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루아 『삼리윙,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4 『세상 끝의 정원』 중에서
삼리윙, 빈손으로 캐나다에 도착한 그 중국인 사내는, '구름 떼처럼 많은 인부들 중의 하나로, 부두에서 일하는 한 알갱이의 인간, 먼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그에게는 이것이 바로 내 것이다 하고 기억해낼 만한 것'은 이름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우리 중국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좀더 낫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중국의 여러 현과 도를 합쳐놓은 것보다 땅덩어리가 더 넓으면서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아서 텅 빈 것 같은 나라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동포 수천 명과 함께 그 희망의 나라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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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벤쿠버 항이고, 그곳 동양인원조협회의 보살핌으로 식당이나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는 동포들 틈에서 그도 스스로 살아갈 땅을 선택하게 됩니다. 지도에서 그 땅을 찾는 그의 모습이 매우 낭만적입니다.
"산이구나!"
그는 알 수 없는, 절망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지도상의 수많은 이름들 사이에서 꼭 찾아가보고 싶은 야산 줄기를 발견합니다. '오직 그 산들만이 그에게 일종의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고, 오직 그 산들만이 캐나다 땅에 던져져서도 자신이 얼마간은 삼리윙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줄 수 있는' 곳으로 여깁니다.
그렇게 하여 곡물창고마저 텅 비어버린, 황량한 서스캐처원 주 '호라이즌(지평선)' 마을에 도착하고, 허름한 한 건물을 빌려서 '삼리윙 식당'을 엽니다. 그리고 쓸쓸하고 우울한 그에게는 말 대신 커다란 미소가 유일한 상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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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느 곳에서나 만만하진 않습니다. 20여 년 간, 그 사람 좋은 중국인 식당에 단골들도 생기고, 주민들과의 인연도 깊어져 가지만, 이번에는 가뭄이 찾아오고 그 가뭄은 먼지와 침묵, 정적을 데리고 옵니다.
그러나 정작 삼리윙을 직접적으로 공략한 것은, '삶 자체가 가뭄의 연속'이라고 여기는 삼리윙의 식당을 무너뜨린 것은, 4년간 이어진 지독한 가뭄이 아니었고, 기적처럼 찾아온 '번영'입니다. 석유의 발견으로 그 황폐했던 마을이 번창하게 되고, 삼리윙의 식당은 그 번영으로 끝장이 납니다.
삼리윙은 그 번영에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식당의 해묵은 탁자와 의자들, 집기들, 쌓이고 쌓인 먼지들을 위생검사라는 이름으로 단속하는 변화를 삼리윙은 도무지 감당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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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돈이 많아지고 번영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행복을 잘 챙겨 놓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고, 그렇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서 그런 생각을 하면 뭘 할까 싶어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는 잰걸음을 걸었다. 이를테면 여러 해 동안 문턱 밖을 코를 내민 적이 없었던 그인지라 걷는데 습관이 되지 않았고 대낮의 햇빛 속으로 나오니 좀 눈이 부셨다. 또한 신경을 쓸 사이도 없이 마을에 일어난 변화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벌판 도처에 유정 탑들이 세워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름이 번질거리는 사내들이 구멍 뚫는 기계 밑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날, 햇살 좋은 바람 속에서 출렁거리는 밀을 수확하던 시절이 그에게는 훨씬 더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는 끝없이 뻗어간 밀밭을 상기하면서 부드러운 산들의 곡선이 가끔 그의 기억 속에 되살아나듯이 그 밀밭도 그의 삶과 어느 정도 날줄과 씨줄이 되어 뒤얽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을 받아들여준 이 고장의 광대하고 순수한 이 공간들에 에워싸여 지낸 세월이 어떤 면에서 행복한 것이었음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 자기도 그 행복을 깨닫지 못한 채 흘려보내버렸음을 비통한 마음으로 의식했다. 어쩌면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게 위해서는 그 행복을 잃어버려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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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리윙은 마을을 떠나기로 합니다.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난처해진 딱 한 사람은 그동안 공짜밥을 수없이 얻어 먹은 피레네 출신 스무야 영감입니다.
그 스무야도 산을 좋아합니다. 인간들을 구해줄 곳은 오직 산 속뿐이고, 숭고한 모습으로 턱 버티고 서서 인간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짓을 멈추게 만들어주는 것도 산이라고 여기는 노인입니다.
