있고, 한 남성이 앞을 바라봅니다.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방해 받았다면 그럴 수밖에. 지금 읽고 있던 곳의 책갈피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좀 못마땅한 듯한 표정입니다. '뭐야, 지금?' 저 사람에게 책을 읽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모두들 혼자입니다. 그렇게 보면, 혼자 하는 일로서 독서만큼 적절하고, 비난 받을 일 없고("책이나 보면 뭐가 나온다더냐?"는 비난을 받은 사람이 없진 않지만), 마음 편하고, 자유롭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고("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 표지를 여러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표지의 이 말은 탐탁지 않습니다. '무슨, 그렇게, 이.. 2013.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