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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속절없는 나날들

by 답설재 2020. 4. 15.

 

2020.2.16.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줄은 잘 압니다.

이곳에 눈이 내리던 저 날만 해도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은 게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정말 뭔가 좀 해야 할 처지인데 오늘도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시계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방에만 해도 세 개인 시계가 우습게 보입니다.

뭘 하겠다고 시계를 모아 두었을까? 시계가 여러 개이면 시간을 조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 시간이 좀 늘어나기라도 할 줄 알았던 걸까?

변함없이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저 시계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안부 전화로, 자랑처럼,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던 K 교수가 '알파고'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을 정복한 사나이 류비세프", 그 이야기 속 류비세프, 한 번도 내 눈 앞에 나타난 적이 없으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그 인물이 밉고 두렵습니다.

 

이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또 하루가 지난 걸 알게 됩니다.

시간들은 정확하게 모여서 과거가 되어 사라집니다.

그 사실이 괴로움 혹은 슬픔이 되어갑니다.

시계는 변함없는데 나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럽고 약이 오릅니다.

 

일단 그렇지 않은 척해 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바라보며 '변함없구나' 안심하도록 해주는 일이 중요하거나 필요할 것 같아서입니다.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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