그가 얼마 만큼 삼리윙 식당을 드나들었는가 하면, 날씨가 좋은 날 점심 식사 때를 거르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우선 당장의 식사값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남들을 이해해 주지 않는 거대한 요지경 속 같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대신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삼리윙이 떠나려 한다. 삼리윙을 돕자"는 것을 이야기할 만한 상대도 없고, 길을 막고 호소해도 그의 이야기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스무야는 삼리윙에게 빚을 갚고 싶어도 갚을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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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무야가 생각해낸 사람이, 그의 옛 사랑입니다. 그가 미남으로 통하고 사람들이 그의 발음상의 결함을 적당히 눈감아 주던 시절, 그는 전화교환수 르쿠브뢰르 양에게 치근댄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녀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르쿠브뢰르 아망다는 지금도 전화교환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망다는 사람들에게 송별연이라도 해야 한다고 호소했고, 그 호소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선의가 발휘되었고, 행사를 치르기 위한 자문위원회까지 구성되었고, 십일월 둘째 토요일, 아름답게 단장된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멋진 송별연이 열립니다.
삼리윙에게는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깜짝 파티였습니다.
침례교, 천주교, 루터교 신자들, 스웨덴 사람, 핀란드 사람, 러시아 사람, 프랑스 사람, 그리고 삼리윙 같은 동양인, 온갖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동네여서 그런 호의와 분위기 형성이 더 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규모 오케스트라 초청, 스퀘어 댄스파티, 면장의 연설, 신부의 축사, 삼리윙의 이름을 새겨 넣은 금시계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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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이 삼리윙을 붙잡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저마다 다가와 악수를 하고 모두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여행 잘 하세요, 삼리윙! 행복한 은퇴를 빌어요!"(81)
"잘 가요! 찰리……"(83)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서 몸이 안 좋아진 탓으로 스무야조차 그를 돌보아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싸늘한 어둠 속을 걸어서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너무나도 초롱초롱한 별들이 이 땅 위에 던져진 인간의 막막한 귀양살이 신세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는 하늘 궁륭 아래서 삼리윙은 마침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거의 분명할 정도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제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작별인사를 한 상대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말이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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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리윙을 변함없이 지탱해준 것은 산입니다. '인간들의 오랜 절망을 끊임없이 다독거려주었던' 산……
그는 지평선 마을에서 늘 바라보던 바로 그 산맥 너머의 마을에서 기차를 내리고, 다시 식당을 엽니다. 그리고 그 식당 창문에 다시 이렇게 써붙입니다.
삼리윙 식당
풀 코스 식사
스낵
소프트 드링크
아이스크림, 소다수, 담배
그런데 그때, 이 무슨 기적이란 말인가! 자신의 문간에 서 있던 그는 전과 마찬가지로 뚜렷이, 그러나 이번에는 그 때와 정반대 방향으로, 겨울날의 푸른 지평선 위에 찍혀 있는 부드러운 야산의 가느다란 선이 드러나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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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루아의 문장은 매우 서정적입니다. 그가 표현하려는 것들이 자주 시처럼 다가오고, '절망'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싶어지다가 이내 따뜻한 마음이 보이기도 합니다.
또 믿을 수 있는 건 인간의 마음뿐인가 싶어지다가 다시 그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기 일쑤입니다.
가령, 헤어진다는 것, 떠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무엇입니까?
내가 떠나올 때 그처럼 따뜻한 인사를 해주던 그들은 이미 나를 잊은지 오래입니다. 영원히 떠나는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애도는 없고, 그리고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다만 떠난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뿐입니다.
저승에서? 하늘나라에서 다시? 천국에서 만나? 누가 다녀왔답니까?
그는 늘 그래왔듯이 마을 저 밖으로 한 발 물러서서 지내면서 그런 상황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끔 보아왔던 것이다. 즉 누군가가 더 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게 된다. 그러면 그는 즉시 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려서 아무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 것이 아마도 이 고장의 불문율인 모양이었다. 문득 한 마을 전체가 다 누군가를 공공연하게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82)
추운 몸을 녹이려고 단단해진 눈 위에서 발을 구르면서 "잘 가요! 찰리……" 하고 하얀 입김 저 뒤에서 소리치는 몇몇 친구들의 시선 속에 있는 동안에는 삼리윙은 거의 떠남의 행복한 감격에 잠겨 있을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눈앞에 차례로 지나가기 시작하는 울타리들과 들판을 향해 미소를 짓고 머리를 끄덕여 인사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83)
우리는 다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스스로의 의지로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다닙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옮겨 다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까? 아직은 단지 더 좋고 값도 유리한 아파트를 찾아다니는 것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입니까? 그럼 언제 그걸 생각하게 됩니까? 그러다가 마는 것은 아닙니까?
* 이 블로그에서 가브리엘 루아에 대한 글 보기
☞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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