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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잡초5

잡초는 쉬질 않네 해마다 저 세석 사이로 잡초가 올라온다. 잔디 사이로 올라오는 건 더 쉽다. 봄에만 올라오는 것도 아니다. 한겨울을 제외하면 사시사철, 며칠만 기다리면 그들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다행한가. 그 잡초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게 주어지는 일을 한다. 2024. 4. 2.
성희의 생각, 성희 생각 (2) "아, 너무 아름다워요~" 성희 부부는 저 언덕에 수레국화와 함께 쑥부쟁이 씨앗도 뿌렸습니다. 봄에 새싹이 돋을 때 노인은 난감했습니다. 야생화와 잡초를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수레국화는 한꺼번에 화르르 피어나서 '이건 꽃이겠구나' 했는데, '쑥부쟁이'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이름 첫 자가 '쑥'이어서 '아마도 쑥 비슷한 종류겠지?' 짐작만 했습니다. 지난해엔 저 언덕의 잡초를 뽑으며 쑥 비슷한 것이 있는가 잘 살펴보았습니다. 쑥은 흔했지만 쑥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쑥은 쑥떡의 재료가 되니까 그냥 둘까 했는데 "그냥 두면 결국 쑥대밭이 된다"고 강조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노인은 말만 들어도 '쑥대밭'이 되는 꼴은 보기 싫었습니다. 쑥대밭이 되지 않도록 쑥은 잘 뽑고 개망초도 잘 아니까 개망초다 싶은 것도 고개를 .. 2022. 6. 20.
「풀 잡기」 풀 잡기 / 박성우(1971~ ) 올해만큼은 풀을 잡아보겠다고 풀을 몬다 고추밭 파밭 가장자리로, 도라지밭 녹차밭 가장자리로 풀을 몬다 호미자루든 괭이자루든 낫자루든 잡히는 대로 들고 몬다 살살 살살살살 몰고 싹싹 싹싹싹싹 몬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무릎, 온몸이 쑤시게 틈날 때마다 몬다 봄부터 이짝저짝 몰리던 풀이 여름이 되면서, 되레 나를 몬다 풀을 잡기는커녕 되레 풀한테 몰린 나는 고추밭 파밭 도라지밭 녹차밭 뒷마당까지도 풀에게 깡그리 내주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낮잠이나 몬다 10년이 다 되어 간다. 장석남 시인이 소개한 이 시를 보고* 고성에서 농사를 짓는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를 생각했다. 그분이 블로그 《현강재》에 실어놓은 "잡초와의 전쟁"이 생각난 것이다. 잡초와의 전쟁 작은 규모이지만 농.. 2021. 3. 9.
"저것들 좀 봐" "저것들 좀 봐"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기어이 피어난 저것들. 마침내 당당해진 저것들. 가장(假裝)이 필요 없는 저것들. 눈여겨보지 않는 눈을 비웃는 저것들. 그러면서도 그냥두는 저것들. 2018. 4. 28.
기어이 살아야겠다는 잡초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글은 본래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낙서만 봐도 복잡하거나 심란한 그 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마음을 담은 글을 썼는데, 그걸 읽은 사람이 시큰둥하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장관님은 "잡초와 전쟁 중"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열 명도 넘는 장관을 만났지만 그분은 잘 계시는지 때때로 연락해 보고 싶은 분이고, 그만큼 그분의 나에 대한 애정도 그리 허술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비대한 편인 장관님께서 밭에 나가 잡초와 씨름을 하면서 땀을 닦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고, '새벽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2014.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