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필립 톨레다노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by 답설재 2013. 5. 7.

필립 톨레다노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DAYS WITH MY FATHER』

최세희 옮김, 저공비행, 2013

 

 

 

 

 

 

 

 

'아버지' '치매' '(부모와) 함께하다' 이런 단어라면 아예 쳐다보기조차 싫을지도 모릅니다. 그 의식에 합리적인 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렇게 해서 망가져 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이래저래 많이 망가진 인간입니다.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한 '사진일기' 혹은 '포토 에세이'입니다. 일기(에세이)의 주인 필립 톨레다노는 사진작가입니다.

 

아버지는 작은 쿠키들을 가슴에 올려놓고 "내 찌찌 봐라!" 하며 웃습니다. 며느리에게 "죽여주는 몸매"라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성 폭행'입니까? ……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그리운지 늘 어디 갔는지 묻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이젠 가야 할 때라고,

너무 오래 살았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도 얼마간은

아버지가 이제 떠나시길 바라는 심정이다.

  

  

요새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신다.

 

단기적인 기억은 전혀 못하시기 때문에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앉아 계신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좋다.

 

몇 분 동안이나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간 듯 느껴진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거나,

외삼촌 병간호 때문에 파리에 가셨다고

짐짓 둘러댈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나는 어머니의 생일을 제대로 기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간밤에 꿈에서 어머니를 뵈었다.

어머니는 소리 내어 웃고 계셨다.

살아 계신다면 올해 여든한 살이시다.

 

엄마, 생일 축하해.

  

  

어머니가 파리엔 왜 가 있느냐고 물으시면,

언제나처럼 외삼촌 병간호 때문이라고 하는 대신,

어머니가 서커스 공연을 하는데

인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린다.

 

그러고는 아버지 앞에서 직접 시연해 보인다.

사자 입에 머리를 집어넣는 시늉.

공중그네를 타는 시늉.

줄타기 곡예를 하는 시늉.

 

이러다 보면 둘 다 웃음이 터지게 마련이다.

아, 우린 이러고 논다!

  

  

이렇게 얘기하면 정말 이상하게 들릴 줄 알지만

그래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한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지난 삼 년의 시간이 내겐 행운이었다.

말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그 시간 동안 서로 바닥까지 다 보여주면서도

한 점 후회나 동요 없이 우리는 사랑했다.

당신의 자식이 이룬 것에 대해

아버지가 자부심을 느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아버지가 얼마나 재미있는 분인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페이지 표시가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여섯 가지를 어디쯤에서 인용했는지 표시할 수가 없지만, 굳이 표시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작은 책입니다. 그것도 주로 사진입니다.

 

어떤 곳은 사진만 몇 페이지가 계속되기도 해서, 서점에서, 그 자리에 서서 그냥 다 읽고 올 수도 있었지만, 다시 읽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처럼 그렇게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가령 이런 사진에 얽힌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우리 아버지 목욕을 시켜준 적이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겨우 딱 한 번이고 그것도 아내가 부디 그렇게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한 짓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고, 어떻게 한다 해도 그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걸 느낍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빚이 자꾸 쌓이는 것 아닌가 싶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홀가분할까 싶기도 합니다.

 

치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기사가 자주 보입니다. 오늘 신문에도 이런 기사가 보였습니다. 「치매환자 10만명이 獨居노인… 30% 가량은 7개월간 藥 안 받아」.1 심각한 경향이고, 어느 날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초기 치매 증세는 다음과 같이 발견한답니다.2 이 처지에 치매가 겹치면 정말…………

 

 

  □ 건망증으로 업무 처리 과정 중 실수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반복된다.

  □ 스스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잊는 일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반복된다.

  □ 일정을 기억하기 위해 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메모지를 사용하게 됐다.

  □ 예전(약 1~2년 전)에 비해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느낀다.

  □ 가스불 끄는 것을 잊거나, 계획했던 집안일을 까먹는 일이 반복된다.

  □ 잊고 있던 일을 주변 사람들이 알려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주변 사람들이 "예전과 달라진 것 같다. 요즘 좀 이상하다"는 말을 한다.

  □ 참을성이 이전에 비해 없어졌고 화를 많이 낸다.

  □ 특별한 이유 없이 불안하고, 긴장이 된다.

  □ 특별한 이유 없이 1~2년 사이에 체중이 10% 이상 빠졌다.

 

 ⇒ 예전에는 없던 이 같은 증세가 한 개 이상 있다면 치매 검진 권장
     직계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으면 정기적으로 치매 검진 권장

 

  치매 검진 단계


 1. 보건소 인지검사 또는 신경정신과 진찰     ▶ 2. 신경심리검사     ▶ 3. CT(컴퓨터단층촬영)     ▶ 4. MRI(자기공명영상)   
 ▶ 5. PET(양전자단층촬영)

 

 

 

글쎄요, "예전에는 없던 이 같은 증세가 한 개 이상 있다면" 당장 보건소나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건지, 저는 모르겠고, 현재로서도 분명히 "한 개 이상 있는"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오히려 "해당되지 않는 것은 겨우 두어 개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소나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진 않은데, 이러다가 엎친 데 덮치기로 또 무슨 변을 당하는 건 아닌지……

 

이런 걸 잘 챙기는 것이 좋은 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필립 톨레다노 같은 '사랑' '그 눈길'이 부럽습니다.

 

 

  1. 조선일보, 2013.5.7.A8. [본문으로]
  2. 조선일보, 2010.5.4.A10,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3) 빨리 발견하면 이긴다...최대의 적은 애써 외면하는 나 자신-'잘 까먹어' '나이들면 다 그래'...이런 말 오가면 치매 조기검진 필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