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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Ⅱ

by 답설재 2013. 7. 10.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이가형 옮김, 하서, 2009

 

 

 

 

 

 

 

1

 

'다시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해서 '교육학 개론'이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그럴 것 없이 한 권만 예를 들면 최근에 읽은 『백년 동안의 고독』 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우선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정말인지 몰라도 그 책의 띠지에는 이런 문구도 있습니다.

―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타임즈, 미국대학위원회 추천 도서

― THE TIMES 선정 '세계를 움직인 책'

― "책이 생긴 이래 모든 인류가 읽어야 할 첫 번째 문학작품!"(뉴욕 타임즈)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석함, 재치, 지혜, 시상詩想은 백 년 동안 배출되어 온 소설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워싱턴 포스트)

 

 

2

 

이 책은 소설이면서도 뭘 좀 아는 체하기에 적절한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가령 바퀴벌레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은 당장 나탈리 앤지어라는 사람이 쓴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이 생각날 정도였습니다.1

 

그는 즉석에서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곤충인 바퀴벌레는 이미 구약성서에서 슬리퍼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종자는 붕산을 묻힌 토마토에서 설탕이 든 밀가루에 이르기까지 온갖 퇴치법을 능가한다고 설명했다.

1,600가지에 이르는 이 종자는 인간이 원시 시대부터 모든 생물 ― 인간을 포함해 ― 에게 가해 온 집요하고 비정한 박해에도 잘 견디어 왔다. 그 박해의 극심함은 생식 본능과는 별도로 인간에게는 보다 명확하고 보다 강한 바퀴 전멸의 본능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바퀴벌레가 인류의 잔혹한 손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오직 그들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어둠에 대한 인간의 공포 덕분에 그들은 불사신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그들은 낮 동안의 밝은 빛에 상처를 입기 쉬웠다. 따라서 이미 중세에 그랬듯이 현대에도, 또 미래에도 바퀴벌레 퇴치의 유효한 수단은 태양의 눈부신 빛 외에는 없었다.(443~444)

 

이야기는 바로 '문학' '지식'에 대한 해석으로 넘어갑니다.

 

소란을 피우던 어떤 날 밤 알바로에게서 문학은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좋은 장난감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우렐리아노는 얼마 후 비로소 그 같은 독단적인 의견은 카탈로니아 태생의 학자의 말을 흉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나이의 말에 의하면 지식이라는 것은 이집트 콩의 새로운 조리법을 생각해 내는 데 쓸모가 없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었다.(444)

 

"당신은 흥미를 느낀다 해도 이렇게 딱딱한 이야기로만 일관하면 뭐 그리 흥미롭겠느냐?" 한다면, 다음은 어떻습니까?

 

아우렐리아노가 바퀴벌레에 대해서 한판 연설을 토로한 오후에도 모두들 토론 후에는 처녀들이 굶주림 때문에 몸을 파는 집들이 있는 마콘도 변두리의 유곽으로 몰려갔다. …(중략)… 그녀들은 소리없이 나타났다. 꽃무늬 옷을 5년쯤 전에 입었던 것과 같은 순진함으로 벗었고, 절정에 이르면 놀란 듯한 소리로,

"어머, 천장이 내려앉겠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444~445)

 

 

3

 

그러나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이유를 정말로 잘 보여주는 대목은 이런 것들은 아닙니다. 그 이유가 되는 곳을 딱 한군데만 보여주면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그곳은 책 가게라기보다 쓰레기통과 다를 것이 없었고, 흰개미에게 먹힌 선반이나 거미줄뿐인 구석, 통로가 나 있는 장소까지 손때 묻은 책이 너절하게 쌓여 있었다. 휴지가 산처럼 수북한 큰 책상에서 주인은 흩어진 공책의 종이에 보랏빛의 색다른 글씨체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아름다운 백발이 앵무새의 관모처럼 이마 위에 내려와 있었고, 가느다랗고 빛나는 파란 눈은 1만 권의 책을 독파한 사람다운 평온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속옷 한 장만 입고 땀 범벅이 되어 있는 주인은 무언가를 쓰느라고 손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421~422).

 

 

4

 

1만권의 책이란 어느 정도의 양입니까?

저도 한때 읽지도 않은 책까지 약 5천권은 가져봤지만 이 범부에게는 그 책을 가지고 이사다니고 차려 놓는 것도 애초에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장자(莊子)가 친구 혜시(惠施)의 장서를 보고 한 이야기를 두보(杜甫)가 시로 읊었다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는 구절의 '다섯 수레'는 사실은 오늘날의 책과 다른 죽간(竹簡)이었다고 하니, '오거서(五車書)'의 양도 오늘날 책 1만권보다는 훨씬 적은 양일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다른 일에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읽으면 1만 권을 읽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저 소설에 나오는 책 가게 주인처럼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5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은 어떨지 모르지만 제본이 미흡해서 갈피가 자꾸 갈라지는 책을 다시 읽기가 싫어서 이번에 새로 한 권 구입했습니다. 이걸 또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아득합니다.

 

'인간 고독의 잔학성'?

남의 이야기 듣듯 할 것 없습니다. 가령 80년을 살고 간다 해도, '세상에 있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면, 그게 바로 절대적인 '고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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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탈리 앤지어 지음, 햇살과나무꾼옮김,『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해나무, 2003)이 책에는 바퀴벌레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실험 결과, 환기를 잘 시키는 것이 바퀴벌레를 쫓아버리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퀴벌레는 공기의 흐름을 통해 짝의 화학적 신호를 감지하는데, 만약 공기의 흐름이 바람에 가까울 정도로 빨라지면 바퀴벌레의 몸뚱이를 감싼 코팅이 순식간에 말라서 죽게 된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바퀴벌레 퇴치 방법은 부엌 창문을 열어두거나 찬장이나 싱크대 밑에 작은 팬을 설치해두는 것이다.'(176쪽) …(중략)… '지금 컴배트가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해도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승산이 있는지는 명심해야 한다. 바퀴벌레는 천문학적인 번식력을 갖고 있으며 수명이 짧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그들은 참을성이 많다. 그래서 도시인들이 새로운 살충제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효과가 있기를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이 길고 흰 수염을 가진 지혜로운 노인의 얼굴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머리를 살짝 수그리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