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아름다움7

'雪柳'라는 이름 "雪柳가 피어났네~~" 淸님이 블로그 "Bluesky in Nara"에 그렇게 써놓았다. (https://nadesiko710.tistory.com/13412054). 설류? 뭐지? 뭐가 이 이름을 가졌지? 조팝꽃이었다. '조팝'은 튀긴 좁쌀 혹은 조로 지은 밥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그곳 사람들은 설류라고 하는구나... 雪柳, 고운 이름... 문득 '윤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난 그 단어를 모른 채 살아오다가(그걸 몰라서 무슨 이변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연전에 '윤슬'(박상수)이라는 시를 보고 그 말, 그 시에 놀라서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아파트에 '윤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 그 아이 엄마 아빠가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주었겠지? 윤슬처럼 아름답게 빛나라고... 조팝나무를 .. 2024. 4. 14.
아름다움 혹은 행복, 사랑, 생명 같은 단어들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란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소설 《달과 6펜스》(서머싯 몸)에서 본 말입니다(민음사, 2013, 191).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에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좀처럼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랄까, 마음에 두었던 오로지 그 한 명의 소녀만 아름다워서 다른 걸 보고, 가령 길가의 민들레에게조차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고, 행복이란 것도 그랬습니다. 행복, 어떻게 그 가득한, 벅찬, 난해한 말을 내 이 누추한 생에 갖다 대겠는가, 앞으론들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싶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하면서 손님들이 찾아와 내가 어떤 인간인 줄도 모르고 자기네들 같은 줄 알고 "행복하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매우 당황했습니다. 댓글 달고 답글 다는 시간을 단.. 2020. 12. 3.
정원의 빗질 자국 그는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정물화처럼 고요했다. 내가 발코니로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이것 좀 봐." 웬걸, 그가 보고 있던 것은 바다가 아니라 탁자 위 재떨이였다. 누구의 솜씨일까. 재떨이를 가득 채운 모래 표면에 앙증맞은 조개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어서 그 위에 재를 떨려면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할 것 같았다. 단편소설 「2월 29일」(김미월 단편소설 『현대문학』 2017년 1월호, 50~70쪽 중 59쪽)을 읽다가 일본 어느 절 정원에서 본 빗질 자국이 떠올랐습니다. '빗질 자국'? '손질 자국'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작(!)한 빗질 자국(혹은 손질 자국)이었습니다. 싸리비로 쓸어놓은 마당은, 그때는 그.. 2017. 2. 27.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 2002 당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죽음은 말이며, 공포를 낳은 것은 이 말이요, 이미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이미지 없이 죽음을 볼 수 있는가? 생각이 솟아나는 원천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한, 생각은 언제나 공포를 낳는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합리화하고 그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든가 아니면 당신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믿음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당신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시공(時空)의 틈 속에 공포, 불안, 자기 연민인 갈등이 분명히.. 2015. 1. 27.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며 ―듣는 것도 그렇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같은 것이다. 만일 당신의 눈이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은 황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연과의 접촉을 잃었다. 문명은 점점 대도시를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도시인이 되어가고 있고, 밀집한 아파트촌에서 살고 있으며, 저녁 하늘이나 아침 하늘을 바라볼 공간조차도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상당한 아름다움과의 접촉을 잃고 있다. 우리가 해뜨는 거나 해지는 것, 달빛 또는 물 위의 빛의 반사를 얼마나 보지 못하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 당신은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자연과 접촉을 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지적 능력을 발전시키게 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미술관과 연.. 2015. 1. 13.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1994 Ⅰ 삼청동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으로 들어가서 역으로 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 정부중앙청사에서 근무할 때는 자주 들어가보던 곳이어서 그곳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안한 '경로우대', 그걸 받아서 검표원에게 보여주며 좀 쓸쓸했습니다. '나는 언제 무료로 전철을 타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되나?' 그런 생각을 더러 해보았지만, 이제는 '나는 언제 다시 돈을 내고 전철을 타고 돈을 내고 입장하게 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Ⅱ 궁궐을 마음먹고 구경하자는 것이 아니었고, 그럴 시간을 마련해서 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을 훌훌히 지나면서 저 모습들을 살펴.. 2013. 6. 17.
'아름다움'에 대한 오거의 주장 "'아름답다'고 하려면 상하(上下)·내외(內外)·대소(大小)·원근(遠近) 등의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초나라 영왕(靈王)이 장화대(章華臺)를 완성하고 그 웅장한 아름다움에 도취하자 오거(伍擧)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합니다(리빙하이(李炳海) 『동아시아 미학』 136). 독재(獨裁)는 박물관 유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지만, 오히려 지금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글을 읽을 때입니다. 오거가 저 말을 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영왕은 오거의 말을 경청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독재는 대통령·수상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일 것입니다. '정치(政治)'는 우리 생활 전체.. 2010.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