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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엘 에글로프 『도살장 사람들』

by 답설재 2013. 4. 8.

조엘 에글로프 『도살장 사람들』

이재룡 옮김, 안규철 그림, 현대문학 2009

 

 

 

 

 

 

도살장에 근무하는 사람들, 도살장이 있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곳입니다.

 

서쪽에서 바람이 오면 썩은 달걀 냄새가 난다. 바람이 동쪽에서 부는 날이면 유황 냄새에 목이 콱 멘다. 그게 북풍인 때에는 시커먼 연기가 머리 위로 날아든다. 그리고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남쪽에서 바람이 일어나면, 딱히 다른 단어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정말 똥 냄새가 난다.(7)

 

 

 

'지식인이나 사변적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특색이 없는 특색을 지닌 익명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착하고 겁 많고 순진한 영혼의 불구자, 현대사회의 낙오자들"이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입니다.**

 

그 순진함과 미욱함을 엿볼 수 있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살장에서 짐승들을 죽이며 사는 사람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마치 정전협상을 학수고대하는 군인처럼 출근하자마자 휴식시간부터 기다리는" 등장인물들 중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나는 막 이륙을 하고 있는 비행기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들을 좀 봐. ……저런 거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꽤 벌겠지?"

보르슈가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다시 덧붙였다.

"나도 저런 거 운전하며 살고 싶다. 돈 받으며 놀러다니는 거잖아. 저런 사람들은 좋은 직업 가진 거야."

"그리 만만치 않을걸. 아주 엄청나게 공부해야 할 거야." 그가 대답했다.

"공부라…… 무슨 소리야. 요새는 몽땅 자동으로 운전하는데. 할 게 없다던데."

"너 참 심보가 고약하다. 그래도 책임이 무거울 텐데."

"웃기지 마. 여기에서 썩고 있는 너나 나나 조금만 훈련하면 저들만큼 해낼 수 있을 거야."

"농담하네……"

"물론 처음에는 조금 서툴겠지만, 조금만 배우면……"(62).

 

 

 

"그 어수룩함과 평범함 속에 내재된 작은 이기심과 미욱함에서 비롯되는 세계와의 사소한 마찰이 소설의 주된 소재"가 됩니다.

 

말하자면 딴에는 약삭빠르게 처신한다고들 하지만 그래봤자 별것 아니고 그 소박한 이기심, 미욱함에 미소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들이 자아내는 그 웃음은 "현실에 대한 차가운 냉소나 남에 대한 우월감과 자아도취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요령껏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망설임과 허둥거림에 동참하며 느끼는 자기조롱"입니다.

 

그러므로 그 미소는 나 자신의 미흡함과 부주의, 가난함, 망설임, 허둥거림 같은 것들이, 이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쯤으로 해석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곳을 가려보겠습니다.

 

도살부에서 동료 피놀료가 소가 맞아야 할 압축공기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음이 분명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미망인에게 부음을 전하는 일을, 작업반장에게 '찍혀' 평소에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화자가 맡게 됩니다. 친구 보르슈가 함께 가주겠다고 하지만, 그가 그렇게 나선 것은, 사실은 좀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착한 친구였지. 그렇지?" 나는 보르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려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칭찬은 그저 심드렁했다. 맥이 빠진 말투였다. 빈말이었고 그게 확 느껴졌다.

…(중략)…

나중에는 나나 보르슈나 사실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말았다. 그가 형편없는 인간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꽤 봐주는 거였다. 항상 맨 먼저 남의 뒤통수를 치는 고약한 인간이었다.

"사실 그 피놀료라는 작자, 죽어도 싼 놈이지." 보르슈가 말했다.

"미망인도 우리처럼 생각하면 일이 잘 풀릴 거 같은데." 내가 말했다.

"물론 우리처럼 생각할 거야. 틀림없이 그런 놈은 술 취해서 들어가면 마누라를 두들겨 팼을 거야. 부인에게 소식을 전하면 틀림없이 반색을 할 걸."(109~110)

 

 

 

그렇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말이 그렇지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는데 반색을 할 아내가 그리 흔하겠습니까?

 

집이 가까워지자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만 할지 점차 걱정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고 부드럽게 말을 꺼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한번도 겪은 적이 없으니 미리 조금 연습을 해보면서 적당한 말, 상황에 맞는 문장을 찾아보았다.

