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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고골리 『외투』

by 답설재 2013. 3. 8.

고골리 N.V.Gogol 『외투·코』

김영국 옮김, 범우사 2008

 

 

 

 

 

 

줄거리가 한 마디로 기가 막히는 소설입니다.

페테르부르크 시청 '어떤 국'에 '어떤 관리'가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부터 우스꽝스러운 아카키 아카키에비치, 그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무리 봐도 썩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관리인데, 키는 작고 살짝 곰보에다가 머리칼은 약간 붉은 기가 돌고, 보기에 시력이 나쁜 것 같고, 이마는 약간 벗겨졌고, 양볼에는 주름살이 잡혔고, 안색은 이른바 치질환자 같고…… 그렇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는 페테르부르크의 기후 탓이니까! 관등(官等)에 대하여 말한다면(우리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관등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른바 만년 구등관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물고 늘어질 염려가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태도로 나온다고 하는 훌륭한 습성이 몸에 밴, 우리나라의 각종 작가들이 마음껏 조롱하거나 야유하는 관등인 것이다.(18쪽)

 

중년의 말단 구등관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서류를 정서(淨書)하는 일만 합니다. 다만 자신은 그 일을 아주 즐겁게 하고, 심혈을 기울이고,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아껴 모은 돈으로 외투를 맞추어 입었는데,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바로 다음 날 그 외투를 노상강도에게 빼앗깁니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외투를 찾으려는 그의 시도조차 경찰서장과 관리들에 의해 조롱받게 되고, 상심 끝에 열이 올라 헛소리를 하다가 급사(急死)하고 맙니다.

 

 

 

 

시종일관 해학적이지만 슬픔을 느끼게 하는 해학입니다.

푸슈킨은 고골리를 가리켜 "그 웃음의 배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낀다"고 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모든 사실주의 작가는 고골리의 외투자락에서 나왔다"고 했답니다.

 

좀 미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작가의 생애에도 그런 해학이 깃들여 있습니다(옮긴이 해설 '이 책을 읽는 분에게'에서 발췌함).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는 1809년 우크라이나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34년, 문명(文名)을 알리면서 페테르부르크대학의 역사학 강의를 맡았는데, 그의 강의는 우스워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역사학 강의를 어떻게 했기에…… 또 관료주의의 부패를 통렬히 비난한 희극 『검찰관』을 발표하여 물의를 빚고 국외를 떠돌다가 귀국하기도 했습니다.

 

1852년 1월 하순, 종교적 지도를 해주던 신부 마트웨이 콘스탄치노프스키가 모스크바에 와서 2월 5일까지 고골리를 몇 번 만났는데, 그의 작품은 악마의 행위이며 문학가로서 살아나가는 한 하나님의 구원은 없을 것이라는 것, 푸슈킨은 이교도의 죄인이니 절연하라는 것 등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고골리는 고민 끝에 거의 완성되어가던 작품 『죽은 혼』 제2부를 불살라 버렸고, 금식에 들어가 의사의 치료도 거부했으며, 1852년 2월 21일 아침, 4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답니다.

 

 

 

 

특히 해학적이라고 해야 할 부분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의 행색을 표현한 부분입니다.

 

그에게는 정서(淨書) 외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통상 제복은 벌써 초록색이 아니고 무슨 붉은 빛이 도는 밀(小麥)색이었다. 그의 목은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칼라가 좁고 낮아서 여간 길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러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수십 개씩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파는, 석고로 만들어 대가리를 주억거리는 고양이 새끼 목 같았다. 또 그의 통상 제복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26쪽)

 

다음은 새 외투를 위해 근검절약하는 모습의 일부입니다.

 

매일 밤 마시던 차도 끊고 밤에는 불도 켜지 않았다. 만일 무슨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의 방에 가서 촛불 밑에서 일을 하고, 거리를 거닐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돌로 포장된 길에서는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발뒤꿈치를 들어 구두창이 닳지 않게 했으며, 세탁부에게 속옷 빨래를 부탁하는 횟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는 한편,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서 집에 돌아오는 즉시 속옷을 벗고 케케묵은 무명 실내옷만 입기로 했다. …(중략)… 그러나 그 대신 곧 지어질 외투를 늘 머리 속으로 생각하면서 정신력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마치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게 더욱 충만해졌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즉 어떤 딴 사람이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것처럼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이 인생 행로를 그와 같이 나아가는 것에 동의해 준 것처럼 느껴졌는데──그 여자 친구란 솜이 두툼하게 들어 있고 쉽게 해지지 않는 질긴 안감을 댄, 다름 아닌 바로 그 외투였다.(44~45쪽)

 

