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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시간15

2024 나의 연말 살아간다는 게 실험 같아.새로 모임에 나가거나 무슨 일 벌이는 게 성가셔서 그런 건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러자 일상이 더 단조로워졌어.무얼 하든 하루를 채우는데도 그렇게 느껴져.겨울이어서 풀 뽑고 벌레 구경하는 일도 하지 않으니까 새삼스러워. 오고 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새벽에 이웃 아파트 불빛을 세어보며 어제 일들을 떠올리면 하루가 하루로 느껴지질 않아.방금 있었던 일 같거나 그새 잊고 있었던 걸 확인하는 듯해.세수를 하는 것도 그렇고, 커피를 내리는 일도 그렇고, 산책 나갈 준비를 하는 것도, 늦은 밤 자리에 눕는 것도 그래.'그새?' 싶어. 한 달 전이면 11월이었고, 그즈음 메모나 찍어둔 사진이 눈에 띄면 그립고 눈물겨워.지난해 그 시간들도 그래.아무것도 아닌 것 같던, 비어 있는 것 같던 그.. 2024. 12. 31.
나는 언제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나? 아침에 세수하고 얼굴을 닦다가 입 주변과 아래턱이 눈에 들어와 새삼스럽게 놀라웠다.나는 언제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나? 내 속에는 아직 어린아이가 들어 있어 때로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땐 언제라도 이 사람들과 헤어져 그 아이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이렇게 쪼글쪼글해져서 돌아간들 사람들이 알아보기나 하겠나?언제 내가 팔십 살을 먹었나?계산 착오가 아닐까? 열 살 스무 살은 그렇다 치고 서른마흔쉰을 지나 예순일흔에 나는 어디에서 뭘 했나? 그때의 나는 어떤 나였나? 증거가 있나? 어디에 그 증거가 있나?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조치부터 해야 할까?누가 나더러 나이만 먹었지 무엇 하나 의젓한 게 없지 않냐고 하면 지금까지의 한심한 행위, 바보 같은 행위를 '일시에.. 2024. 12. 18.
이 하루하루 나는 종일 몇 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그 몇 마디 때문에 나의 하루는 길어진다.그렇지만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를 마련할 때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는 걸 의식한다.눈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날의 그 시간이 머릿속에 엊그제 일처럼 찍혀 있는 날짜를 따져보면 이미 다섯 달이 지났고, 다시 5개월쯤 지나면 또 눈이 내리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시간과 순간의 의미이다. 2024. 8. 1.
하루 또 하루... 나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 이후의 시간은 나 몰래 흘러서 금세 저녁이 되고 서성거리다 보면 깊은 밤이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가는 걸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포기 상태가 되었다. 2023. 10. 13.
꽃이 진 자리 한때 파란 꽃이 더 많던 자리에 흰 꽃이 늘어나 주종(主種)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돌보지 않았던 저곳의 저 꽃들은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저버린 곳에 지금은 다른 종류의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 끝 무렵 그 풀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가버리고 다시 두어 가지 풀들이 새로 자리를 잡아 겨우내 근근이 혹은 꿋꿋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 꽃들을 들여다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 꽃들 중 어느 하나가 나에게 긴 세월에 비하면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진 않다고 거의 다 지나갔다고 이야기해주려고 했었을지도 모릅니다. 2023. 8. 1.
겨울밤 벽시계 사륵사륵…… 사각사각…… 눈 내리나? ... 아니네? ... 좀벌레가 벽을 갉아먹고 있나? 아, 벽시계 소리! 갉아먹는 소리 같은, 눈 오는 소리 같은 갉아 먹히고 내려서 사라지는 나의 겨울밤 나의 시간 2023. 2. 17.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 이재영 옮김, 창비 2011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픽 카운티로 도보여행을 떠났다.(10) 이렇게 시작된다. 파괴와 고통, 희생 같은 것들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슬픔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죽어갔고 폐허, 파괴의 흔적만 남아 있다. 보이는 것마다 공포와 공허, 덧없음, 우울을 보여준다. 슬픔은 끝이 없다. '토성의 고리'? 우리 모두는 우리의 유래와 희망이 미리 그려놓은 똑같은 길을 따라 차례차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자주 나를 엄.. 2022. 3. 25.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전기)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이상원·조금선 옮김, 황소자리 2004 나의 시계는 끊임없이 질주한다. 한때는 시계가 너무 많더니 이젠 이 방엔 단 세 개뿐이다. 자다가 깨어 화장실 갈 때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탁상시계, 회의를 하거나 누구를 만날 때 스마트폰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젠 소용이 없게 된 손목시계, 초침이 1분에 한 바퀴씩 숫자판을 일주하는 저 벽시계가 그것들인데 벽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조급해진다. 초침이 너무나 분주하기 때문이다. 그 초침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나 싶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가 무슨 일을 저질러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을 느끼게 된다. 류비셰프는 그의 시간을 이렇게 살았단다... 2021. 12. 25.
속절없는 나날들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줄은 잘 압니다. 이곳에 눈이 내리던 저 날만 해도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은 게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정말 뭔가 좀 해야 할 처지인데 오늘도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시계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방에만 해도 세 개인 시계가 우습게 보입니다. 뭘 하겠다고 시계를 모아 두었을까? 시계가 여러 개이면 시간을 조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 시간이 좀 늘어나기라도 할 줄 알았던 걸까? 변함없이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저 시계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안부 전화로, 자랑처럼,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던 K 교수가 '알파고'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을 정복한 사나이 .. 2020. 4. 15.
월간지 표지 사진 책을 들고 있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억들을 따라 서글픔이 밀려온다. 1. 2개월 전, 1, 2년 전 책도 그렇고 오래된 책은 더욱 그렇다. 모호하거나 짜증스럽거나 뭔가 초조해서 읽지도 않고 넘겨버린 글도 있었던 그 많은 시간들…… 우루루 몰려와 그렇게 머물던 그 수많은 시간들,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그 시간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되돌아올 수나 있는 길에 있을까. 그것들……. 2017. 7. 27.
세월 2017. 5. 20.
이 시간 나를 멀리 떠나는 생각들 뒤로 더러 앞으로 빛살처럼 가버리는 것들 2017.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