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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by 답설재 2013. 6. 17.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1994

 

 

 

 

 

 

 

삼청동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으로 들어가서 역으로 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 정부중앙청사에서 근무할 때는 자주 들어가보던 곳이어서 그곳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안한 '경로우대', 그걸 받아서 검표원에게 보여주며 좀 쓸쓸했습니다.

'나는 언제 무료로 전철을 타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되나?'

그런 생각을 더러 해보았지만, 이제는 '나는 언제 다시 돈을 내고 전철을 타고 돈을 내고 입장하게 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궁궐을 마음먹고 구경하자는 것이 아니었고, 그럴 시간을 마련해서 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을 훌훌히 지나면서 저 모습들을 살펴봤습니다.

 

추녀마루에 한 줄로 앉아 있는 토우(土偶) 잡상들.12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계단 주변의 덕스럽고 해학적인 모습의 돌짐승들.3.

 

― 임금이나 왕후는 때로 저 잡상들을 올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 저것들이 이 궁궐에 스며드는 나쁜 기운을 없애 준다고 했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

 

― 품계석에 따라 좌우로 정렬해 있다가 왕의 부름을 받고 계단을 오르던 신하들은, 저 돌짐승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임금님께서 좀 여유로워지시면 좋을텐데…… 나에게 화를 내시면 어쩌지?'

'내가 어떤 유머를 이야기해드리면 좋아하실까? 아, 내가 유머에 능통한 사람이면 좋을텐데……'

 

― 그런 생각을 한 신하도 있었을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돌아와 앉은 저녁, 이 책을 꺼내어 차례를 살펴보고 이리저리 넘겨 봅니다.

 

건축, 불상, 석탑, 금속공예, 목칠, 민속공예, 신라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조선 전기·후기·말기의 회화, 특히 정선·김홍도·신윤복, 초상화·불화·민화, 한국미 산책, 한국의 마음, 흔하지 않은 이야기.

 

한국 사람들은 웬만큼 친한 사이에 서로 만나면 우선 첫마디로 익살스러운 농을 걸어서 서로의 오가는 정을 돋운다. 물론 다른 민족이라고 해서 익살이나 농이 적다는 말은 아니지만 외국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네의 농은 그 감정의 차원이 다르고 또 그 빈도가 높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은 그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해학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달래고 그 익살과 농담 속에는 풍자와 체관의 멋이 스며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우리 속담에도 '울다가도 웃을 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슬픔의 아름다움과 해학의 아름다움이 함께 존재한다면 이것은 우리네의 곡절 많은 역사 속에 몸에 밴 미덕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울다가도 웃을 일이라는 말은 물론 어처구니가 없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애수가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익살이 세련되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 사회의 서정과 조형미에 나타나는 표현에도 의당 이러한 것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 중에서(414)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언제 조용할 때 정신차려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입니다. 그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들여다보거나 만지고 있으면 괜히 눈물겨워지고, 애틋한 마음이 들고, 하여간 최순우 선생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 이러니까 참 어처구니없는 감상에 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최순우 선생이 써놓은 글들을 모아서 그분의 사후 한 10년만에 엮은 것입니다. 서문은 정양모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정말 멋진 필치로 네 페이지를 썼는데 이렇게 시작됩니다.

 

저녁나절 겨울산을 가다 혜곡 선생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저기 겨울 숲이 참 아릅답소. 노을도 곱지만 숲이 더 마음에 드는군." 하신 적이 있다. 혜곡 최순우 선생은 매사에 사려 깊고 신중한 분이라 평소 긴한 일 외에는 말씀을 삼가는 분이었다.

 

서문에서부터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욕심을 누르고 두 군데만 옮깁니다.

 

최순우 선생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단순하면서 소산한 아름다움과 담백한 맛을 사랑한 참멋에 사신 분이었으며 한국미에 대한 난해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 글이나 학문적 업적을 쌓기 위한 논저보다는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글로 우리들 가슴을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한 분이었다.

 

공직은 줄곧 박물관 학예관 10여 년, 미술과장 20여 년, 수석 학예관, 학예연구실장, 중앙박물관장을 마지막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박물관인으로 마치셨다.

 

 

 

최순우 선생의 글들은 길지 않아서 좋습니다. 우리 문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는 처지에서 읽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학문적으로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쓴 글이구나, 그런 위압감을 주는 글이 아닙니다. 웬만한 것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기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부석사 무량수전」 중에서(14)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일생에 그런 분을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문화재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가지고 있는 자료가 편협해서 다음과 같은 인용만 덧붙입니다.