그렇게 하여 마련한 외투를 바로 다음 날 노상강도에게 빼앗겼으니, 그의 괴로움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의 삶이 또한 이와 유사한 면을 지닌 것은 아닌지, 좀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온갖 것을 대학진학을 위해, 취직을 위해, 결혼을 위해, 승진을 위해, 자식을 위해 바치는 삶이라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다르다고 할 수나 있을까…… 더구나 그 결과가 그리 행복한 것이 아니라면, 칭송을 받지 못한다면……

 

승진이라는 것만 두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바라던 걸 이루면 이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거의 목숨을 바치듯,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 자존심, 체면까지 다 버리고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아카키 아카키에비치 같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승진'이라는 것은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외투'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의 인생이, 삶이, 서글픈 해학,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좀 싱거운 소설이 되었겠지만, 작가가 본문에서 '환상적인 결말'이라고 한 부분으로 이어집니다. 페테르부르크의 그 거리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유령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기억으로는, 그 유령이 나타나는 부분은,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 교과서에도 나온 것 같습니다.

 

느닷없이 페테르부르크에는 이상한 소문이 쫙 퍼졌다. 그러니까 칼라킨 다리 근처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외투를 강탈당했었다는, 관리의 모습을 한 유령이 밤마다 나타나, 강탈당한 자기의 외투라는 구실을 붙여 관등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지나가는 사람의 외투를 모조리 강탈한다는 것이다. 고양이, 담비, 곰, 여우, 너구리 가죽 외투 할 것 없이──요컨대 사람이 자기 몸을 감싸기 위해 생각해 낸 온갖 종류의 모피든 무두질한 가죽이든 외투는 모두 사람의 어깨에서 벗겨 버린다는 소문이었다. 관청의 한 관리는 자기 눈으로 그 유령을 보고 곧 그것이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라는 걸 알았지만, 너무 무서워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났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못하고 다만 멀리서 집게손가락으로 위협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라고 했다. 구등관이라면 또 몰라도 칠등관까지도 밤이 되면 외투를 벗기우므로 잔등이나 어깨가 시려 감기에 걸릴 것 같다는 원성이 끊임없이 사방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경찰에서는 유령이 살아 있든 죽었든 무슨 일이 있어도 체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우하여 엄벌에 처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후략)…(74~75쪽)

 

그 영어 교과서에서는 이 부분이 얼마만큼의 길이로 소개되었는지는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우리의 영어 선생님은 얼굴은 멋쟁이였지만, 그래서 몇 명 되지 않는 여 선생님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리 문학적이진 않았습니다. 교과서의 문장들을 열심히 번역만 해주었지, 이야기의 출처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의 앞뒤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골리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단 한 마디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유령은, 생전의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그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찾아갔던 경찰서장과 '유력한 인사'에게 복수를 했습니다.

먼저 경찰들을 만나 위에서 본 것처럼 저렇게 골탕 먹였고, 멀쩡한 부인과 성실한 아들, 귀여운 딸을 두고도 그게 무슨 멋을 부리는 일인양 몰래 애인 롤리나 이바노브나 부인을 찾아가던 '유력인사'도 만났습니다.

 

느닷없이 유력한 인사는 누군가가 무서운 힘으로 뒷덜미를 붙잡는 것을 느꼈다. 돌아다보니 거기에는 작달막한 키에 낡은 통상 제복을 입은 사나이가 서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라는 것을 알고 적이 오싹하였다. 관리의 얼굴은 눈처럼 창백하여 꼭 유령같이 보였다.

그리고 유령의 입이 일그러지고 무덤의 송장 내음이 확 풍기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유력한 인사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아아! 드디어 네놈을 만났구나! 마침내 난 네놈의 덜미를 잡았다! 난 네놈의 외투가 필요해! 내 외투에 대해서 힘은커녕 호되게 책망까지 하고 ── 이젠 네놈의 것이 필요해!"

가엾은 '유력한 인사'는 사색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무실의 아랫사람 앞에서는 그가 제아무리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늠름한 태도나 모습을 본 자는 누구나 "음, 참으로 강한 성격의 소유자야!"라고 감탄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그는 겉보기에는 영웅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너무나 공포에 질려 있었으므로 무슨 병의 발작이라도 일으키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는데, …(하략)…(79쪽)

 

아랫사람들에게 걸핏하면 "어떻게 감히 그러는가? 자네들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아나? 자네들 앞에 누가 서 있는지 아나?" 하고 호통을 치던 그 '유력한 인사', 우리의 저 불행한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찾아갔을 때도 "어디다 대고, 그래, 자네 앞에 있는 것이 누군지 알기나 하나?" 하고, 사연을 듣기는커녕 으름장을 놓던 그 '유력한 인사'를 다시는 으스대지 못하도록 혼쭐을 낸 것입니다.

 

고골리, 『외투』……

옛 생각이 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