우선 그녀에게 약간의 연금을 만지게 될 거란 말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일단 기분이 좋아질 거다. 그러고 난 후에 왜 연금을 받느냐고 묻겠지. 그때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해주면 보다 쉽게 받아들일 거야. 보르슈는 미심쩍은 눈치였다. 그는 보다 근엄한 투로, 예컨대 "피놀료 부인, 남편께서는 영웅답게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하자는 거다. "허풍 떨지는 말아야지"라고 내가 반박했다. 우리는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말들을 늘어놓았다. "피놀료 부인,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피놀료 부인,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피놀료 부인,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피놀료 부인, 남편께서 재수가 없었습니다." "피놀료 부인,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피놀료 부인, 우리가 왜 방문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결국 어떤 표현에도 합의할 수 없어서 우리는 즉석에서 튀어나오는 말로 하자고, 상황에 처하면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간결한 표현이 최선일 것이다.

"골치 아프면 내게 맡겨둬." 보르슈가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내가 하는 편이 나을 거야."(111~112)

 

소설 속의 인물이 소설 밖으로 튀어나올 리는 없어서 다행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쿡쿡거리고 웃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부음을 전하는 말들을 그렇게 늘어놓는 데서 어떻게 무덤덤할 수 있겠습니까.

 

"피놀료 부인,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피놀료 부인,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피놀료 부인,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피놀료 부인, 남편께서 재수가 없었습니다."

"피놀료 부인,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피놀료 부인, 우리가 왜 방문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그들에게 결국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하면 섭섭할지도 모르므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피놀료의 집에 들어갑니다. 바로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술 대접을 받고, 그러다가 아파트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피놀료 부인과 함께 곧 퇴근할 피놀료를 기다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료해서 피놀료가 만들어놓은 사진첩과 우표 수집해 놓은 것까지 다 살펴보고, 심지어 평소 피놀료가 즐겨보던 TV 연속극까지 보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잊은 것은 아니지만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이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녀는 문 앞까지 배웅하며 "남편이 돌아오면 당신들이 들렀다는 말을 할게요"라고 말했다. 그게 내가 재빨리 낚아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아, 맞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라거나, 아니면 "아 참, 용건을 잊었네요" 혹은 "아이고,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네요"라고 했어야 했다. 까다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아직 할 수는 있었다.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가 만나서 참 반가웠다는 인사로 내 말 허리를 잘랐다. 그래서 나도 만나서 즐거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현관으로 나왔다. 이제 너무 늦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117~118)

 

 

 

이렇게 '재미있는(?)' 부분 ── 나더러 두 번째로 예시하라고 하면 당연히 '유치원 선생님과의 사랑' ── 그런 부분을 더 예시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져서 그만두겠습니다.

소설은 하나의 줄거리를 이루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일기식으로 나열됩니다.

 

다만, 화창한 봄 날씨 같은 분위기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저 위에서 본 그런 동네 이야기니까 그렇게 끝나면 싱겁겠지요. 인용문에서 화자가 말한 것처럼 그건 '허풍'이 될 것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침과 같은 건 아니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아침인지 아닌지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밤과 아침의 차이가 미묘해서 아침을 구별하려면 꽤나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 색조만 조금 더 밝을 따름이다. 심지어 늙은 수탉조차도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날에는 낮에도 가로등이 꺼지지 않는다. 물론 태양이 떴을 테고 저 지평선 너머 안개와 매연과 묵직한 구름과 대기에 매달려 있는 먼지 속 어디쯤엔가 그 태양이 있을 것이다.

북극의 밤이 잔뜩 흐렸다고 상상하면 될 것이다. 우리의 낮은 종일토록 바로 그것과 흡사하다.(168)

 

 

<덧붙임> 번역이 멋집니다. 단 한군데도 어색하지 않아서 그냥 술술 읽어내려 갈 수 있었습니다. 『장의사 강그리옹』 『해를 본 사람들』도 번역되어 있다고 해서 그 책도 봤으면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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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글 '죽음에서 먼지 털듯'의 설명을 참조함 (이 책, 175~176쪽).

** 위의 글에 인용된 르네르 올리비에의 평(이 책,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