 

그 분의 평생은 '유어예(遊於藝)'로 점철된 예술 그 자체이셨다. 워낙 바쁘신 나날이어서 안에서 모시는 우리는 평소에 지닌 우리 미술 전반에 대한 궁금증마저도 쉽게 여쭈어 볼 형편이 못 되었다. 다만 멋진 분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출근하시면 여유있는 걸음으로 진열실을 돌아보셨고, 서화감정이라도 오면 곁에서 숨죽이며 귀를 모으던 순간들이 바로 어제 일만 같다.4

 

그날 경복궁에는, 우리는 일하고 공부하느라고 별로 보이지 않았고, 놀러온(?) 중국인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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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 '궁궐의 전각고가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신상을 일러 잡상이라 한다.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을 형상화하여 벌여 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신임관이 선임관에게 첫인사를 할 때 반드시 대궐 문루 위의 이 10신상 이름을 단숨에 10번 외워 보여야 받아들여진다 했다. 대당사전大唐師傳, 손행자孫行者, 저팔계猪八戒, 사화상沙和尙, 마화상麻和尙, 삼살보살三煞菩薩,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 이귀박二鬼朴, 나토두羅土頭이다. 대당사부는 삼장법사, 손행자는 손오공, 사화상은 사오정으로 서유기의 등장인물이나 중국 토신의 이름들이다. 사자, 용, 봉, 물고기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귀물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서유기』에 나오다시피, 당나라 태종의 꿈 속에 밤마다 나타나는 귀신이 기와를 던지며 괴롭히자 문관, 무관을 내세워 전문殿門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잡상은 현재 우리의 대궐 건물에만 남아 있는 셈이다. (김대성, 『한국의 미소』, 대한교과서, 1997, 26~29쪽).
2. 잡상은 궁전, 문묘, 성루 등의 양성한 내림마루 또는 추녀마루 끝부분에 여러 신상神像이나 수신獸神을 조각하여 일렬로 늘어 놓는 토우土偶들로서 장식기와이다. 보통 3~
10개 정도로 설치되는데 안쪽에는 용머리를 장식한다. 이것은 장엄과 위엄을 위한 것이지만 건물을 수호하는 신성한 동물로 건축물의 안전과 벽사의 주술적 성격을 가진다. 보통 용, 봉, 사자, 기린, 천마, 해마海馬, 고기, 해치, 후吼, 원숭이 등을 형상화한 상으로 중국 당나라 태종대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성곽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형태와 모양이 기이하고 독특하다. 보통 앞발은 땅에 짚고 뒷발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잡상의 명칭과 유래는 확실치 않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잡상에 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비희 : 집을 잘 지킨다. 치문 : 바라보기를 잘 한다. 포뢰 : 잘 운다는 뜻이 있어 종을 매는 끈에 단다. 비안 : 범 모양으로 녹문 앞에 놓는다. 도철 : 잘 먹는다. 솥뚜껑에 단다. 규복 : 용의 일종이고 물을 좋아하여 다리기둥에 세운다. 애자 : 죽이기를 좋아하며 칼자루에 새긴다. 금세 : 사자모양이고 불, 연기를 좋아하영 향로에 쓰인다. 초도 : 소같이 생기고 문닫고 숨기를 잘하여 문간에 세운다. 취두 : 용마루 끝에 거는 장식기와로 치미를 대신하여 올리는 기와이다. 취두는 용을 잡아 먹고 산다는 솔개 또는 독수리의 머리 형상인데 치물이라고도 불리는 특수한 기와이다. 모든 잡귀와 화재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의미이며 고려 중기 이후에 올려지기 시작하였다(엄기표 외 3인, 『그림과 명칭으로 보는 한국의 문화유산』, 시공테크, 1999, 164쪽).
3. 월대로 올라가는 층계의 제일 첫머리 문로주 위의 짐승은 '해치'이다. 이는 정의를 표방하는 서수瑞獸이다. 좌우가 같다. 다음 기둥 머리엔 '기린麒麟'이 앉았다. 기린은 유눙헌 인재를 의미한다. 층계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해테 두 마리를 경계로 해서 세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좌우는 동쪽으로 오르고 서쪽으로 내려온다는 실제의 층층다리이고, 가운데에는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며 노니는 돋을무늬를 새긴 폐석陛石이 있고, 좌우로 넝쿨무늬를 새긴 층계석이 있다. 이는 넝쿨인 민초가 떠받드는 중에 왕실이 존재함을 상징한 의장이며 구조이다. 상월대 문로주의 돌짐승은 아래가 '말'이고 위가 '주작'이다. 말은 십이지 중에서 남쪽을 지시하는 짐승이고, 주작은 고구려 고분벽화 이래 남방의 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난간 기둥머리의 돌짐승들도 십이지와 사신이 섞여 있다...(이하 생략)...(신영훈 지음/김대벽 사진,『우리 문화 우리 역사 답사기 1』(대한교과서, 1998)
4. 이원복,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효형출판, 1997), 2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