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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좋은 책7

집도 잊고 가는 길도 잃어버린 상중(湘中) 《열선전(列仙傳)》에 나오는 노인 상중(湘中)은 상수(湘水)가 넘쳐서 군산(君山)이 물에 잠긴 것도 몰랐고, 황로(黃老 : 노자를 시조로 하는 학문)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가 집으로 가는 파릉(巴陵) 길마저 잃어버렸다고 한다. 일본인들을 책을 많이들 읽는데 우리는 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책 읽는 걸 싫어하고 아예 책 읽는 사람마저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지만, 어쩔 수 없지만 책 읽는 사람을 미워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이 없으면 나는 오래전에 미쳤을 것 같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특별하지는 않다. 어려운 것만 싫어한다. 몇 살 되지도 않은 작자가 도통한 사람처럼 가르치려 든 책도 혐오한다. 가령 몇 살 되지도 않은 작자가 특별한 경험도.. 2023. 6. 18.
아름다운 한국, 한국의 봄 아름다운 한국, 한국의 봄 서울의 산들은 산등성이 사이 사이에 검은 바위투성이나 뒤틀린 소나무의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줏빛 황혼이 지는 저녁이면 모든 산봉우리들이 마치 반투명의 핑크빛 자수정(紫水晶)처럼 빛난다. 산그늘에는 코발트색이 깃들고 하늘은 초록색이 .. 2018. 5. 1.
책 소개 『롤리타』, 바라보는 순간 왠지 '심각한 표정'으로 보인 장정. (심각한(!) 책이긴 하지만……) 1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죽음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을 쓴 줄리언 반스는 자신의 조부(교장)에 관한 일화들도 재미있게 소개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 버트 스콜토크는 남들에게 들려줄 만한 우스갯소리가 딱 두 개밖에 없었다.1 하나는 1914년 8월 4일에 있었던 당신의 결혼식에 얽힌 이야기라서, 반세기 동안 (갈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반복해 듣게 되었다. "우린 전쟁이 터진 날에 결혼했어. (부담스럽게 뜸을 들인 후) 그다음부터는 전쟁 같은 부부 생활이 이어졌지!!!" 다른 이야기는 카페에 들어가 소시지롤을 달라고 했던 녀석에 관한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한껏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 2017. 5. 2.
책 고르기, 즐겁고도 어려운 일 책 고르기, 즐겁고도 어려운 일 Ⅰ 책 고르기는 즐겁고도 어렵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즐겁다는 건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그건 어려운 작업이고 더구나 남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책이 마음에 드는 .. 2016. 10. 27.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11 위트에 가득 찬 에세이집입니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읽지 못하는 한탄스러운 처지여서 번역본을 읽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스스로 안타깝지만, 원본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더 시원하고 행복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위트란 이런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행동이 허용되는 직업들은 수준 높은 사기를 쳐야 하는 직업들에 비해 대체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법인 변호사나 부패한 정치가, 인기 좋은 정신과 의사는 도덕적 견해를 아주 정직하게 매우 자주 발언하리라는 기대를 받지만, 이 고된 일의 대가로 적절한 보수를 받기 마련이다. (176쪽, 「진정한 도덕과 교화의 차이 on Being Edifyin.. 2011. 11. 25.
책 읽는 선생님 <지난주 가을독서축제 때 학교 홈페이지에 탑재된 사진 : 양지뜨락에서 산 책을 그새를 못 참고 쪼그리고 앉아 읽고 있는 아이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K 선생님의 편지> 야당은 총리 후보자를 인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를 보면 그에게 씌워졌던 외피.. 2009. 9. 27.
막스 피카르트『침묵의 세계』Ⅱ 막스 피카르트/최승자 옮김 『침묵의 세계』 까치, 1999(5쇄) 다시 『침묵의 세계』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내가 읽은 책」이라는 코너에 싣는 책 속에는, 읽었으므로 그 내용을 정리해 두려는 것도 있고, 구입비가 아깝고 읽은 시간이 아까워서 적어두는 것도 있지만, 남에게는 감추려 했다가 '큰맘먹고' 소개하는 책도 있습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그런 책입니다. 우리 학교 교직원 생일 때, 지난해에는 매달 다른 책을 선정해서 사주었는데, 그게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선 "1만원 미만의 책으로 선정해주면 좋겠다"는 행정실장의 통제를 받아야 하니까 그것부터 까다로운 조건이 되었습니다. 교직원들은 잘 모르지만, 교장 혼자서 다 써버리는 줄 아는 '업무추진비' 중에는 교사들이 집행하는 경비, 행.. 2009.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