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길에서 진달래를 만나는 이 나날이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처음엔 '또 진달래가 피네' 했습니다.
오늘은 또 생각했습니다.
'다 피고 나면 어떻게 하나?'
'봄이 다 가면 그때는 그럼 어떻게 하나?'
2
195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득한 그 어디쯤에서 진달래 꽃잎을 따먹고 있으면
입술이 새빨간 사람에게 잡아먹힌다고 했습니다.
내 빨간 간을 내가 보는 데서 꺼내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입술 붉은 그 사람은 분명 병자(病者)이니까 성치는 않을 그 몸으로 주춤주춤 다가오면,
미끈거릴 고무신을 얼른 벗어 들고 뛰어 달아나면 그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달래 꽃잎 좀 따먹지 않고는 힘이 너무 들었는데,
그렇지만 입술이 퍼렇도록 그걸 따먹어도 배는 점점 더 고팠습니다.
태어나 보니까 일본말이 너무 많이 섞인 세상이었는데 그건 나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전쟁까지 일어났고 나는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온갖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각자 알아서 그렇게 헐떡이며 왔는데 이제는
천지에 '코로나'라는 게 퍼지고 있습니다.
3
이번엔 정말로 내 힘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른 것들도 그랬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이지 내 힘으로 통제할 길이 없는 그저 막막한 것이어서
그 흔하던 마스크조차 선택적으로는 구입할 수 없어서
생각만 해도 숨이 턱 턱 막힙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정신이 들기도 전에 이 일들이 생각나고
힘겹게 하루의 낮을 보내면 어김없이 저녁이 됩니다.
그 저녁에도 온통 그 생각이고
잠이라도 제대로 자자 싶어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 눕지만
자다가 깨면 또 생각이 납니다.
4
나는 웬만큼 살았으니까 죽어도 서러워할 사람이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서럽습니다.
이 상황을 이렇게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나의 일을 내 힘만으로는 전혀 통제할 수가 없어서 막막하고 서럽습니다.
죽음이야 어차피 내 힘으로 통제되지 못할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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